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처럼 쌓이고, 도(tonic)로 귀결되는 음악

by 비플렛 쌤

크리스티안 틸레만과 빈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을 R석에서 마주했다.

연주자들의 손끝과 호흡, 표정까지 고스란히 보이는 자리.

음악이 들리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들 몸에서 ‘발생하는 순간’을 바로 곁에서 경험하는 자리였다.


공연은 틸레만의 아주 미세한 지휘봉의 떨림에서 시작되었다.

지휘봉 끝이 공기 한 올을 건드리는 듯한 찰나,

그 진동이 오케스트라 전체로 번지며

브루크너의 세계가 문을 열었다.


그의 지휘는 과장되지 않았다.

등과 어깨의 미묘한 긴장만으로도

오케스트라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전환되었고,

어떤 순간에는 몸을 낮추어

음악의 결을 손으로 직접 떠받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크게 흔들지 않아도 흔들림이 없었고,

그의 신호는 늘 정확하고 묵직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틸레만과 수석 바이올린의 끊임없는 교감이었다.

눈빛, 호흡, 활을 드는 타이밍까지

두 사람은 음악의 심장부에서 보이지 않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그 교감은 마치 내부에서 구조물을 떠받치는

숨겨진 기둥처럼 느껴졌다.


나는 음악을 조성과 화성의 흐름으로 듣는 상대음감주의자다.

그래서 브루크너 5번의 구조는 이번 공연에서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전 악장을 관통하는 중심,

언제나 다시 ‘도(tonic)’로 돌아오는 귀결.

조성이 옮겨져도 중심으로 재정렬되고,

4도와 5도를 지나 완전한 종지로 내려앉는 구조는

고딕 성당의 중심축처럼 음악 전체를 단단히 세워주고 있었다.


그 안정된 귀환은 조용히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괜찮아. 안전하고도 찬란하게 걸어갈 너만의 ‘틀’,

그리고 다시 설 수 있는 ‘땅’이 여기에 있어.”


이 말은 단순한 위로나 마무리가 아니었다.

삶 깊은 곳에 스며드는

어떤 영적인 귀결에 가까웠다.


브루크너 5번은

단순한 화성 위에 얼마나 넓고 깊은 세계를 세울 수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섬세한 피아노부터 폭발적인 포르테까지,

층층이 쌓인 시간과 신념, 고독과 확신이

각기 다른 선율로 차곡차곡 쌓여 올라가

마지막 순간 하나의 빛으로 모였다.


브루크너 특유의 대위법적 쌓임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각 악기가 고유한 음색으로 주제를 뿜어내다가

결국은 한 방향으로 수렴되는 그 구조는

경이롭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포르테든 피아노든,

층층이 쌓이든 대위법적으로 얽히든,

모든 흐름은 순간순간 ‘도’로 돌아오며

마치 한 사람의 삶을 향해

끊임없이 응원하는 목소리처럼 들렸다.


삶의 조성도 흔들리고,

뜻밖의 화성이 등장하며

어떤 날은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각자의 중심으로,

스스로의 도(tonic)로 다시 돌아온다.


음악도, 사람도.


그날, 음악이 세워준 거대한 공간 속에서

나는 작지만 단단한 확신 하나를 받아 들었다.

래서 그 작은 확신이 감사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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