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렀던 날의 소리로부터

소리로 꽃을 피우고 싶었던 날들

by 비플렛 쌤

대학 신입생 시절,

2호선을 타고 강남에서 반 바퀴쯤 돌아가면,

내려야 할 역이 세 정거장 남았을 무렵부터 심장이 서서히 빨라졌다.

사람들 틈에 끼어 내릴 타이밍을 놓칠까,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온몸이 긴장했다.


문이 열리면,

지면이 진동하듯 수많은 발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힐을 신고 언덕을 오르는 학생들 사이에서

나 역시 숨을 고르며 그 무리에 섞여 달렸다.

채플이 있는 날엔 대강당 계단을 오르는 일조차

작은 마라톤처럼 느껴졌다.


아침 8시.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 학교의 1교시는 정말 ‘8시’였다.

전철역에서 후문까지 전력질주하고

교양강의실 자리에 앉을 때면

벌써 하루치의 에너지를 다 쓴 기분이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모든 것이 낯설던 나는

늘 긴장한 채로 살았다.

게다가 과대표라는 책임이 주어졌고

그 긴장은 더 짙었다.

간곡히 부탁하여 과대표를 내려놓고 나서도

평온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과팅, 미팅, 소개팅…

축제를 앞두고 이어지던 약속들은

나를 점점 더 지치게 만들었다.

공부보다, 피아노보다,

그 무수한 만남과 언덕길이 더 버거웠다.


친구들은 강남역의 새로 생긴 클럽 이야기를 신나게 나눴다.

한 번쯤은 궁금해 따라가 보았지만,

스피커의 진동과 번쩍이는 조명 속에서

나는 리듬 대신 극심한 두통을 느꼈다.

그날 이후, 다시는 가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지도교수님과의 레슨은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주었다.

그분은 따뜻하고 세심한 분이셨다.

입학하자마자

음대 꼭대기에서 후문까지 가는 지름길을 알려주시고,

학교 앞 하숙하는 제자들 가정방문까지 하셨던...

그 마음이 참 감사했지만,

레슨은 참 어려웠다.


“이 다섯 개의 음이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표현해 볼까?.”

“오른손과 왼손의 흐름은 기차 레일 위를 달리는 것 유연하고도 물 흐르듯이...”

“한 음 한 음에 마음을 담아야지..”


그때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했지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레슨실 문을 닫자마자 눈물이 툭 떨어졌다.

담주까지 어떻게 꽃을 피우지.


돌이켜보면,

그때의 고민과 미완의 연습들이

지금의 내 소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 모든 불완전함은

내 안에서 무언가가 자라나던 신호였다.


꽃을 피우지 못한 날들이 있었기에,

이제야 한 음의 의미를 헤아릴 수 있다.

그 시절의 서툴렀던 소리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밑그림이었다.


한 번씩 나의 피아노 찬양 음반을 들을 때면

스승님이 생각난다.

그분의 가르침 한마디 한마디가

이 음반 속에 잘 담겨있겠지?

생전에 들으셨다면, 좋아해 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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