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건너, 마음의 결을 이해해 가는 시간
“꽃 사세요, 꽃 사세요, 꽃 사세요~”
시골 공립중학교 음악실을 가득 메운 중학생 언니들의 합창.
그 울림이 내 기억 속 엄마의 일터에 대한 첫 장면이자,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엄마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닌 음악 선생님이었다. 재능 있는 아이를 발견하면, 시골에서는 꿈꾸기조차 힘든 음대 진학까지 아낌없이 이끌어 주셨다. 두고두고 제자들은 엄마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할머니가 된 나이에도 엄마의 장례식을 찾아와 슬퍼할 만큼, 엄마는 제자들에게 진심으로 기억되는, 그런 '진정한 스승'이셨다.
어린 시절, 그런 엄마 곁에서 자란 나는 음악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음악은 늘 일상의 배경처럼 내 곁에 있었고,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내 안에 스며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피아노를 전공으로 마음먹은 건 꽤 늦은 시점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그것도 10월 즈음.
우연히 음악 선생님의 권유로 콩쿠르에 나가게 되었고, 그 경험이 내 진로를 결정짓는 전환점이 되었다.
너무 늦은 결정이었음에도 나는 피아노 전공의 길을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으리라 여겼다. 아마도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늘 강인하고 든든했던 엄마의 존재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엄마는 평소의 도전적인 모습과는 달리, 갑자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나의 연습에 대해서는 단 한 치의 여유도 없이, 혹독하게 몰아붙이셨다. 마치 연주에서 지시하는 molto agitato처럼.
Agitato는 ‘격렬하게, 흥분하여’라는 뜻을 지닌 음악 용어다. 감정을 끌어올리며 긴장감 있게 연주하라는 뜻인데, 여기에 molto, 즉 ‘매우’라는 단어가 앞에 붙으면 molto agitato, 곧 감정을 더욱 극대화하여 한층 더 치밀하고 긴박하게 연주하라는 의미가 된다. 그때 엄마가 내게 보여준 교육 방식이 꼭 그랬다. 쉬는 틈도 없이, 감정을 몰아치듯 거세고 강렬했다.
어쩌다 정전이라도 되는 날이면, 엄마는 양손에 촛불을 들고 피아노 양 끝에 하나씩 세워놓곤 “계속 연습해”라고 하셨다. ‘오늘은 쉬겠지’ 하며 잠시 기대했던 마음은, 촛불 앞에서 허망하게 무너졌다. 그 순간,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나중에 내 딸이 생긴다면, 절대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이어진 엄마의 철저한 관리와 지도 덕분에, 나는 결국 음대에 합격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가장 무모하고 아찔했던 급커브였다. 그 결정이 엄마에게는 얼마나 막중하며 두려운 일이었을까. 그래서 더 단호했고, 때로는 냉정하리만큼 나를 몰아세우셨던 거다.
시간이 흐르고, 나도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정말로, 딸에게 피아노를 권하지 않았다. 딸은 손이 작았고, 피아노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았으니까. 대신 발레, 미술, 붓글씨, 동요 합창단까지—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마음껏 시도하게 했다.
공부로 진로를 정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어느 날,
딸은 어딘가 생기를 잃은 얼굴로 말했다.
“너무 졸리고, 피곤해…”
그 말을 듣고 나는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10시 드라마랑 11시 예능을 안 보면, 조금 더 잘 수 있지 않을까?”
그러자 딸은 울먹이며 대답했다.
“엄마는 내가 그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 말에 순간 당황스러웠다. 단지 잠을 더 잘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예전에 내가 엄마에게 하고 싶었지만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을, 딸이 내게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것 같았다.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엄마도 그 촛불 앞에서, 오늘만큼은 쉬게 해 줄까... 망설이셨겠구나.’
나에겐 agitato로만 느껴졌던 엄마의 양육이, 어쩌면 엄마의 마음속에서는 나를 위한 조심스러운 poco a poco였을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를 딸에게 솔직히 털어놓자, 딸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10시 드라마는 안 볼게.”
고등학생이 밤 10시 드라마를 안 보기로 한 일이, 어쩌면 그리 대단한 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딸이 엄마인 나, 그리고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의 마음까지도 조용히 헤아려 준 것 같아 고마웠다.
나는 엄마처럼 몰아치는 방식은 아니지만, 딸이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옆에서 응원하고 지지하며 기다리는 나만의 방식을 지켜왔다. 나는 딸에게 poco a poco, ‘조금씩, 천천히’의 방식으로 다가갔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딸에게도 나는 또 다른 agitato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 성인이 된 딸이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템포로 조율하며 걸어가고 있는 지금, 나는 어떤 엄마로 곁에 있어야 할까.
Poco a poco.
이제는 조금 더 천천히, 더 깊이 있게 딸의 삶을 바라보려 한다.
때로는 한 걸음 뒤에서, 때로는 나란히 걸으며, 무엇보다 딸이 삶을 연주해 가는 리듬을 존중하는 엄마이고 싶다.
그 옛날 엄마의 촛불은 지금도 내 안에서 다양한 색으로 잔잔히 빛나고 있다.
그 빛은 연습에 몰두하던 어린 날의 나,
그리고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 깊숙이 퍼져오는, 그땐 미처 알지 못했던 엄마의 따스함을 지나
자연스럽게 그리움이 머무는 자리를 만든다.
Molto agitato였던 엄마의 촛불은,
poco a poco 걸어가는 이 길 위에서 이제는 잔잔하고 따뜻한 빛이 되어 우리를 비추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