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승의 꿈을 지원하는 피아니스트다!

처음의 꿈이 다시 꿈이 되다

by 비플렛 쌤

나의 첫 꿈은 언제나 선생님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흔들림 없이 품어온 꿈. 누군가의 곁에서 가르치고 함께 성장하는 일이, 그저 행복할 것 같았고 나와 잘 맞는 길이라 믿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음악선생님의 권유로 뜻밖에 피아노 전공의 길이 열렸다.

제대로 된 레슨을 받지 않은 채, 아침과 방과 후 시간을 쪼개가며 경남 학생경연대회를 준비했고, 믿기지 않게도 1등을 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예상치 못한 ‘피아노 전공생’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음악만 파고들던 서울의 학생들과 달리, 나는 그 무게를 알기도 전에 입시를 치렀다. 다행히 평소처럼 연주했을 뿐인데 합격했고, 그 길 위에서 “예술적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삶”이 시작되었다.


듣고, 연구하고, 구현하고, 무대에서 실수와 긴장을 견디며, 그렇게 나는 얼결에 들어선 길을 묵묵히 걸어왔고 어느덧 30년이 흘렀다. 화려한 독주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음반을 내고, 대학과 예술고에서 강의하며, 수많은 전공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도록 곁을 지켰다. 또 앙상블 연주와 합창단 반주로, 나의 성향에 맞는 자리를 찾아 살아냈다.


코로나가 닥치고, 클래식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위기가 시작되었다.

살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익숙한 자리가 마치 변함없이 계속될 줄만 믿고, 경험치만 쌓아오며 소모되던 나는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그런 자리에 있다 보니 더 이상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열심히 하라”는 말을 건넬 힘조차 생기지 않았다.


온몸이 묶인 듯 꼼짝달싹할 수 없던 그때, 우연히 후배의 권유로 전혀 새로운 분야의 박사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평생 음악 속에만 머물렀던 나에게, 평생교육학은 전혀 다른 우주였다. 사회가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배우며, 내가 품었던 질문들이 이미 수많은 연구와 이론 속에서 탐구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렵고 낯설었지만, 그 배움은 즐거웠고, 결국 나는 또 한 번의 성장을 지나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너무 아깝다. 어서 잘 쓰여야 할 텐데…’

시간은 흘렀고, 나의 수많은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어렵게 배운 공부들이 있다. 이제 그것들을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답답해하고 꼼짝달싹 못하는 사람들에게 풀어내 주고, 함께 걸어가며 돕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더 커져 간다.


지난 방학 동안 대학 강의와 평생교육학 관련 자리에 여러 번 지원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박사학위를 취득했음에도 여전히 생계의 걱정은 태산 같았다.

그러면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정체성의 혼란도 깊어졌다. 괜히 다른 분야까지 공부해 온 것이 아닐까, 스스로를 중구난방이라 탓하기도 했다.


그러던 오늘, 문득 깨달았다.
나는 길을 잃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중구난방으로 헤맨 것도 아니다.


나는 오랜 시간 피아니스트로 살아왔다. 그 길은 나를 증명하기 위한 시간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나는 굳이 대단한 피아니스트가 되려 할 필요가 없다.
대신 오랜 시간 쌓아온 노하우와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 ― 피아노를 가르치고, 반주하며, 배경음악을 녹음하는 일들로 기꺼이 수입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내가 어렵게 공부하며 예전부터 품어왔던 진정한 스승의 길을 펼치면 된다.


그렇게 떠오른 생각은 단순하지만 신선했다.
“피아니스트가 스승의 꿈을 지원한다.”

나의 꿈은 이제, 우주처럼 넓고 깊은 ‘올댓(All That) 스승님’이다.
피아노와 교육, 그리고 삶을 잇는 이야기로, 누군가에게 막막한 길을 함께 걸어주는 빛나는 스승의 자리, 그곳에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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