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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희 Jun 27. 2022

만화작가의 훌쩍 떠난 우리나라 여행기







 어제 택시 기사분의 말을 충실히 이행해  해남에서 자고 우수영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구월인데 갑자기 다시 더워진 날씨에 날 반겨주는 것은 하늘을 뒤덮은 잠자리 떼들이었다. 마침 우체부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간다. 우수영 충무공 관광지 가는 길을 묻자 의아해하신다. 걸어갈 거리가 아니라는 거다. 버스가 없냐고 하자 없다고 하신다. 이젠 뚜벅이 여행객은 설 곳이 없나 보다.

30분쯤 걸어간다는 말에  걷기에는 워낙  자신이 있는터라 호기롭게 출발한다.


곡식이 익는 구월의   땡볕은 내리 쪼이고 땀은 비 오듯 쏟아진다.  손수건도 준비하지 못해 휴지로 땀을 닦는다. 그날 나는 탄 쪽과 안 탄 쪽의 경계가 분명한  화상을 입었다. 아스팔트가 좍 깔리고 건물도 사람도 별로 없는 시골길을 한참 걷다  그 동네의  어르신으로 보이는 분들이 사거리에서 화단 가꾸는 작업을 하고 계신다. 그중 여자 어르신에게 길을 묻자. 남자 어르신이 왜 나한테 묻느냐고 서운해하신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니

"으트케 걸어갈라꼬?"

남자 어르신의 말씀

"10분이면 실컷간다."

여자 어르신의 말씀

"여자분이라 으트케 간댜"

남자어르신의 말씀

"그럼 니가 업어다 줘라"

여자 어르신의 말씀

"내가 업어다 주라는 디요"

남자 어르신의 말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저 무거워서 못 업으세요"

이 말해주려다가 길을 재촉한다.


 조금 걸으니 정말 우수영 터미널이 나오는데 여긴 그냥 거북선 유람선 선착장인가 보다. 스마트폰으로 본 구구 횟집도 보이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먹을 양이 안 되고  배고프지만 그냥 지나간다. 울돌목 거북 유람선이라고 쓰여있다. 이 울돌목의 해류를 이용해 명량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했는데  이곳이 정확하게  울돌목인지 잘 모르겠다.

   그저 직진하다 보니 충무사가 보인다. 안 올라가 볼 수없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기사분은 명량대첩 축제를 잘 못 아신 거였다. 다음 달에 열리는 걸 이번 달로 착각하신 거다. 아무도 없어 고즈넉한 충무사를

돌아본다. 그런데 명량대첩비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단다.  충무사 뒤편에 있는 연리지를 보러 간다. 두 나무가 한 나무가 되어버린... 사랑하는 연인들이 여기서 기원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네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는 사랑나무란다. 전지현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적이 있었지? 충무사를 나와 다시 걷는다. 강강술래 기념관과 기념비가 보인다 병력이 많아 보이게 부녀자들에게  강강술래를 하게 했다는  잘 알려진 이야기
      

 드디어 진도대교가 보이고 스마트폰으로 검색했던 울돌목 식당이 보인다. 남도의 백반집에 기대감이 몰린다 배도 고파졌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이 지역은  어디서고 전복을 팔던데 기념으로 사가고는 싶지만 들고 갈 걱정에 참는다. 이 식당은 싸고 맛있다고 많이 칭찬을 해놓은 집이다. 메뉴는 한 가지 백반 7000원  밥과 매생이가 들어간 멀건 된장국이 나오고 기사식당처럼 쟁반째 주신다. 갓김치, 쥐포 조림, 어묵조림, 멸치볶음, 노각, 창난젓, 양파장아찌, 깍두기, 청양고추, 김치볶음, 된장, 파김치, 미역줄기 볶음, 두부 부침이 있다. 반찬 가짓수는 많지만 기대를 너무 많이 한 탓인지 다른 기사식당에 들어갈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서빙하시는 분이 내게 슬쩍 물수건을 가져다주신다.

"얼굴에 휴지가 묻었어요."

아까 땀을 닦으면서도 휴지 묻으면 어떡하지 걱정은 했는데 창피하다. 식후의 눌은밥이 나온다.
  

밥을 먹고 또다시 걸어간다. 만약 차를 타고 이곳에 왔다면 이런 길을 걸어보지 못하겠지. 아직 떠나지 못한 여름이 진득하게 들러붙어있는 이 길과 어디나 같지만 해남의 매미소리와 해남 우수영의 바다 냄새를 온몸으로 느낄 순 없겠지. 불편하게 가는 길에도 그 나름의 의미는 내재되어있다.  인생길도 예외는 아닐 것 같다.


진도대교 옆의 이순신 장군 유적지에 도착했다. 장군 역시  르네상스 다빈치형 인물에 빠진다면 섭섭한 인물이다.  무관이지만 뛰어난 글솜씨, 용맹스럽고 뛰어난 지략, 거북선이나 총통을 만드는데 관여할 정도의 지식인,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오.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나에게는 13척의 배가 있습니다"

이런 이순신 명언 중 13척의 배가 남아 있다는 게 이 명량해전의 멋진 포인트다. 원균의 지략 부족으로 대파한 우리의 배는 겨우 13척밖에 남지 않았다. 모함으로 옥에서 나와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이

나라의 위태로움을 알고 이곳으로 배를 수습해 왔다. 울돌목 조류의 힘을 이용해서 10배가 넘는  왜선을 참담하게 패하게 만든 유래 없는 멋진 전투다. 여기서 혼자 손뼉 친다. 짝짝짝 전에 통영에서도 팬클럽에 가입했었는데 여기서도 이순신 오빠!!! 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몸을 바쳐 나라를 구하려고 힘쓴 이름 없는 의병들의 조형물들이 보인다.  쓸데없는 당파싸움만 벌이고 공리공론만 일삼고 나라를 썩게 만드는 위정가들 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다. 정약용도 나라가 온통 안 썩은 데가 없다고 했지만 시대를 관통해 지금도 진행 중인가 보다. 모두 전사한 오부자 의병의 석상도 보고 바다에 서  계신 이순신 장군의 조형물을 본다.




閑山島夜吟  한산도 야음



水國秋光暮(수국 추광모)    바닷가에 가을이 깊어가는 데,

驚寒雁陳高(경한 안진고)     추위에 놀란 기러기는 진중을 높이 날아가네

憂心轉輾夜(우심 전 전야)    나라 걱정 고민 속에 잠 못 이루는 밤

殘月照弓刀(잔월조궁도)   새벽에 기우는 달빛은  활과 칼을 싸늘하게 비춰 주네.


여긴 한산도는 아니지만 고뇌하는 이순신과 어울려서    



한산도 달 밝은 밤 수루에 홀로 앉아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끝나니


난중일기에 보면 나라 걱정하는 마음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 어머니를 잃은 슬픔들이 곳곳에 절절한데

장군의 인간적 면모가 너무 슬퍼 보인다. 영웅들은 어쩌면 안락하고 행복한 생활은 포기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진도대교를 돌아 아까 걸어왔던 길을 되짚는다   무궁화 꽃에 벌레들이 대놓고 식사 중이다.

무궁화가 벌레가 많이 꼬여 국화로서는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만큼 많은 시련의 역사 속에서도 살아 나온 무궁화가 새삼 다시 보인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래서 강해졌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당신이 시련 속에 있다면 당신은 지금 강해지고 있는 거라는 파우스트의 문구가 생각난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를 침략한 역사가 없는 우리 민족이다.


 이즈음의 시골길에서 흔히 보는 아스팔트 깻단 말리기 한창이다. 내 얼굴은 지글지글 소리가 날 정도로 타들어간다. 계란 프라이를 해 먹어도 될 정도일 거다. 이제 우수영터미널에 다 왔다.  터미널 근처 카센터의 멍돌이 때문에 우스워서 혼났다. 두 마리가 묶여있는데 사람만 지나가면 막 짖어대고 한 마리는  주전자를 입에  물고 다닌다. 물이 먹고 싶은 건가? 아 나는 왜 얘네들만 보면 뭘 주고 싶은지 모르겠다.

 

여행의 묘미 하나 더  있다. 사람들 얘기 듣기다 진도에서 고구마 캐러 황산까지 와서 무임승차하려는 할머니들과 기사 아저씨의 실랑이도 흥미로웠다. 버스 기다리는 시골 대합실의 재미있는 얘기들-난 얘기 엿듣기가 취미인가 보다.

"삼식이가 죽었대."

"사식이?"

"아니 사식이는 볼싸 죽었고 삼식이."

반 평 크기의 대합실엔 표 끊어주는 분은 식사하러 가셨는지 없다. 각기 다른 곳으로 가려는 마을 사람들이 사무실을 점령하고 앉아 냉장고에서 찬 물도 꺼내 마시고 선풍기도 틀고 제 집처럼 담소를 나누신다.


"삼식이가 밥 숟가락 들고 그냥 그 자리에서 죽어 부렸대."


"으쨔 복일 지도 모르지라."


"마누라가 그렇게 제 서방 욕을 해싿더니만..."


"자기가 밥을 해주면 막 독 쳤다고 안 먹는다고 상 뒤엎어 부렸다제."


"그래서 내가 왜 그렇게 욕을 해쌋쏘. 그래봤자 몬 소용이 있다꼬."


"그람 그 여자가 엄매~ 말해야 알지 말 안 하면 어찌 알겄소."


"그 여자 올매나 못 생겼소."


"인물도 없지 일도 못하지."


"그래서 즈그 서방 싫다꼬 아들네 가 있고 삼식이는 혼자 밥 숟가락 들고 죽었다지."


어찌나 대화가 재미있는지 홀려서 듣다가 차 기다리는 지루함도 잊는다. 대흥사를 추천했지만 거기는 또 차없이 갈 엄두가 안난다. 거기 갔다가는 오늘 1박을 더 해야할지도 모른다. 광주터미널로가서 샌드위치와 녹차 사먹고 영화'돈비 어프레이드'관람한다. 여행지에서 보는 영화도 엉뚱하지만 색다르다. 영화는 망작.

   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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