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애, 어쩌면 구원

힘들고 괴로웠지만 사랑하고 행복했습니다

by 신지후

독백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늘 입에 달고 살았다. ‘태양’은 견디기 힘든 것 같았다. 가끔은 대화도 안 되고 취향도 관심사도 성격도 전부 달라서 곁에 두는 것만으로 신경이 쓰이는 언니가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태양’의 시선과 말투에 할 말을 잃고 황망히 서있었다. ‘태양’과 함께 있을 때 지껄이는 말들의 대부분은 “너를 좋아해.”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지만 침묵하는 게 차라리 좋았을 텐데 끝없이 떠들었다. 철부지의 여과되지 않은 감상과 불안은 ‘태양’의 인내를 갉아먹었다.


초가을 새벽에 무작정 ‘태양’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을 때 ‘태양’은 그날도 나를 무리해서 만나주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편의점 파라솔 아래서 담배를 태우며 ‘태양’은 이렇게 말했다. “언니, 언니는 진짜 아주 많이 언니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겠다.”


혼자 사랑하고 혼자 이별하기를 반복하다가 겨우 마음에서 내려놓았던 짝사랑. 세월이 흘러 너에 대한 마음도 조금씩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태양’에게 단 하루라도 연인으로 인정해 준다면 그 후로 아예 만나지 못한대도 평생 너의 사람으로만 지낼 거라고 했지만 ‘태양’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 무심한 태도를 견지했다.


맹목으로 치달았던 치기 어린 사랑고백을 곰곰이 되짚어본다. 얼마나 이상하고 추했던가. 너의 무관심이 속 깊은 배려였음을 깨달을 때마다 뼈아팠다.


오랜 시간이 지나 우리는 웃으며 편안히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 사이가 됐다. “언니는 따듯해. 불안하고 휘청거릴 때조차 따듯해. 어떻게 일관적으로 따듯할 수가 있을까 신기해. 계속 따듯하려면 뭔가를 끊임없이 태워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했지.” “뭘까, 끊임없이 태우는 연료가.” “나에게 느낌표와 물음표를 동시에 던져주는 언니라서 좋다.” “너는 느낌표였는데 이제는 나에게 쉼표로 다가와.” “이 관계의 8할이 언니로 인해 만들어졌어. 앞으로는 같이 채워나가자.” “그래. 그러자. 행복하다.”


우리는 이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 ‘태양’은 재앙의 세월 동안 어둠의 공포에 잠식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다고 토로했다. 나에게 산다는 것은 외로움의 공포를 견디는 일이었는데. 어쩌면 우리는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로의 결여를 견디면서 서로에게 구원이었다고 믿고 싶다.


앵콜요청금지라는 제목을 달아서 짝사랑하는 ‘태양’에게 A4 5페이지 분량의 구애를 절절히 정신없이 쏟아냈던 과거가 무색해진 지금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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