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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연 Jun 27. 2023

환승역에서

잘 살아가는줄 알았다.  큰 문제도 없고 지난날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생활이라서 거기에 만족하고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문뜩문뜩 몰아치는 감정의 광풍을 피할 수는 없다.  산다는 것에 대한 회의일 수도 있고 후회일 수도 있고 자기연민일 수도 있다.

살면서 만족이란 쉽게 가질 수 없는 사치인 것 같다.  내려놓음의 과정을 동반해야 하는  만족이라는 의미는 사실 이제 그만이라는 포기의 삶 같아서 그리 마음이 가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살았으면 이제 됐다는 마음 또한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인생 제2막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마냥 내려놓고 살고 싶은 나이는 아직 아닌 것 같아서 무엇인가에 몰두해야 할 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무엇이든 남은 생이라는 담벼락에 작은 벽돌하나 올려놓을 수 있다면 좋으리라.  그러면 아직은 살아있다는 강한 자신감으로 씩씩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만해도 용기가 용솟음친다.  기슴 뿌듯하다.


왕십리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면서 인생을 생각한다.  내인생의 환승은 언제쯤 해야하고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어떤 라인으로 갈아타고 어디서 내려야 할까?

은퇴라는 싯점은 쉼이 아닌 또다른 행로의 시작을 말하므로 반드시 나의 나머지 생으로 출발하기 위한 환승역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허둥대고 싶지는 않다.

.  

왕십리.

가도가도 왕십리 비가 오누나....,

경의중앙선 금릉역에서 출발해서 이제 왕십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환승을 해야한다.

나의 목적지는 삼성역이라고 정해져 있다.  그리고 쉽게 2호선으로 갈아타고 삼성역에서 내리면 그만이다. 아주 간단명료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나머지 인생을 위한 목적지를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허둥댄다. 이게 싫은 것이다.

목적지가 없다.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른다.

내가 가야할 그곳이 어떤곳인지를 모른다.

그래서 내자신에게 미안하다.


환승역이 다가오고 있다.

가야할 목적지를 모르므로 그냥 계속 가버릴까?

그렇다면 그곳은 더 암울할지도 모른다.  적응하지 못할 환경이 나를 짓누를 수도 있겠다.

왕십리에서 내리자. 그리고 지하철역 공중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고 2호선으로 환승을 하자.

생각이 끝났다.

서울의 지하철역 공중화장실 가운데 왕십리역의 남자화장실의 악취가 가장 심하다.  그리 믿고 있다. 마치 내가 살아온 지난날의 댓가를 오롯이 받는듯 하다.  나는 하필이면 가장 냄새가 고약한 이곳에서 환승을 하게 되었을까? 깨끗하고 향기가 나는 환승역도 많고 많은데 하필이면 왕십리에서 환승을 해야하나.  이것은 내가 파주로 이사를 했고 거기서 지금 살고 있고 삼성역 근처의 회사에 근무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온 궤적의 끝이 그곳이므로,  그곳이 나의 과거로 인해 선택되어져 버렸기에 왕십리에서 환승을 해야하는 것이다.


목적이 있는 삶.

말은 좋은데 그게 간단하지 않다.

인생의 환승싯점에서 다음생의 목적을 설정하기가 그리 쉬운게 아님을 간접경험으로도 알고 있다.

누구나 그렇듯이 삶은 두가지의 방향으로 전개된다.

안주하거나 아니면 도전하거나....

그리고 안주는 쉼이 아닌 또다른 정체됨이라고 믿기에 나의 나머지 인생만큼은 정체된 박스안에 가두고 끝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이 환승역에서 비록 악취가 풍기는 화장실에서 소변을 볼지언정 빠른걸음으로 2호선을 향해 걷는다. 그리고 삼성역에서 내릴 것이다.  그러면 내가 근무하는 회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주 쉬운 이 논리는 나에겐 도전이다. 도전의식으로 무장하고 매일을 살아야 한다는 의식을 매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는 향기로운 화장실이 있는 환승역에서 소변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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