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귀여운 여인 Sep 05. 2023

그녀는 예뻤다

더 잘 살고 싶어졌다

빨간 신호등에 멈춰서 잠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데 옆에서 자꾸만 쳐다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위아래로 훑어보는 느낌. '뭐지? 내 옷차림이 이상한가?' 자연스레 머리도 정돈해 보고 옷매무새도 가다듬었다. 그래도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느낌에 용기 내어 고개를 돌렸다. 할머니였다. 인자해 보이는 인상의 할머니...

기분 나빴던 것도 잠시,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미소로 시선을 피하는데 신호가 바뀌었다. 한 발짝 내딛는 순간,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참 예뻐요. 나도 이런 때가 있었나 싶어서..."


예쁘다는 말이 익숙지 않은 나는 또다시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 차려입지도 않고 화장기도 없는 모습인데 예쁘다니?


​"내가 여든넷인데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겠어."


"어머나, 어르신 그렇게 안되어 보이세요. 아주 고우신데요.~


"늙어서 쭈글쭈글한데 곱기는... " 손사래를 치시며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수줍게 웃으시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젊으니까 청바지만 입어도 이렇게 예쁘네?"


할머니는 또다시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하며 미소 띤 얼굴로 칭찬해 주셨다. 오십을 바라보고 있는 이 나이에 젊어서 예쁘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아니, 아주 좋았다.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어르신도 많이 고우셔요."


횡단보도를 다 건너고도 할머니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줄은 몰랐어."


"아직 한창이신데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죠."


"아휴, 살 만큼 살았지. 너무 오래 살아도 걱정이야."


​'할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나에게 말을 거신 걸까?'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나 젊었을 때 생각이 나서... 나는 이렇게 예쁘지 않았던 것 같거든. 예쁘다고 얘기해 주고 싶었어. 건강 잘 챙기면서 지금처럼 예쁘게 살아요."


​할머니는 덕담을 해 주시고 환히 웃어 보이시며 앞서 걸어가셨다.


"네, 감사해요. 어르신도 건강하셔요."


​손 흔들어 인사해 주시고 유유히 멀어져 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지금처럼 예쁘게 살라는 말씀은 이 순간의 소중함을 알고 충실하게 살라는 말로 들렸다. 매번 다짐하지만 늘 잊어버리고 만다.


​길을 걸으며 할머니와의 짧은 대화를 되뇌었다.​

정작 나는, 꾸밈없는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 예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준 적이 없다. 늘어가는 주름을 보며 옅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일상적인 나의 모습이 누군가에게 찬란해 보이고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니 신선한 충격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구나.'


더 잘 살고 싶어졌다. 그래서 늘 좋은 모습으로 비치기를 바라는 마음도 생겼다. 말과 행동, 얼굴 표정 하나까지 닮고 싶은 사람이면 좋겠다. 나아가 지극히 평범한 나의 일상 또한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 있기를...


더욱 감사하고 더 많이 사랑하니 항상 행복이 따라다니더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오늘 만난 할머니처럼 고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말 한마디로도 행복을 전하는 좋은 어른이 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작가의 이전글 지금은 장난이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