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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의자의 어 피아체레( A piacere)

트란퀼로처럼 살고 싶었고, 피아체레처럼 살아내다

by 비플렛 쌤

며칠 전, 운전 중 라디오에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흘러나왔다.
타타타-딴!
그 유명한 시작음에 순간, 손끝이 반응했다.

무심히 따라 부르던 선율은 놀랍도록 선명했고,

그 순간, 나는 초등학교 5학년 시절로 돌아갔다.


그 시절 내겐 그 곡이 정말 멋지게 들렸다.

웅장하고, 장엄하고, 드라마틱한 흐름.
마치 내 앞에 ‘멋진 미래’가 열릴 것만 같았다.
악보 없이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린 나에게 묘한 자부심이었다.


운명 교향곡에 푹 빠져 지내던 내 모습을

음악교사였던 엄마는 무척 흐뭇해하셨다.

마치 자신이 낳은 작은 음악가를

세상에 처음 소개하듯 자랑하시곤 했다


엄마의 또 다른 작은 음악가였던 동생과는,

심심할 때면 마룻바닥에 손가락을 대고

아무 곡이나 ‘연주’하듯 흉내 내며

서로 무슨 곡인지 맞히는 놀이를 하곤 했다.

우리에겐 그저 자연스럽고 당연한 놀이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둘 다 피아노를 전공했고,

각자의 무대에서 연주하고 가르치는 삶을 살고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조용하고 말없는 아이였다.

그런 내가 어쩌다 그렇게 격렬한 곡에 매료되었을까?

지금에야 알 것 같다.

나는 내 삶이 고요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예측할 수 없는 변화와 감정의 진폭,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긴장과 책임 속에서

프리랜서라는 삶을 살아왔다.


그 모든 것들 속에서

내가 선택한 건 나만의 평온함,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었다.


성공보다 평안,
치열함보다 균형,
요란한 박자보다 나만의 리듬.

어쩌면 운명 교향곡은
그 치열함을 통과해
결국 평화를 찾기 위한 여정의 은유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트란퀼로(tranquillo)가
나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음악 용어라고 생각했다.
조용히, 평화롭게, 부드럽게.
소란한 세상 속에서도
내면의 균형을 지켜내는 상태.
그것이 바로 내가 추구하던 삶의 태도였으므로.


하지만 또 다른 음악표현이 있다.
a piacere —기호에 따라, 자유롭게

정해진 박자나 리듬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호흡에 따라 연주해도 된다는 약속.

피아체레(piacere)는

단지 기쁨이 아니라,

복잡한 현실 속에서 내가 나에게 허락하는 작은 자유이기도 하다.


나는 늘 트란퀼로처럼 살고 싶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 삶은 언제나 피아체레처럼 흘러왔다.
격렬한 세계 속에서도
나만의 박자와 호흡을 지켜내려는 여정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조용해 보이는 삶의 안쪽엔

늘 방향을 선택해 온 나만의 리듬이 있었다고.
그 속에서 지켜낸 나만의 평화.


트란퀼로처럼 살고 싶었고,
피아체레처럼 살아냈다.


아 피아체레, 자유. 트란퀼로, 고요

나는 그 두 단어 사이 어딘가에 있는 사람이다.

자유롭지만 흐트러지지 않고,

평화롭지만 멈추지 않는.

그런 리듬으로 살아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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