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영희 Jun 22. 2022

카페 안 할아버지의 6.25

카페 작업중 들려오는 대화

전철,버스, 공공 장소에서 남의 얘기를 잘 듣는다.

정확히는 들려온다. 일명 소머즈 귀 증후군이다. 때론 외국인의 대화도 듣는다. 이러다 외계인의 대화까지 들을지도 모른다.


 비가 내리던 오후 동네 카페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카페엔 나와 할아버지 네 분만 있었다. 내년에 80이라는 할아버지1의 걸죽한 목소리가 이장의 방송처럼 실내를 떠다녔다.


 "6.25사변때 벌곡서 우덜집이 방앗간을 했어. 거 연산 올라가는 데가 인민군 고지여.아 저녁이면 인민군이 내려오는겨. 국민핵교 1학년띠 사변이 났는디 책도 없이 핵교 다녔어. 우리집이 잘 살았거든. 딱성냥 있자녀. 이걸 인민군덜이 보더니 아우 왜 미국성냥이 있냐고 막 지랄여.

저녁에 밤을 쪄놓으면 인민군들이 다 가져 가는겨.우덜 할머니가 인민군 고지에 데려가면 죽여 버린다고 우리 아들만 살려 주세유 했지 뭐여."

 할아버지1의 얘기가 계속된다.


"우리 마을에 미시코리아 여자가 있었는데 육군대위와 연애걸다 우리집 방앗간 작은 아버지랑 둘이 살으라 했어.

대전 사람들이 거기로 피란을 오는겨."

 진짜 미스코리아 였는지 미스코리아 뺨치게 생긴건지는 모르겠다. 육군대위와 작은 아버지가 동일인물인지도

엿듣기라 물을 수도 없었다. 할아버지2가 끼어든다.


"난 딱성냥을 지금도 만들 줄 알어. 성냥 끝동가리에 침을 발라 탁 키는데 성냥 키는데다 문대는겨."


"성냥도 켰어."

 할아버지3도 끼어든다.

"그건 유엔 성냥 오리지날이고."

다시 할아버지1이다.

"그게 묻으면 마르잖아."

할아버지2가 말한다. 딱성냥 만드는법을 모르는 나는

어떤 형태인지 상상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1이 다시 말을 이어 나간다.

"6.25났을때 울 아버지가 나는 장남이라고 나만 데리고 대전으로 나온겨. 벌곡엔 우리 누나,할아버지,할머니만 남았어. 우리 동생이 날보고 울어. 디지게 맞았지."

할아버지 1은 미군기지가 어떻고 회관이 어땠고 방앗간을 싸게 매각하고 대전에 나왔다는 얘기를 줄줄이 늘어 놓는다. 다른 할아버지들은 전쟁때 추억이 없으신가 보다.


"근디 국민은행 옆에 고로게가 3개 100원이었는디."

할아버지 2가 말머리를 돌린다.

"고로께가 달지."

할아버지3이 처음으로 입을 연다.

"고로게가 왜 달어. 야채가 들어간건디."

할아버지4 까지 끼어든다.


"시발 대한통운 옆에 바로 나온 앙꼬빵이 왜그리 꿀맛이여 (성심당 전신인가?)

지금은 그 맛이 안 나."

할아버지2의 욕접두어가 들어간 말이다.

"빵하믄 삼립빵 아녀."

할아버지1의 뜬금포다.

"삼립빵 사장이 삼립빵 대리점을 동선관광 ㅇㅇ사고

우유 대리점도 같이 했어. 샤니가 사위고 그때 대리점서

빵과 우유를 이만한 봉지에 가져와서 갔다 줘."


전쟁 얘기에서 빵 얘기로 이제 중년 이상이 커피집에 앉으면 꼭 하는 건강 얘기로 넘어간다.


"내시경해야 돼서 술 안 먹는데 하고 나면 먹을겨."

"매일 마시자녀. 오늘은 뭘 먹으러 갈까?"


"근디 그 빵공장 그 사람이 죽었어. 담 하나 사이로

빵을 만들었는디 복수동 바위에서~ "

이쯤되니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로 이야기가 널을 뛴다.


"거제도 안 가봤지?"

"그러니 고래를 못 봤지."

 거제도를 가야만 고래를 볼 수 있다는 건가?

그 할아버지들이 역사속에서 거제도 포로 수용소를

알만큼 나이가 들지 않았기에 거기까지는 들을 수 없었다.


 작업보다 할아버지들의 잡담속의 소소한 역사에 빠져 들었다. 짐을 챙겨 비묻은 우산을 들고 나온다.비는 그쳐 있었다. 유리창 안으로 할아버지들은 아직도 얘기를 하고 있다.


#엿듣기 #엿듣기일기 #만화일기 #6.25 #6.25가다가오니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두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