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녹턴(Nocturn), 물이 되어 흐르다

설명할 수 없는 음악이, 설명할 수 없이 나를 위로할 때

by 비플렛 쌤

가끔 이유도 모른 채 마음이 푹 꺼질 때가 있다.

어디 한 군데 성한 데 없이 기운이 빠지고,

내 일도, 관계도, 나 자신조차도 모두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


그럴 때 나는 쇼팽의 녹턴을 듣는다.

아무 기대 없이. 그냥...


처음엔 잘 들리지 않던 소리가

내 안의 먼지를 스치듯 조심스레 건드린다.

마치 오래된 마음의 창고를 열어

묵은 감정을 하나씩 꺼내 정리하듯,

그 선율은 내 마음 구석구석을 닦아준다


설마 이런 데까지? 싶은 곳까지

조용히 다가와 닿는 그 감각은

‘위로’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건 그냥 '닿음', '스며듦' 이다.

마치 그 음악이 나도 모르게 들어와

말 없는 방식으로 나를 돌봐주는 것처럼.


그렇게 출렁이던 '우울'의 물이

한 방울씩, 고요하게 맑아진다.


녹턴(Nocturne)은 말 그대로 ‘밤의 음악’이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유행한 피아노 소품 형식으로,

조용하고 서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감정의 미묘한 결을 풀어내는 음악.


특히 쇼팽은 이 장르를 가장 깊이 있게 확장시켰다.

그의 녹턴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삶의 고요하고 복잡한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연주자로서 쇼팽의 녹턴을 마주할 때는 늘 어렵다.

그 길은 숨 막히도록 정교해서

마치 작곡가가 그 길을 철저히 숨겨놓은듯

그 뻔한 아름다운 노래가 그리 어려울 수가 없다

겉보기엔 단순하고 아름다운 선율이지만

그 안에는 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금세 어긋나는

섬세하고도 복잡한 감정의 결이 숨어 있다.


감정이 과하면 진부해지고,

절제가 지나치면 쇼팽답지 않다.

끓어 넘치기 직전의 그 미묘한 온도를

손끝으로 운지해내야 한다.

그 균형이 흔들리면, 음악은 쉽게 무너진다.


예전에 내가 반주자로 참여했던 합창단 공연에서,

곡의 전주를 한 페이지 가득 연주해야 했던 적이 있다.

그 전주는 다름 아닌 쇼팽의 녹턴 Op. 9 No. 1.


곡의 시작을 마치 독주하듯 충분히 담아내야 했기에,

콘서트홀에서 어떤 소리가 날까—긴장 반, 설렘 반.

첫음을 누르던 순간의 감각은 아직도 생생하다.


신기하게도,

내가 첫음을 누르는 순간 그 공간의 울림이 나를 감싸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단선율로 시작되는 첫 여섯 개의 음.

리허설 때 울림이 좋아

그 구간은 과감히 페달 없이 연주했는데도

소리는 오히려 더 깊고 단단하게 퍼져나갔다.


내가 힘을 빼자,

오히려 음악이 힘을 얻었다.


공연이 끝난 뒤,

여러 사람에게서 그 곡의 전주가 정말 좋았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은 단순한 축하나 격려가 아니었다.

그날은 분명히,

음악이 나를 타고 흘러간 날이었다


그날의 연주 실황은,

전주가 쇼팽의 녹턴이었던 덕분에

합창곡임에도 불구하고 KBS FM에 종종 나온다.


한참 뒤, 딸과 함께 여행을 떠났던 어느 날.

차 안에서 KBS FM을 듣고 있던 중

쇼팽의 녹턴 1번이 흘러나왔다.


처음 세 음만 듣고, 나는 바로 알았다.

“이거… 이 음, 난데.”

딸이 웃으며 말했다.

“에이~ 엄마. 그걸 어떻게 알아?”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그날의 공간, 그 울림,

내 손끝에 남아 있던 감각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 페이지의 전주가 끝나고,

합창단의 목소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아나운서의 멘트—

“지금 들으신 곡은 ♤♧합창단의 실황 연주였습니다.”


딸이 놀라며 말했다.

“와… 진짜였네. 대박!”


그렇게 연주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녹턴은 단지 음악이 아니다.

그건 풍경이 되고, 숨결이 되고,

살아 있는 감정이 된다.


밤은 낮보다 조용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감정이 떠오른다.

소리 없이 다가와 마음을 쓰다듬는 선율,

말로는 닿지 않는 구석까지 조용히 스며드는 음악

그게 바로 녹턴이다.


기분이 어떤지조차 알 수 없는 날.

딱히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데

그저 ‘왜 이럴까’ 싶은 날엔,

쇼팽의 녹턴을 듣는다.


화가 제임스 휘슬러도 자신의 그림에 ‘녹턴’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빛과 색이 조용히 스며드는 풍경 속에서,

말 없는 감정이 묻어난다.

마치 쇼팽의 녹턴처럼,

설명 없이도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다.

keyword
이전 16화몰입: 음악과 하나 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