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인생

기억상실

by 신지후

내 나이 여섯 살. 아, 고달프다.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8월의 한낮 두시쯤이었을까.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친구 은경이와 손을 잡고 십 미터 남짓 떨어져 있는 건너편 놀이터로 향하던 중, 내리막길에서 미친 듯이 우리 쪽을 향해 질주해 오던 중국집 배달원의 빨간 오토바이가 결국 우리를 치고 말았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나는 붕 떠서 2미터 이상 날아가 쓰러졌고 은경이는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고 한다.

내 인생 최초의 기억.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피범벅이 되어 놀이터 입구 아스팔트 위에 누워 있다. 사람들의 비명과 고함, 내게로 달려오는 엄마의 울부짖음이 뒤섞여 머릿속이 시끄럽고 멍하다.

나의 몸 여기저기서 붉은 피가 흐른다. 몸이 점점 빨갛게 물들어간다. 무섭다. 나는 혼신을 다해 울어재꼈다.

한편 나와 함께 오토바이에 치였던 친구 은경이는 무릎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다.

구급차가 아닌 택시에 나를 태워 엄마는 강동성심병원으로 가자고 다급히 택시기사에게 말한다. 떨리는 손길로 나를 안고서 어쩔 줄 몰라하는 우리 엄마. 그러나 나는 엄마의 품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분이 내 가족인가 보다. "내 딸! 많이 놀랐지? 많이 아프지? 괜찮아. 얼른 병원 가자. 괜찮아!"

아무런 생각도 제대로 할 수 없지만 애써 기억을 헤집어본다. 기억나지 않는다. 울먹이는 사람이 나에게 엄마 알아보겠냐고 몇 번이고 다그쳐 묻는다. 그 기세에 눌려 몇 번인가 고개를 끄덕인다.

병원에 도착해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다.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고 병실로 옮겨졌다. 막내 이모를 비롯하여 동네사람들과 친지 몇 분이 병실을 방문해서 말을 건넨다. 나는 상의만 입고 있는 상태였다.

몸이 아픈 것은 모르겠다. 내 앞에서 어른들이 웃고 나를 바라보는 것만이 견딜 수 없이 수치스럽다. 제발 병실에서 나가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입을 열어 말을 하는 것조차 수줍다. 병적인 수줍음.

'이 사람들은 대체 뭐야. 왜 나를 빤히 내려다보면서 깔깔 웃는 걸까. 기분 나쁘다. 으악! 너무 싫어!'

그런 생각들로 불만에 가득 차서 왕왕 울어버렸다. 당황한 친지들은 나를 달래려고 가까이 몸을 숙여 다가왔으나, 기분도 나쁘고 겁에 질려 있던 나는 더 크게 울었고 몸부림치며 그들의 손길을 뿌리쳤다.

일주일 정도 입원했다가 퇴원하고서 엄마가 너무 불안해하셨기에 그 후로 꽤 오랜 시간을 집안에만 있어야 했다.

사고 당일의 기억은 물론이거니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동네 단짝이라는 은경이 손을 잡는 게 망설여진다. 은경이가 병문안을 와서 자기 무릎의 딱지진 작은 흉터를 내보이며 자신은 이것밖에 다치지 않았다고 자랑한다.

얘는 뭐람. 모르는 아이가 자꾸 친한 척을 한다. 솔직히 마음에 드는 아이가 아닌데, "내가 너랑 친구야?"

그러니까 은경이는 해맑게 그렇다고 대답해 주었던 듯하다. 기억이 불분명하다. 그 애는 방긋방긋 잘 웃는 아이였다. 덩치가 커서 나보다 언니 같은 친구였다. 그러나 속내가 어른스럽지는 않았다.

고무줄놀이를 좋아하기도 했고 또 그 놀이를 잘하기도 해서 그건 좀 부러웠다. 은경이와 다시 친구가 되기까지 꼬박 일 년이 걸렸다. 처음부터 친구라고 어울리기는 했으나 친구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이다.

엄마가 바깥출입을 못하게 했고, 작은언니는 동생 간호를 위해 그렇게 좋아하던 피아노학원도 가지 않았다. 한동안 잠에서 깨면 언제나 내 손을 꼭 잡고 걱정스레 내려다보는 예쁜 소녀가 보였다. 그 소녀가 나의 작은언니란 것을 무려 삼 개월 후에나 알았을 만큼 나는 둔하고 주변상황파악이 더딘 아이였다.

예쁘고 나한테 잘해주는 소녀가 좋았다. 다시 바깥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소녀는 내 손을 꼭 잡고, 어른스러운 얼굴을 하고 나를 챙겼다. "수민아, 어디 가냐? 같이 가자!"

두 살 어린 주제에, 동생인 주제에, 어릴 적부터 주제 파악 못하기로 유명하고 건방지기 짝이 없었던 나는 거침없이 작은언니 이름을 부르고 졸졸 쫓아다녔다. 성격 좋은 작은언니는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여섯 살 크리스마스이브.

작은언니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선물이 갖고 싶어?" "진짜 내 가족."

그게 무슨 말이냐고 작은언니가 다시 물어왔지만 입을 굳게 다물었다. 당시에 나는 늘 서러웠고 매일 눈물이 났다.

기억상실이 드라마 속에서나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는데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임을 나는 안다. 어렸기 때문에 기억상실 개념이 없었고 내가 가족을, 친구를, 심지어 내 자신을 기억 못 한다는 걸 누군가 알게 된다면 나는 고아가 되거나 외톨이가 될 거라고 막연히 불안에 떨었다.

그로부터 7년이란 세월이 흘러서야 작은언니에게 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함을 고백하며 마음의 짐을 덜었다.

이제 나도 어른이 된 걸까. 더 이상 꾸지 않게 된 악몽이 하나 있다.

사람들이 나를 빙 둘러싸고서 웅성댄다. 구경꾼들이 원망스럽다. 알 수 없는 수치감이 고개를 쳐든다. 햇볕이 너무 뜨겁다. 내 몸은 피로 물들었다. 어지럽다. 당장이라도 토할 것처럼 울렁거린다. 나는 무슨 연유에선지 계속 울고 있다. 외롭다. 무서워 죽겠다.

온몸이 떨린다. 멀리서 내 딸!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나를 안아 올린다. 이 사람은 누굴까.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내 편인 것 같아서 안심이다.

아니, 여전히 마음이 불안하다. 나는 목놓아 울고 있다. 나는 울고 싶다. 나는 운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나를 안고 서 있는 사람에게 엄마라고 불러보고 싶은데 목소리가 안 나온다. 두렵다. 서럽다. 숨이 가쁘다. 뭔지 모를 답답함과 공포스러운 상황에 몸이 점점 굳어온다.


아아, 이내 이게 꿈인 것을 알아차린다. 피로 물든 몸은 땀으로 젖어있다. 어두운 새벽공기가 차다. 모두가 잠들고 나만 깨어있는 듯한 순간들이 나를 절망으로 이끈다. 괜찮다. 슬픈 꿈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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