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편찮으시니 어떤 좋은 걸 해 드려도 소용없다. 다 건강하실 때의 일이다.최고의 효도는 엄마와 함께 있어드리는 것.엄마가 곁에 계실 때, 원하는 걸 해드리자고 마음먹었다. 남편이 휴가를 내서 친정에서 엄마를 모셔왔다.딸이 힘들까 봐 안 오겠다고 하시다가 사위의 설득에 결국 두 손을 드셨다. 잠깐이라도 집에 와 계시는 동안 엄마가 원하는 걸 다 해 드리고 싶었다.
"엄마는 누가 제일 보고 싶어?" "자식들이 늘 보고 싶지." "우리 빼고" "윤자가 보고 싶지. 엄마랑 제일 친한 소꿉친구잖아. 윤자가 아파서 내가 마음이 많이 아파. 가보지도 못하고.."
당신 몸도 많이 아픈데 친구의 건강을 더 걱정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가 암투병중이시라니 나도 마음이 아팠다. 엄마는 이모가 수술을 받고 많이 좋아졌다며 무척 감사해하셨다.
"그럼 우리 오늘윤자 이모 만나러 갈까?" "아니,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만나러 가? 윤자 몸도 아픈데. 나도 힘들고~ 날도 더 풀려야지"
엄마는 6월 중순이 지났는데도 춥다며 계속 날이 풀리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계절감도 느끼지 못하는 엄마가 안쓰럽기만 하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하시는데미룰 필요가 있을까 싶어 얼른 이모께 전화를 했다.
"이모, 저 유진이예요. 몸은 어떠세요? 엄마께말씀 들었어요."
자주 뵙진 못 했지만, 이모를 살갑게 따랐기에 내 전화를 받고 무척 반가워하셨다. 이모는 밝은 목소리로 수술이 잘 되어 빠르게 회복 중에 있다고 말씀해주셨다.편찮으신 이모께 엄마가 치매 증상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게 돼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모도 많이 놀라시며 하루빨리 보고 싶어 하셔서 얼른 약속 시간을 정했다.
일사천리로 친구와의 만남이 성사되자, 엄마는 얼떨떨해하면서도 의욕을 보이며 외출 준비를 하셨다. 여전히 기운 없는 모습이었지만 엄마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드디어 엄마와 이모가 만났다.엄마는 머리에 두건을 쓰고 밝게 웃는 이모를 보자마자 오열하셨다.
"우리가 살아서 이렇게 보는구나."
엄마와 이모는 얼싸안고 울며 감격적인 재회를 했다.
친구가 암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수술을 했는데도 가보지도 못하는 코로나 상황이 얼마나 야속하셨을까.
함께 식사를 하는데, 이모가 숟가락질도 버거워하는 엄마를 보고는 마음 아파하셨다. 유방암 4기에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모는 엄마의 건강을 더 염려하는 모습이었다. 두 분은 그런 친구였다.
식사를 하고 가까운 올림픽 공원으로 갔다. 오전엔 날이 흐리더니 오후엔 화창해졌다.눈부신 햇살이 엄마와 이모의 만남을 함께 기뻐해 주는 듯했다. 따뜻한 햇살 아래, 두 분의 이야기꽃이 만발했다. 엄마가 아이처럼 해맑게 웃자 이모도 마주 보며 환하게 웃으셨다.
엄마와 윤자 이모는 멀리 떨어져 살았지만,코로나 이전에는 일 년에 몇 번씩 만났던 가장 친한 친구 사이였다.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못 만나는 동안,엄마는 류머티즘이 악화되었고, 우울증 증상을 보이다 결국 치매 판정을 받으셨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엄마를 늘 곁에서 지켜주고 힘이 되어주었다던 이모는 항암 치료의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중이셨다.
서로를 그토록 그리워하면서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얼굴조차 볼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나빠진 두 분을 보고 있자니 가슴한 구석이 따끔거렸다.
"극적인 만남"
엄마는 이모와의 갑작스러운 만남을 '극적인 만남'이라고표현하셨다.
남편과 나는 멀리서 두 분이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걸었다. 엄마와 이모가 어린아이들처럼 좋아하시는 모습에 뿌듯함과 함께 회한이 밀려들었다. 엄마가 잘 드시지 못하니 음식에만 신경을 썼지, 엄마가 뭘 하고 싶은지, 누구를 만나고 싶어 하는지 헤아려드리지 못했다.
'무엇인들 못 해드릴까. 엄마가 곁에 계신데...'
가을이 깊어가는 소리에, 불현듯 6월의 어느 '극적인 만남'이 떠올랐다. 남편이 함께해 줬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엄마는 두고두고 말씀하신다. 그날의 눈물겨운 재회와 사위에게 고마운 마음을...
9월의 어느 날, 엄마와 이모의 건강을 기도하며,장모님을 극진히 모시는 남편에게 한없이 고마워서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