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집 구들장 괜찮니?"

꽃다운 사절단으로 다녀온, 제주 2박 3일의 기록

by 비플렛 쌤

고등학교 친구들과 제주 여행을 갔다.
계획도 딱히 없었고,
숙소도 마침 같이 가는 친구 동생이 게스트하우스를 내어줘서
그저 편하게 머물다 온 여행이었다.


친구랑, 그것도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간다는 건
참 신기하다.

딱 그 나이로 돌아간다.
자동으로. 거의 반사적으로.


맛집 찾아다니고,
미술관도 가고,
그냥 느긋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함께 즐기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그러다 문득, 제주에 사는 또 다른 동창이 떠올랐다.

홈커밍데이 때, 모교 강당에서 보고
벌써 10년이 지났던 친구.


누군가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다.
“우리 제주야.”

사실 어른이라면 한 번쯤 멈칫했을 것이다.

지금 전화해도 될까,
혹시 바쁘진 않을까,
괜히 부담되는 건 아닐까.


그러나
함께이고,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우리’에겐
그게 가능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었는데
예고도 없이 걸려온 전화에도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었다.


그날 저녁,
제주 현지인만 간다는 대만 음식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친구.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늘 유쾌했고, 노래를 잘했고,
사람들을 참 잘 챙기던 친구였다.


긴 뽀글 파마머리에
하이디 같은 빨간 체크 조끼,
하늘하늘한 주름치마.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만화 속 캐릭터 같은 모습이었고
그걸 또 너무 잘 어울리게 소화하고 있었다.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환상적이었다.


오랜만에 동창을 만나면
누구나 늘 하는 말.

“너무 오랜만이다~~"

"어쩜 넌 그대로니~”


그런데 알고 있나.
그 말을 하는 우리는
모두 진심이라는 것을.


처음 먹어보는 대만 음식이었는데
가리는 것 많은 내 입맛에도 맞는 음식들이 꽤 있었다.

밥과 수다를 한 입으로 나누느라 바빴던 저녁이 지나고
우리는 카페를 찾아 나섰다.


제주 친구는
우리에게 ‘뻔하지 않은, 제주다운 괜찮은 카페’를
꼭 보여주고 싶어 했다.

생각보다 제주 밤에는

카페가 빨리 문을 닫는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하마터면 우리는 커피도 못 마신 채
헤어질 뻔했다.

결국, 극적으로 카페를 찾았고
우리는 그곳에서 끝없이 이야기하고,
까르르 웃고,
추억을 소환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야말로 여고생으로 돌아간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조용히 이야기했다.

“나 내일 명예퇴직이야.”

36년을, 꼬박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그 긴 시간을 마무리하는 바로 전날,
우리는 그 친구를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친구가 나를 보며 물었다.

“너네 집 구들장 괜찮니?”

순간, 시간이 멈췄다.

아… 그때...


중학교 2학년 2학기,
그룹 춤 대회를 준비하던 날.

운동장에서 연습하다가
날이 추워져서
내가 “우리 집 가자” 했던 날.


마당도 있었는데
굳이 안방에서 하자고 했던 것도
나였던 것 같다.

프로그램도 나름 만족스럽게 잘 짜여 있었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추고 끝내자” 했는데

그때, 한 친구가 갑자기 멈췄다.


“수연아… 방 구들장이 깨진 것 같아.”

정말이었다.

평평하던 방바닥이 어딘가 울퉁불퉁했고,
금이 간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스쳐 지나간 생각.
“아… 나 진짜 혼나겠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너희 집에 가. 괜찮아.” 말하고 친구들을 먼저 보냈다.


그날 밤,
엄마 눈치를 보며 태연한 척 물었다.

“어!!! 엄마, 방바닥 이상하지 않아? 왜 이러지?”

엄마는 담담하게
“그러네. 내일 사람 불러야겠다.”


그날 밤 나는 혼이 나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괜히 연탄가스가 걱정돼
안방 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나는 나름 가족들을 연탄가스로부터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던 거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고,
다음 날 돌아와 보니
안방은 수리 중이었다.

그 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그 기억은
나에게만 남아 있는 줄 알았다.

누구와 함께였는지도
점점 흐릿해진 채.


그런데 50년이 지난 지금,
제주에서
그 친구의 입으로 다시 꺼내졌다.

그날 안방에서 함께 춤추던 친구 중 한 명이
바로 그 친구였던 것이다.


그 친구의 기억 속에도
그날은 ‘걱정’과 ‘미안함’으로
오래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나 그때 진짜 걱정했어…”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무 일도 없었어. 나 안 혼났어.”

그 말을 듣고
친구는
정말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안심하며 웃었다.


그 순간,
중학생 두 명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헤어지고
다음 날, 우리는 즉흥적으로 동백꽃을 보러 갔다.

여행비로 모아둔 돈이 꽤 남아 있었기에
“한 번쯤은 비싼 저녁 먹어보자!” 하고
넷이서 메아리처럼 외쳤다.

“우리 돈 많아! 이 정도는 먹어도 돼!”

그러다 문득
제주 친구가 다시 떠올랐다.

이번엔 우리가 초대하고 싶어서
카톡을 보냈다.


그리고 도착한 답장.

“어제 제주로 온 꽃같이 어여쁜 친구들은
퇴임을 축하해 주는 사절단이었네^^
엄청 고마웠다^^

졸업식 마치고 선생님들께 일일이 인사하고
퇴근시간 맞추어 마지막 퇴근^*^

제주에서의 시간들 행복하게 잘 보내고
언제 어디서나 건강하고 행복하길~
새해엔 뜻하는 일도 모두 모두 이루어지길~~~ 짠!”


아,
우리는 꽃 같은 사절단이었구나.

그날 저녁, 디너를 먹고 있던 우리 앞에는
통창 너머로
제주의 석양이 펼쳐지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붉고,
가장 따뜻한 색으로.


짧지만 참 따뜻했던 2박 3일의 제주 여행.

돌아보니 한 사람의 시간을

함께 건너가 준 시간이었고,

서로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던 장면들을
다시 꺼내어
안심시켜 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는 나이를 먹었지만,
어떤 순간에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우리’는,

찡하게 아름다운 녹턴처럼
조용히, 깊게,
서로의 마음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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