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진정한 연주자들은 말이야… 자기의 음악에, 음… 그러니까 말이야… 음…”
학생: “몰입이요?”
나: “그래, 바로 그거. 몰입!”
오래전, 한 초등학교 2학년 아이와의 레슨 중 나눈 대화다.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는 좀 더 쉬운 표현을 찾느라 머뭇거리던 찰나,
그 아이가 먼저 ‘몰입’이라는 정확한 단어를 꺼냈다.
정트리오 위인전에서 ‘몰입’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던 그 아이는,
그 의미를 마치 몰입하듯이 이해했었고,
지금은 의사가 되기 위해 또 다른 몰입의 길을 걷고 있다.
몰입이란
연주자에게는 때로는 치열한 연습과 자기단련 끝에 도달하는 상태이기도 하고,
때로는 저절로, 마치 우주의 기운이 그 자리에 데려다주는 듯한 선물 같은 순간이기도 하다.
애써 붙잡으려 할수록 멀어지고, 잊고 있을 때 문득 찾아오는 것.
그 몰입의 순간에, 음악과 나는 경계 없이 하나가 되고,
그런 몰입 속에서 연주된 음악은 우리에게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건넨다.
투명한 도자기처럼
눈물 한 방울을 조심스레 담아주는 음악.
사무치게 외로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음악.
이유 모를 짜증과 분노를
녹여내는 음악.
회색빛 일상에
각자의 색을 입혀주는 음악.
정적 속의 무료한 하루에
깜짝 놀랄 존재감을 불어넣는 음악.
그리운 사람, 그리운 장소,
지나간 시간들과 조용히 재회하게 하는 음악.
때로는
살을 에는 추위와
숨막히는 더위마저
잠시 잊게 해주는 음악.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해야 할 일’에서 시선을 거두게 하고
누군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음악.
그러한 음악은,
무한한 연습 끝에 긴장 속에서도 음악과 하나 되기를 바라는 무대 위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보통의 연주자에게
'자유'를 선물해주곤 한다
그 짧고도 선명한 순간,
무대 위에서 오롯이 혼자였던 연주가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한 기억으로 바뀐다.
연주는 쉬울수록 더 어렵다
그 노래를 온전히 끌고가야하는 힘이 힘들이지않은채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누군가 이 음악을 좋아해주겠구나’—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신기하게도 그 어려움에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힘이 붙는다.
그리고 그 모든 어려움이
기꺼이 즐거움이 된다.
그것이,
연주가 우리 안에서
진짜로 살아나는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연주든, 대화든, 무엇이든—
함께 나누는 그 순간에 몰입하고, 마음을 담아 살아가는 삶.
그 조용하고도 단단한 기쁨을
당신도 자연스럽게, 당신만의 속도로 누리게 되길.
그리고 그런 당신의 음악이
누군가의 마음에도 고요히 스며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