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이름

유별난 연민은 사랑일까

by 신지후

형신오빠는 자주 거실 구석에 버려진 곰인형처럼 누워 있었다. 노형신. 그는 막내이모의 셋째 아들이었다. 내가 형신오빠라고 부르며 늘 업고 다녔던 나와 네 살 터울의 이종사촌. 가슴 아프게도 열일곱이 되도록 엄마라는 단어밖에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다운증후군에 심각한 자폐가 있었다. 대소변도 혼자 가리지 못했다. 어른들은 샘이 나서 그러는 거라 얘기했는데 걸핏하면 내 동생 혁이를 손으로 밀어 넘어뜨리기 일쑤였다. 사고뭉치 말썽쟁이라서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었고, 심지어 그의 가족들조차 그를 외면했다.

여기저기 놀러 다니기 좋아하는 막내이모가 종종 형신오빠를 우리 집에 며칠씩 맡기고 가족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우리 집 거실에서 웅크리고 앉아있던 형신오빠는 흡사 동네 골목 어귀에 버려진 커다란 곰인형 같았다. 나는 그런 그가 처음부터 좋았기에 애틋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들 꺼려한 형신오빠 곁에 꼭 붙어서 그의 손을 잡고 같이 바닥에서 방방 뛰거나 함께 소리를 지르거나 밥을 떠먹여 주었다. 그러다 그를 기쁘게 해 주려는 요량으로 업어주기 시작했다. 우람한 덩치에다 항상 침을 흘려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지만 매일같이 틈나는 대로 업어주었다. 그는 웃으면서 나의 목에 팔을 두르고 즐거워했다.

말을 못 하는 그에게 유치원에서 배웠던 한글을 가르쳐주려고 애썼다. 알아듣는 것 같지 않았지만 사촌동생이 하는 미니강의 시간에는 형신오빠도 제법 진지하게 응했던 걸로 기억한다. 적어도 괴성을 지르며 몸을 뒤틀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형신오빠와 나는 귓속말놀이라는 걸 즐겨했다. 내가 그의 귀에다 대고 형신오빠 웃어봐, 귀여워, 이발하니까 더 예쁘다 따위의 말들을 늘어놓으면 그가 나의 귀에다 대고 와하하 웃는 식이었다.

집안에서 지적당하는 오랜 버릇이 있다. 나 말고는 그런 버릇 가진 사람을 못 봤다. 별로 특이할 건 없는 버릇인데 집에서 '형신이 흉내' 좀 그만하라고 한다. 꼬들꼬들한 밥알을 보면 뭉쳐서 가지고 노는데, 형신오빠가 항상 밥상에서 보인 버릇이다. 어느 날 아침에는 무심코 왼손 검지와 엄지로 밥알을 굴리다가 울음이 터져 나와 황급히 식탁을 떠났다. 심란할 때 이상하게생각난다, 형신오빠가. 그는 열여덟 가을 즈음 죽었는데 내가 그의 죽음을 목도한 것은 아니라서 그런지 몰라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지금도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 같아서 비보를 접하고서도 울지 않았다. 끝내 울지 못했다.

그때의 연민은 사랑이었을까.

나는 아직도 그 질문을 안고 산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그를 좋아한 이는 나뿐이었지만

그가 따르던 사람도 나뿐이었다.


"사랑해, 형신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