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어 있던 것들이 이제야 제자리를 찾았다
모처럼 집정리를 조금 했다.
이 집에 이사 온 지 2년이 조금 지났다.
이사 올 즈음은
박사 코스웍을 마무리하던 때였고,
소논문에서 박사논문으로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그래서였을까.
이삿날,
이삿짐 센터가 정리해 준 그대로
꼭 필요한 것들만 꺼내 쓰며
그 상태로 계속 살고 있었다.
날씨가 조금씩 풀리고,
이사하고 맞는 세 번째 봄을
조금은 정돈된 계절로 시작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슬슬 올라왔다.
벽에 못을 박지 않아
선반 위에 아슬하게 기대어 있던 시계,
그림 액자들.
쇼파 뒤, 손이 닿지 않아
켜지도 않았던 스탠드.
엉켜 있던 전선들.
눈에 거슬리던 것들부터
하나씩 손을 댔다.
강력 접착 걸이를 사서
벽에 하나씩 걸어보니,
이제서야
액자들이 제자리를 찾은 듯
자기 빛을 낸다.
이사하고도 오랫동안
이 집은 어딘가
‘임시 상태’ 같았다.
바빴다는 이유도 있었고,
정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었고,
그 이유들을 핑계 삼아
나는 집들이도,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도
계속 미뤄왔다.
생각해 보니
나는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이
편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어릴 때는
누군가 우리 집에 오는 게 좋았다.
뭘 잘 차려내지 않아도 괜찮았고,
그냥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초대는 조금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다.
정리해야 하고,
준비해야 하고,
괜찮은 모습으로 있어야 할 것 같고.
특히
음식 앞에서 자꾸 멈칫하게 된다.
나는 고기도, 생선도 못 먹는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래서 늘 들었던 말,
편식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
틀린 말은 아닌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어딘가 조금씩 작아지는 느낌이 있었다.
누군가와 밥을 먹을 때면
나는 늘 조금 신경 쓰이는 사람이 된다.
메뉴를 바꾸게 하는 사람,
배려를 받아야 하는 사람.
괜찮은 척도 해보고,
그냥 웃고 넘기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은 늘 불편했다.
그러다 한 번,
내 몸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이 체질에는 맞다는 말.
그 순간,
내 안에 오래 남아 있던 어떤 마음이
조용히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오랜 편식에 대한
처음으로 받는 공식적인 허락 같았다.
나는
‘편식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내 몸에 맞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추려 했고,
모든 사람에게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했고,
그래서
정작 나를
내 공간에 들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한 번은
나와 식성이 비슷한 분이
우리 집에 머물던 날이 있었다.
나는 왠지 그날,
별다른 고민 없이
내가 먹는 방식 그대로 소박한 식사를 준비했다.
담백한 국과 밥, 그리고 몇 가지 반찬.
그분은 그 식사를 아주 맛있게 드셨다.
그때 처음 알았다.
누군가가
내가 내어놓은 음식을
맛있게 먹어준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함께 알게 되었다.
나는
무언가를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려다
나를 놓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사람을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초대하지 못했던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였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조금씩 연습해보려 한다.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괜찮은 방식으로,
완벽하게 준비된 모습이 아니라
지금의 모습 그대로,
나를 내 공간에 들이는 연습을.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이
더 이상 부담이 아니라
그저 나를 나답게 내어놓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기를 바라본다.
나처럼 초대받아 방문한 친구가, 가방에서 쓰윽 꺼내 순식간에 만들어낸 한 접시—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