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큼은 애인이고 싶다.
결혼 17년 차, 남편과의 데이트! 여전히 설렌다.
“여보, 내일 우리 둘만 데이트해요. 드라이브하고 브런치 먹고.” 어렵게 월차를 냈는데 밀린 집안일을 하며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뭘 할까?’ 즐거운 고민을 하다 갑자기 연애 시절이 생각나 남편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남편은 흔쾌히 분위기 좋고 브런치가 맛있는 카페 몇 곳을 검색해서 보냈다. 그 즉시 설렘주의보가 발효되었고,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활짝 핀 내 얼굴을. 어딘들 어떠하리. 둘이서 오붓하게 두런두런 이야기 나눌 수만 있다면.
17년 전 둘만의 데이트는 어느 날 셋이 되더니, 곧이어 넷, 그리고 다섯이 되었다. 다섯이 똘똘 뭉쳐 함께 나눈 행복한 시간은 그 자체로 충만하고 즐거웠다. 하지만 10년을 전업주부로 아이들 양육에 최선을 다하고, 쉴 틈 없이 6년째 워킹맘의 길을 걷다 보니 나도 별 수 없었다. 번아웃! 아이들은 내 삶에 비타민이 되어 주었지만, 한껏 지쳐있는 나를 달래줄 남편과의 시간이 절실했다. 우리의 대화 속 주인공은 늘 아이들이었기에 이제 나와 남편,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를 찾고 싶었다.
평소 잘하지 않던 화장을 하고 옷에도 신경을 썼다. 맨발로 샌들을 신으니 뭔가 허전했다. 발톱에 핫핑크 색 매니큐어를 바르며 나의 설렘도 실었다. 그 언젠가 CF 속 멘트처럼 늘 ‘애인 같은 아내’로 살고 싶었다. 무릎 나온 바지에 질끈 묶은 머리, 푸석한 얼굴의 아줌마가 되고 싶진 않았는데 평소 내 모습이 딱 그랬다. 나의 이상과는 멀어졌지만 ‘오늘만큼은 아예 애인이 되어보자.’ 마음먹었다. 단 한 사람에게 예뻐 보이고 싶어서 심장이 콩닥였다.
결혼 전에는 차가 없어서 드라이브 데이트를 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마음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으니 날개가 달린 기분이다. “어디로 모실까요?” 남편의 정중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힐링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오래전 추억을 하나, 둘 꺼내며 킥킥대고 웃다가도 힘들었던 순간이 떠오르자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다. 어느 순간 아이들 이야기로 되돌아갈 때면 애써 새삼스러운 질문을 하며 우리의 시간으로 채워갔다.
자연스레 많이 지쳐있고 힘들다는 얘기를 했다. 남편은 자기와 결혼해서 내가 고생한다며 미안해했지만, 남편 또한 가족을 위해 무척 애쓰고 있음을 잘 알기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살다 보면 부대낄 때도 있고, 서로의 진심이 왜곡되어 상처로 남기도 한다. 상처가 곪아서 터지기 전에 대화라는 처방이 필요하다. 부부만의 시간이, 둘만의 대화가 필요한 이유다. 진솔한 대화는 이해와 공감, 다독임을 동반한다.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표현은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 연애 때와는 대화 내용이 사뭇 달라졌다. 표현하지 않았다면 묻히고 말았을 이야기로 서로를 보듬을 수 있어서 더욱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이다. 이렇게 또 우리의 사랑이 견고해져 간다.
우리 부부는 한결같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이들과의 시간에 충실했다. 이따금씩 “아이들이 다 크면 우리끼리 재미있게 지내자”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어느덧 둘만의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바쁜 일상 속 남편과의 오붓한 데이트는 방전된 나를 초고속으로 충전시켰다.
연애시절을 추억하며 데이트를 신청하는 순간, 나는 남편의 애인이 되고, 남편은 나의 애인이 되었다. 우리에게 많은 변화가 있지만 나름의 근사한 시간이다. 성숙한 설렘이랄까? 결혼 전에 10년 차, 20년 차 된 부부가 참 부러웠는데 우리도 곧 20년 차가 된다. 서로 노력했기에 사랑은 더욱 깊어지고 농익어간다. 가끔씩 사랑에 빠졌던 순간을 떠올리며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가져본다면 신혼 때의 그 달콤함보다 훨씬 더 진한 부부애를 느낄 수 있지 않을지? 슬기로운 부부생활 하나, 가끔은 서로의 애인 되어주기! 설렘은 우리의 삶에 종합 비타민보다 더 강력한 활력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