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넘어갈 듯 오르던 언덕길, 그 끝에서 만난 합격
올해 초, 늦깎이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대학 강사 채용에 지원하는 일이 내 일상이 되었다.
대학에서 요구하는 경력증명서, 자기소개서, 프로필을 하나하나 작성하다 보니
‘아, 나 참 열심히 무언가 하긴 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다 문득, 나의 대학 입학 순간이 떠올랐다.
아주 디테일하게, 오래된 필름처럼 그렇게 눈앞에 펼쳐졌다.
그 옛날엔 그랬다.
지원한 학교의 예비소집에 반드시 참석해야 했다.
운동장에 번호표 순으로 줄지어 서서, 조교의 인솔에 따라 학과 건물로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그때는 ‘가·나·다군’도 없었다. 전기 한 번, 후기 한 번. 기회는 단 두 번 뿐이었다.
내가 지원한 학교는 이미 여름에 지정곡이 발표되었기에 망설일 이유도 없이 서둘러 접수를 했다.
나는 줄의 앞쪽에 서 있었다. 단상 위에서 누군가 긴 연설을 했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뒤를 힐끗 돌아보니 끝도 없이 늘어진 줄...
그동안 그렇게 ‘제발 1:1 경쟁률만 되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했건만, 대략 2.5대 1쯤은 되어 보였다(한 번뿐인 전기 입시라 꼭 올 만한 사람들만 모인, 결코 낮지 않은 경쟁률임)
백여 명이 넘는 학생들.
그중에서 내가 몇 명을 물리쳐야
꼴찌로라도 합격할 수 있을까,..
그때는 그렇게 비장하게 생각했었다.
갑자기 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원 학과별로 조교의 인솔을 받아 대기실로 향했다.
그냥 따라 걷다 보니 완만한 언덕이 나타났다.
‘이 학교에 다니려면 아침마다 힘들겠군.’
잠시 후 정면의 건물로 들어가려나 했더니 우회전, 이번엔 더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내일 실기시험을 앞둔 내겐 꽤나 버거운 경사였다.
‘이 학교 다니려면 구두는 포기해야 하나?’ 숨이 차오르며 그런 생각이 스쳤다.
좌회전을 돌자 또 다시 막바지 언덕.
학생들 사이에선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가야 해?”라는 투덜거림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눈앞에 보인 음대 건물.
그런데 이번엔 긴 계단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 시험 보기도 전에 숨이 다 넘어갈 지경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올라갔지만, 예비소집 내용은 의외로 간단했다.
시험 중 기침이나 특정 소리조차 부정행위로 간주한다는 경고 뿐.
‘그럼 나오려는 기침도 참아야 하나?’ 중얼거리며 조심스레 집으로 돌아왔다
실기시험은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첫날은 베토벤 소나타,
둘째 날은 리스트의 연주회용 에튀드였다.
첫날, 엄마와 함께 서초동 외가에서 택시를 탔다.
잠수교를 건너 학교로 향하던 그 길이, 지금도 이렇게 선명할 일인가..
시험은 10시에 시작이었지만, 나는 서둘러 8시쯤 이미 대기실에 들어섰다.
구석에 놓인 업라이트 피아노가 눈에 띄어 얼른 손을 풀었다.
곧 학생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교실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오전 수험생은 대략 마흔 명 남짓.
10시 정각, 추첨이 시작되었고 나는 다행히도 중간 번호인 16번을 뽑았다.
대기실을 둘러보니, 학생들의 3분의 2가 서울예고와 선화예고 출신이었다.
그들은 마치 쉬는 시간처럼 과자와 과일을 나눠 먹으며 까르르 웃었다.
시험을 앞두고도 그렇게 여유로울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와… 얼마나 내공이 있어야 저렇게 편안할 수 있을까?’
나는 세상 혼자인 듯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같은 눈빛을 한 학생들이 보였고, 우리는 어색한 눈웃음을 나눴다.
드디어 시험이 시작됐다.
1번이었던 서울예고 학생은 돌아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피아노가 너무 좋다, 울림도 훌륭하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피아노가 좋다는 게 무슨 뜻이지? 음정만 맞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랜드 피아노라고는 선생님 집 피아노밖에 쳐본 적이 없으니, 좋고 나쁨을 알 길이 없었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시험장은 예상과 달리 작은 공간이었다.
책상 하나 놓인 독서실 자리 같은 분위기, 피아노 한 대와 옆의 가림막.
그 너머에 심사위원들이 앉아 있는 게 느껴졌지만, 벽처럼 막혀 있어 오히려 혼자 치는 기분이라 다행이었다.
심호흡 후 연주를 시작했다.
매일 10시간씩 연습했던 덕분에 정신이 멍해도 손가락은 정확히 알아서 움직였다.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피아노 뚜껑이 지나치게 유광이라 건반이 겹쳐 보였던 것이다.
두 개의 건반, 네 개의 손… 순간 아찔했다.
‘어쩌지?’ 고민하는 사이에도 손가락은 멈추지 않고 계속 연주를 이어갔다.
겹쳐 보이는 건반은 실수를 불러올 것 같아, 결국 눈을 감아버렸다.
심한 도약 부분에서만 잠시 눈을 떠 건반을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고 연주했다.
다행히 나는 평소에도 연습이 지겹거나 하기 싫을 때 눈을 감고 피아노를 치곤 했다.
심지어 촛불을 켜놓고 치기도 했으니까.
(이 이야기는 브런치북 〈에스프레시보를 아시나요?〉 5화에 자세히 나옴.)
다행히 첫날은 실수 없이, 연습한 대로 연주를 마쳤다.
선생님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레슨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고,
이틀째 시험 날이 밝았다.
예비소집일을 포함 3일 연속으로 언덕과 계단을 오르니
왠지 체력도 길러져 전날보다 숨이 덜 찼다.
둘째 날 대기실에는 조금 다른 풍경이 있었다.
서울예고와 선화예고 학생들은 여전히 한쪽에 모여 있었고,
전날 어색한 눈웃음을 나누었던 우리—일반고 출신 네 명은 뒷자리에 함께 앉아 있었다.
서로 어디서 왔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제보다 대기 시간도 훨씬 짧게 느껴졌다.
먼저 시험을 본 친구가 돌아와 말했다.
“우리 3월에 학교에서 꼭 다시 만나요!”
(나름 멋지게, 우리는 존댓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한마디가 참,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뭉클했다.
모두가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내 차례.
전날의 경험 덕분에, 그리고 곡이 에튀드였기에
나는 눈을 감고 손가락에 몸을 맡겼다.
흔들림 없이, 연습한 그대로 연주를 끝냈다.
보통은 연습의 70~80퍼센트만 발휘해도
괜찮다고들 하는데
그날 나는 이틀 연속 90퍼센트 이상은 해낸 듯했다.
아쉬움이 별로 없었다
온 우주의 기운이, 고등학교 2학년.
너무 늦게 전공의 길에 뛰어든 나를 도와준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합격했고,
숨 막히던 언덕길도, 눈을 감고 치던 건반도
지금은 그저 웃으며 꺼내는
내 인생의 오래된 스케치가 되었다.
그때 함께 앉았던 일반고 출신,
우리 그룹은 다시 만났을까?
입학식 날,
우리는 서로를 보자마자
뛸 듯이 반가워했다.
기적처럼 모두 다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