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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여운 여인 Sep 24. 2022

남편의 사랑이 엄마를 닮았다.

평범한 일상에 특별한 순간을 기록하다.

⁠날이 참 좋다. 햇살이 반짝이며 날 나오라 손짓한다.

꿈인가 생시인가.


늘 바빴던 주말, 오늘만큼은 산에 가고 싶었다. 어젯밤 잠들기 전, 남편에게 내일 산에 가자고 했다.

남편은 나의 어제 일과를 알기에, 의욕이 앞서는 것 같다며 너무 무리하면 안 된다고 했다. 역시나 남편 말이 맞았다. 나는 식구들 아침을 챙기기는커녕 오전 시간 내내 일어나지도 못하고 침대에서 헤매있었다. 


아이들이 TV 보는 소리, 달그락달그락 설거지하는  소리에 겨우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 남편이 주방의 묵은 때를 벗기고 있었다. 순간 치부를 들킨 민망함과 미안함이 온몸 구석구석 번져갔다. 용기를 내어 한 발짝씩 내디뎠다.


"몸 괜찮아?"


남편은 휘청거리며 걷는 나를 보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쉴 새 없이 그릇을 닦아 헹구고 있는 남편에게 가만히 다가가 등을 꼭 안았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담긴 포옹이었다.


"몸은 괜찮아요. 좀 피곤할 뿐. 정말 괜찮아."


모처럼 일정이 없는 토요일, 남편이 푹 쉬었으면 했는데

내가 못 일어나니 남편이 고생이다. 아, 이 약한 체력을 어쩐단 말인가. 어제 무리를 좀 했는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어질러진 주방을 보니 심난해졌다. 남편은 싱크대며, 후드, 온갖 냄비들을 때 빼고 광내느라 바빴다. 내가 하지 못 하는 일들이다. 주말이니 좀 쉬면 좋으련만 굳이 일을 찾아서 한다. 나만 쉬고 있으니 미안한 마음에 한 마디 했다.


"여보, 냄비들 닦아도 금방 다시 또 그렇게 돼."


참, 못난 주부다. 얼마 전에 형님받아온 압력솥도 깨끗이 닦여있었다. 남편이 야심 찬 목소리로 압력 솥밥을 주겠다고 했다. 호박죽으로 아침을 간단히 해결한 삼 남매가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다. 남편은 맛있는 밥을 해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아이들을 달랬다. 나는 기운이 없어 겨우 쌀만 씻어놓고 살며시 들어와 다시 누웠다. 남편이 오전 내내 집안일을 하다 넉다운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면서.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치~~ 칙~~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구수한 밥 냄새가 방안까지 스며들었다. 힘들어 누워있으니 밥 냄새가 평소와 사뭇 다르게 와닿았다. 문득 마음까지 살 찌우던 친정 엄마의 밥이 그리워졌다.




엄마는 늘 압력솥에 밥을 해 주셨다. 지금은 류머티즘을 앓고 계셔서 손이 많이 아프신대다가 치매 초기라 음식을 못하신다. 이제 더 이상 엄마의 밥을 먹을 수 다.


결혼하기 전, 설거지를 도와드릴 때면 무거운 솥을 닦는 게 힘들어서 엄마께 묻곤 했다.


"엄마, 무거워서 닦기 힘든데 왜 굳이 압력솥에 밥을 하는 거야?"

"압력솥에 밥하면 훨씬 맛있잖아."


이유는 단 하나, 식구들에게 맛있는 밥을 먹이고 싶어서였다. 나는 따라가지 못할 엄마의 사랑이 떠올라 눈가가 촉촉해졌다. 몸이 힘드니 아픈 엄마가 더 보고 싶은 날이다. 엄마가 해 주시던 맛있는 밥을 누가 흉내 낼 수 있을까? 이제 남편이 해 주겠다고 두 팔을 걷어올렸다. 치익~~~~~ 김 빠지는 소리와 함께 한층 더 구수한 밥 냄새가 전해졌다.


'아, 밥 냄새 참 좋다.' 


냄새에 심신이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갔다. 남편은 인터넷을 여기저기 검색해보며 드디어 압력 솥밥을 해냈다. 어린아이처럼 얼마나 뿌듯해하는지 그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전기밥솥은 쌀만 씻어서 앉히면 되니 얼마나 편한가. 남편에게 굳이 불 조절해가며, 시간 체크해가며 압력솥 밥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 언젠가 엄마께 질문한 것처럼.


"하기 번거로운데 굳이 압력 솥밥을 하려고 했어요?"

"가족들에게 맛있는 밥 먹이고 싶어서 했지."


남편은 당연할 걸 묻는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맛있는 밥을 먹이고 싶은 마음, 그거였구나! 남편의 말에서 엄마의 진한 사랑이 묻어났다.

압력솥 덕분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누룽지를 얻었고,

숭늉까지도 끓여 먹을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나는, 더 이상 먹을 수 없었 압력솥 밥을 먹었다. 가족을 향한 엄마의 사랑이 가득 담겨있던 그 밥을,

이제 남편을 통해 먹게 되었다.


평범한 주말 일상에 뜻밖에 찾아온 선물이다. 남편에게서 엄마의 사랑을 느낀 오늘, 이 순간이 참   특별하다. 남편의 사랑밥이 내 마음까지 살찌우며 힘을 준다. 충전된 에너지와 받은 사랑을 나눠주려는 듯, 내 몸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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