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8일의 시작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가장 좋아하는 커뮤니티 시설은 입주민 카페다.
강의나 레슨을 가는 날이면 엘리베이터만 타고 내려가면 바로 그곳이다.
착한 가격의 커피 한 잔을 들고 출발할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꽤 큰 안도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리스타님과 친했다.
아침마다 마치 친한 친구를 만난 듯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근황을 묻곤 했다.
하루를 여는 작은 의식 같던 그 시작이 참 좋았다.
최근 바리스타가 바뀌었다.
여러모로 아쉽지만, 무엇보다 속도가 아쉽다.
앞에 오래 걸리는 주문이 있으면 그 일이 다 끝날 때까지, 혹은 잠시 짬이 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 더 일찍 내려온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이분께 여유를 드리고 싶어서.
커피를 기다리며 창밖을 보았다.
엄마가 아이의 분홍 가방을 대신 메고 있었다.
아이는 곧 초등학교에 입학할 것 같은 나이.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 뒷모습이 묘하게 비장해 보였다.
다음 주면 입학식이 있을 테니 집에서부터 학교까지 걸어보는 중이겠구나 싶었다.
엄마도 처음, 아이도 처음.
유치원과는 사뭇 다를 공교육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걸음.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오래전 내 기억이 선명하게 겹쳐졌다.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우리는 갑작스럽게 고향으로 내려갔다.
유치원 친구도 없이, 나 역시 교문 앞에서 인사 나눌 엄마 한 명 없이 시작했다.
억양도 문화도 다른 곳.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참 많았다.
학교까지 6분 거리.
나는 매일 손을 잡고 걸어다녔다.
“여긴 서울이랑 달라. 신호등 없어도 조심해야 돼.”
“신호 바뀌었다고 바로 튀어나가면 안 돼. 알겠지?”
나의 불안과 걱정은 잔소리 폭발로 이어졌다.
아이를 향한 말들이었지만, 어쩌면 나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주문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하교 시간, 교문 앞에서 기다리던 어느 날 딸이 보였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양쪽 손에 친구 손을 꼭 잡고, 셋이 나란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오며 들려온 딸의 목소리.
하이톤으로 신나게 말하는데, 완벽한 경상도 사투리였다.
어설픈 흉내가 아니라, 정말 자연스러웠다.
고향에 내려올 때면, 내 동생인 이모에게
“서울말 써야지.” 하며 사투리를 또박또박 지적하던 아이였다.
억양 하나에도 기준이 분명했던 아이.
그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사투리’를 수용한 것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잘 서기 위해.
그 순간 알았다.
나는 걱정 속에 머물러 있었지만, 아이는 이미 자기 방식으로 세상에 적응하고 있었다는 것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도 딸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이제 됐구나.
이제는 조금 덜 걱정해도 되겠구나.
사람은 매 순간 ‘처음’을 경험한다.
초등학교 입학은 아이에게 단단한 처음이었고,
그때의 나는 ‘초등학생 엄마’라는 처음을 건너고 있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기다리며 본 오늘의 그 뒷모습도
아마 그런 시간을 지나고 있을 것이다.
처음은 늘 비장하다.
처음은 늘 조심스럽다.
그리고 처음은 종종 부모를 과하게 만든다.
하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건넌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동안에도,
이미 한 발 앞서 자기 세계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비로소 우리의 불안을 내려놓는다.
오늘도 나는 커피를 기다리며
또 하나의 ‘처음’을 떠올린다.
누군가는 입학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일을 배우고,
누군가는 바뀐 자리에서 아직은 서툰 속도로 커피를 내리고 있다.
처음은 느리다.
그래서 더 단단하다.
낯선 억양을 수용하며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던
오래전 딸의 시작처럼.
2026년, 3월
이번에도 나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내 삶의 다음 문장을
써 내려가 보려 한다.
제가 사용하는 갤럭시 노트 펜으로 갤럭시 언어를 그림으로 그려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