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에 책임질 나이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다
사람들은 흔히 ‘인상이 어떻다’라고 말하며 그 사람의 인품이나 성격 등을 짐작한다. ‘나이 사십이 넘으면 모든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링컨의 말처럼 지나온 세월까지도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난다고 하니 사뭇 진지해진다. 마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나이였는데, 어느덧 그 시간을 훌쩍 넘어 이제 나도 내 얼굴, 나의 인상쯤은 책임질 나이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상냥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안다고 칭찬받으며 자랐다. 나름 좋은 성격을 가졌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고교시절에 친구로부터 뜻밖의 얘길 들었다. “유진아, 나 처음에 너한테 말 걸기 무서웠어. 너무 새침해 보여서.” 그 친구는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듯 말을 이었다. 학기 초 나와 짝꿍이었을 때, 내 쪽으로 지우개가 떨어졌단다. 지우개 좀 주워달라고 말하면 “네가 주워.”라고 쏘아붙일 것 같아 차마 부탁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많이 친해지고 나서야 서로의 첫인상을 이야기하는 중에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말해서 웃어넘겼던 기억이 난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상’하면 늘 짝꿍처럼 동시에 떠오르는 에피소드다. ‘내 인상이 말 걸기 힘들 만큼 새침해 보였구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그 후로 종종 ‘새침데기’ 같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을 많이 하기 시작한 건 그때 이후부터였다. 인상과는 다른 ‘나’를 어필하기 위함이었다
얼마 전에 남편이 지갑에 넣고 다니는 내 사진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대학 때 찍은 건데 나름 인생 사진이라 생각해서 연애할 때 남편에게 준 사진이었다. ‘어머, 내가 이런 얼굴이었어?’ 낯설기 짝이 없는 차가운 모습이다. 남편과 연애 시절 때도 이런 인상이었다니, 나와 결혼해 준 남편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사진 속 내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남편에게 왜 이 사진을 넣고 다니냐며 괜한 핀잔을 주고는 거울로 향했다.
거울 앞에 서서 지금의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따뜻한 미소와 눈가에 생긴 잔잔한 주름이 조화를 이루어 서글서글한 인상이다.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배시시 웃으며 “여보, 나 인상 좋지?” 뜬금없는 질문에 남편이 피식 웃어 보였다. 부부는 살면서 닮는 다더니, 워낙 베풀기를 좋아하고 마음이 선한 남편 덕분인 걸까. 결혼 후에는 ‘인상이 좋다’는 얘길 많이 듣는다. 아내로, 엄마로서 살아오며 나의 내면도 한층 성숙해졌으리라.
젊은 날엔 인상과 인품이 불일치했더라도 이제 지나온 삶과 함께 내 얼굴을 책임져야 할 때가 왔다. 요즘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삶을 대하는 태도를 정돈해 가고 있다. 매 순간마다 감사하며 긍정하는 삶,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고 나누며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지혜와 겸손, 온유와 기쁨, 정직과 성실, 무엇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내 얼굴 가득 새겨지길 바란다. 이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을 만큼 마음 그릇이 커다란 ‘진정한 어른’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