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직접 지은 공간
지선과 인성은 여주에 살고 있는 조각가 부부입니다. 자신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형체가 있는 조각품으로 만들어내는 이 두 조각가는, 조각품 이외에도 현관에 놓일 벤치부터 시작해 협탁과 축양장은 물론이거니와 집과 작업실 까지도 직접 본인의 손으로 뚝딱뚝딱 만들어냅니다. 직접 집을 짓다니! 집과 그들 사이에 생긴 이야깃거리가 많을 것 같아 귀동냥을 하러 갔지요.
부부라 닮은 것인지 닮아서 부부가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둘은 참 닮았습니다. 비슷한 둘이 내뿜는 분위기가 참으로 선하고 따뜻해서 바라보고 있자면 마음속으로 아무런 저항 없이 이 둘이 항상 이렇게 따뜻하고 귀엽기를 하고 응원하게 됩니다. 둘을 만나면 많이 웃게 되는데 그들이 툭툭 내뱉는 말들이 참 솔직한 데다가 재밌기 때문입니다. 아웅다웅 티키타카를 나누는 둘을 보며, 이 둘을 인터뷰할 것이 아니라 옆에서 바라보며 대화를 그대로 받아 적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 두 사람에게서 최근 작업에 대한 생각, 부부 조각가로 살며 좋은 점, 여주에 사는 것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지선과 인성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 Chapter1. 부부 조각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지선 안녕하세요. 저는 박지선입니다.
인성 저는 박지선의 남편입니다.
지선 하하하하.
인성의 말투에는 무언가 재미난 구석이 있어 ‘박지선의 남편입니다’라는 말로도 웃음을 자아냅니다.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지선 조소를 전공하고 조각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인성 지선이와 같이 조각을 하고 있어요.
두 분은 처음에 어떻게 그 분야에 관심 갖게 되었어요?
인성 미대를 준비하고 있는 동생을 따라서 그림을 그려보니까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미대로 진학을 하게 됐어요. 특히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에 흥미가 있어서 조각을 하게 되었어요.
지선은요?
지선 저는 미술을 전공한 부모님과 언니한테 영향을 받아서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부모님은 회화를 하시고 언니는 조각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전 조각에 더 흥미를 느꼈어요. 그래서 조각을 선택했어요.
요즘 어떤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인성 작업이라는 게 누가 지원을 해주지 않는 이상 처음부터 끝까지 다 사비로 이루어지거든요. 결혼 전이나, 이 집을 짓기 전에는 좀 더 경제적 부담 없이 모든 걸 투자를 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어요. 지금은 생각을 더 쌓아서 뭔가 딱 왔을 때 해보려고 그냥 쌓아두고 있어요. 영감도 자금도 모으고 있어요.
요즘 계속 스치는 생각이나 단어가 있어요?
인성 요새는 공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집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관심 갖게 됐어요.
공간을 주제로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 너무 궁금해요.
인성 근데 제가 개인적으로 해석해서 만드는 거라서 그게 직접적으로 느껴질지는 모르겠어요.
지선 씨는 요즘 집중하고 있는 생각이 있어요?
지선 이전 작업물과 요즘 작업물들을 이렇게 두고 보다 보니까 이전 작업물을 새로운 재료로 바꿔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거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어요.
이전 작업물에 사용했던 재료는 뭐였어요?
지선 저는 엄청 약한 재료들을 많이 썼었어요. 예를 들어 흙을 펼쳐서 붙이고 빠른 시간 안에 수분을 증발시키면 자연스러운 크랙이 생기잖아요. 그런 걸 활용해서 건물이나 어떤 형상을 만드는 방식이에요. 근데 그게 보존할 수가 없는 거예요. 바스러지거나 부서져 버리니까. 그래서 요즘은 같은 의미 표현을 하더라도 재료적으로 더 오래 유지시킬 수 있는 재료를 계속 찾고 있어요. 내가 처음에 했던 생각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재료를.
오, 기대됩니다. 인성 씨의 작업도 초기와 비교해서 변화가 있어요?
인성 초반에는 금속의 물성이 주는 재미가 있어서 금속을 사용해서 다양한 것들을 표현했어요. 요즘은 금속과 이것저것을 섞어서 작업하고 있어요.
서로 작품이나 작업에 대한 대화도 많이 해요?
지선 사실 저는 그런 시간을 따로 만들고 싶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이나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근데 그게 실천하기가 은근히 어렵더라고요. 괜히 낯부끄럽고 그렇잖아요. 요즘은 자연스럽게 그런 시간이 생겼어요. 예를 들어 오빠가 컴퓨터로 정리해야 될 일이 있어서 작업을 하고 있으면 저도 가서 같이 보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눠요. 그게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서로 봐주면서 아이디어가 발전되기도 하고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요.
서로 작품에 대해서 조언해주기도 해요?
인성 방법적인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쉽게 풀 수 있을 것 같을 때 지선이한테 ‘그렇게 해봐라' 를 좋게 얘기는 안 하지요.
반전.
하하하하하. 그럼 나쁘게 알려줘요?
인성 답답해하면서 알려주죠. 근데 지선이도 보통은 아니라서, “네가 뭔데! 내비둬!” (웃음)
하하하하. 지선 씨가 인성 씨에게 주는 도움은 어떤 게 있어요?
인성 지선이는 제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주니까 지선이 의견을 듣는 게 아이디어를 확장시키는데 도움이 돼요. 또 제가 쓴 글을 읽어주고 수정해주기도 하고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글로 먼저 정리해 두고 시작하는 편이에요?
지선 초기에는 생각을 정리해 놓고 그거에 맞게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방법에 구애받지 않고 그때그때 달리 하는 것 같아요.
인성 전 이거를 내가 왜 만드냐 하는 건 머릿속에 확실히 있으니까 작업한 뒤에 이것저것 섞여 있는 감정과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편이에요.
보통 한 작품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걸려요?
지선 작품마다 달라요.
인성 자기 것이 생겼다는 사람들 보면 금방금방 나오는데 저는 아직 발전시키는 단계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아요.
구상까지가 오래 걸리는군요.
인성 네, 만드는 건 생각보다 금방이에요.
지선 근데 어떤 재료를 쓰느냐에 따라서 다르기도 해요.
둘은 어떻게 만났어요?
지선 대학교 3학 때 인성 오빠는 대학원생이었고 장비 조교였어요. 그래서 '아, 저런 사람이 있구나' 하고 알고 있었죠. 대학원에 진학했더니 친구들이 '인성 오빠가 진짜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 라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아, 인성오빠가 좋은 사람이구나' 생각했죠. (웃음) 어느 날 단체로 등산을 갔는데, 그날 오빠가 저한테 한번 만나보자고 했어요.
인성 등산할 때 지선이를 봤는데, 지선이가 사람들도 잘 챙기고 참 괜찮아 보이더라고요.
지선 오빠가 사람들 잘 챙기지, 저는 잘 못 챙겨요.
옆에서 쭉 봐 온 사람으로서, 둘 다 잘 챙기는 것 같아요. 부부 조각가로 활동하면 좋은 점이 뭐예요?
인성 이해하는 범위가 넓어지니까 그게 좋아요. 서로 이해하고 응원해 주니까. 근데 우리도 요새 집 짓고 작업실 만들고 정리한다고 작업을 못 하고 있어서 이걸 말하면서 약간 뻘쭘하다. (웃음)
지선 이제 열심히 해야지.
✢ Chapter2. 터를 잡고 집을 짓다
이 집이 있는 동네는 어떤 곳이에요?
지선 저희 동네는 여주 흥천 벚꽃축제가 열리는 길 초입에 있는 작은 마을이에요. 봄이 오면 만개한 벚꽃 길이 펼쳐져요. 여기로 이사오기 전엔 벚나무는 봄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지닌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녹음이 짙은 여름, 낙엽을 깔아주는 가을, 하얀 눈송이를 머금은 겨울의 모습을 다 경험하고 벚나무는 사계절 내내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됐어요.
와, 너무 멋지고 좋다. 여주로 오게 된 이유는 뭐예요?
인성 음, 하는 일이자 취미가 뭘 만드는 건데, 서울 안에서 하기엔 공간적, 경제적 제약이 있어서 경기도 쪽으로 알아봤어요. 원래 남양주에 터를 잡고 있었어요. 근데 거긴 너무 비싸서 좀 더 저렴한 지역을 찾다 보니 이렇게 여주로 오게 되었어요.
여주에 와보니 어땠어요?
지선 좋더라고요. 조용하고 풀도 많고. 그래서 요즘엔 오빠한테 여주로 결정하길 잘한 것 같다고 해요.
인성 조용하고 뭔가 좀 선비 같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아직 발전이 덜 돼서 자연도 많이 보존되어 있고요.
여주에 살아서 좋은 점은 뭐예요?
지선 차가 안 막히는 거. 신호도 많이 없고. 항상 한적하고.
인성 씨는요?
인성 한적하고.
지선 (웃음) 앞으로 오빠가 먼저 대답해.
인성 근데 그 장점이 되는 게 살짝 다르게 생각해 보면 또 단점이 돼요. 차가 막히지 않는 건 무엇이든 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렇다. 주변이 한적한 것은 생활 편의시설이 없어서 그렇다.
그러네요. 보기에 따라서. 그럼 지금은 그걸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상태예요?
지선 지금은 좋은 마음이 더 커요. 일 있어서 서울 한 번씩 나가면 너무 힘들어요. 사람 많고 차 막히고.
저 같아도 빨리 집에 돌아와서 저 풍경을 바라보고 싶을 것 같아요.
겸손한 지선과 인성은 동의하지만 굳이 내세워 자랑하지 않겠다는 듯 멋쩍게 웃습니다. 지선과 인성의 집 거실에 난 통 창으로는 푸른 나무와 수풀들이 일렁입니다. 건너편 집이나 차로 같은 것은 없지요. 산과 나무. 그 풍경이 주는 심신 안정의 힘은 실로 엄청나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아, 나도 여주 내려와 살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인성과 지선은 부지를 찾고 집을 짓는 일까지도 손수 해냈는 생각에 이르면 다시 ‘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가로막히고 맙니다.
집을 직접 지으셨잖아요. 집 지을 때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어떤 게 있어요?
지선 동서 방향으로 자리 잡는 거요. 어디서 주워들은 건데 그렇게 하면 겨울엔 일사량을 획득하기 쉽고 여름에는 차단하기 쉬워서 냉난방비 절약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요.
인성 비용절약, 인건비절약, 그리고 시공을 완벽히 하는 것. 저도 처음 한 거라 열심히 했지만 그 안에 실수가 많아요. 아직 완벽하진 않은데 그래도 내가 내 손으로 직접 한 거니까 감안하고 사는 거 같아요.
처음에 두 분이 구상했던 대로 지어졌어요?
인성 네, 깔끔하고 실용성 있게 짓고 싶었고 결과물도 그래요. 군더더기 없고 딱 우리가 필요한 것만 있는.
내 집 짓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하던데, 의견 조율이 어렵진 않았어요?
인성 이 집 지으면서 지선이랑 다름을 많이 느꼈어요. 다른 사람이구나. (웃음) 그리고 집 지을 때 저한테 나인성이라 나인(숫자 9) 번 일을 한다고. 한 번 할 걸 아홉 번 한다고.
하하하하. 왜 한 번 할 걸 아홉 번 하세요?
인성 아무래도 처음 지어보는 거 기도 하고, 저희 집이니까 이게 조금이라도 제대로 안 된 것 같다 싶으면 다시 하게 되더라고요. 그걸 몇 번씩 하니까 나인번, 나인성이라고. (웃음)
완벽주의가 있어요?
인성 이게 우리 집이고, 지금 아니면 못한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저기 싱크대에 어디 살짝 찍히고 이런 것도 그때는 엄청 예민했는데 지금은 보이지도 않아요.
하하하하. 아무래도 만들 때는 그 부분만 집중해서 보니까요.
인성 그런 게 몇 개 더 있어요.
그렇게 했으니까 이렇게 잘 만들었겠죠. 그럼 다시 돌아가면 한 4번 정도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타협 가능한가요?
인성 다음번엔 진짜 잘할 것 같아요. 근데 다시는 못할 것 같아요. 하하하. 너무 힘들어 너무.
마당도 꾸미고 있어요?
지선 나무를 몇 그루 사서 심어줬어요. 근데 잡초가 문제예요. 너무 끈질겨요. 심지어 봄에는 나무가 싱그러웠는데 잡초 떼거지에 당해서 시들해지기도 했었고요. 처음엔 다 뽑아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제초기 사서 깎고 있어요. 흙으로 된 곳에는 자갈 깔고 싶어요. 처음에는 마사랑 판석 깔아서 예쁘게 돌길을 만들고 싶었는데 지내보니까 그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아, 그리고 연못 만들고 싶어요.
오, 연못이요?
지선 나 연못 만들고 싶어.
인성 (포기한 듯한 엷은 미소를 띠며) 난 그냥 아무 말 없이 있을래.
연못 안 돼요?
인성 연못에 뭘 키우게?
지선 금붕어. 근데 금붕어가 살 수 있는 연못을 만들려면 겨울에 물이 얼지 않아야 되거든. 얘네가 그 안에서 동면을 취해야 해서. 근데 물이 얼지 않으려면 최고 깊은 데를 1m 정도로 파야 된대.
인성 어우. 안돼 안돼 안돼.
지선은 최근 귀여운 얼굴을 한 금붕어를 키우며 그들에게 푹 빠져있습니다. 처음엔 조그만 어항에 키우다가 마릿수가 늘고 금붕어들의 덩치도 커지자 더 큰 어항을 샀습니다. 인성은 어항을 놓을 수 있는 축양장을 손수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축양장에는 지선이 몇 년 전 꽂혀서 산 자개장도 끼여 들어가 있지요. 작은 어항에서 900*450짜리 어항으로 발전하기까지의 추진력과 몇 년 동안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자개장에게 기어코 딱 맞는 자리를 찾아준 집념으로 완성된 자개축양장은 지선을 잘 설명하는 가구가 되었습니다.
지선 (씁쓸하게) 그런 생각을 한번 해봤어.
인성 생각만 하는 걸로.
지선 그래. 참 아쉬워. 이렇게 공간이 있으면 뭐 해. 할 수가 없는데.
하하하하하. 아쉽다, 아쉬워.
지선 내가 직접 할게.
인성 네가 직접 1m 땅을 파게?
지선 응, 파면되지.
인성 그럼 어디다 땅을 파게.
지선 그건 오빠가 좋은 곳으로.
인성 아….(탄식)
이렇게 재미난 구경이라니.
지선 어때?
인성 아니, 여기 1m 땅 못 파는 데도 있어.
지선 아, 그럼 거기 피해서 하면 되겠다. 근데 전체가 1m가 아니라 한 구석만 1m여도 돼. 다른 데는 50cm만 파도 되고. 30cm 만 파도 되고.
인성 그래, 생각을 해보자. 너는 조그만 어항에서 지금 이 용궁까지 걸리는 데 한두 달 밖에 안 걸렸어.
지선 근데 너무 키우는 재미가 있다고. 보고 있으면 너무 행복하고! 얼마나 귀엽니. 그리고 자기도 한 번씩 보면서 좋아해.
지선은 저를 보며 호소했습니다. 지선은 무언가에 꽂히면 꼭 해내고 마는 성격이라 아마도 몇 개월 후에 이 집 마당에 아담하게 들어선 연못을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성 귀엽긴 하지… 생각을 해보자.
✢ Chapter3. 여주살이
인성 씨 엄청 부지런하시잖아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시고.
인성 근데 요새 다섯 시에 못 일어나고 있어요.
드디어 사람답게…. (웃음) 두 분 하루 일과는 어떻게 돼요?
인성 전 일어나면 일단 나가요. 나가면 할 게 너무 많아요. 개들 똥 치우고, 청소하고.
지선 하루 일과가 특별히 정해진 건 없고 그날그날 해야 할 일들을 해요.
인성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며칠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 굉장히 오래 있어요. 작업실도 바로 앞에 있고. 그게 좋아요. 저번에 어디 1박 2일로 갈 일이 있었는데 집 나서면서부터 집에 가고 싶더라고요.
지선 둘이 계속 “남색깔이랑 주황색 이불 깔려 있는 침대에 누워서 자고 싶다.” 이러면서.
인성 이 집이 주는 안정감이 엄청 큰 것 같아요. 그래서 집 나서면 계속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돌아갈 곳이, 내가 온전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지선 씨랑 인성 씨 두 분 다 원래 집순이 집돌이였어요?
지선 저는 집순이였는데 인성 오빠는 완전 아니었죠.
인성 저는 계속 나가서 사람들 만나고 그랬는데 요샌 여기 동네 사람들만 가끔 만나요.
삼시 세끼만 직접 해 먹어도 시간이 후딱 가잖아요. 여긴 배달도 없고 다 직접 해야 하니까, 하루가 정말 빨리 갈 것 같아요.
인성 정말 빨리 가요.
집에서 뭐 하는 거 가장 좋아해요?
인성 아무것도 안 하는 거.
지선 오빠 원래 이렇지 않았는데 이렇게 됐다.
어떻게 이렇게 지선화 됐어요? 옛날에 지선이 가만히 있는 거 보고 어떻게 저렇게 가만히 있냐고 그랬었잖아요.
인성 이제 포기하고 내버려 두다 보니까 나도 이제 가만히. 하하하.
물 들어버렸어요? 그렇게 살아보니까 어때요?
인성 괜찮은 것 같아요. 누가 돈만 잘 준다면. (웃음)
최근에 동네에서 한 재미난 경험 있어요?
지선 최근에 오빠랑 자전거 타고 동네탐방을 했어요. 저 쪽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표지판에 뒷길로 가면 계심리 마을회관이 나온다고 써져 있었어요. 그래서 가봤죠. 근데 중간에 자전거 도로가 끊긴 거예요. 그래서 ‘어, 이거 가도 되나?’ 했는데 그냥 가봤어요. 가다 보니까 흙으로 된 산길이 나있더라고요. 사실 저희 자전거가 그런 길을 가라고 만들어진 자전거인데, 처음 가본 거예요. 그런 길을 우연히 찾은 거라 너무 재밌고 좋았어요.
와, 이 동네를 200퍼센트 즐기고 있네요. 자전거 타고 동네탐방 하면서 찾아낸 곳도 있어요?
지선 저희가 찾아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체육센터랑 도서관이 있는 건물이요. 시간 날 때 종종 가서 배드민턴 쳐요. 여름에 에어컨도 틀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인성 아, 금사도서관. 생각보다 너무 잘해놨어요. 지은 지 한 3년 됐나. 여기가 흥천면이고 옆이 금사면인데 금사도서관이 먼저 생기고 올해 흥천면에도 흥천도서관이 생겼어요. 요즘 도서관 지을 때 약간의 체육시설도 넣어서 좋더라고요.
지선 맞아요. 아, 그리고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인적 드문 테니스장도 있어요. 날 풀리면 가서 테니스도 치려고요.
✢ Chapter4. 동반자
집안 정리가 잘 되어있어요.
인성 저는 항상 정리가 되어 있는 상태를 좋아해요. 집도 그렇고 작업실도 그렇고.
지선 제가 잠깐 뭐 쓰고 정리 안 해놓으면 “우리 정리 좀 잘하면서 삽시다?" 이래요.
하하하하하하.
지선 그래도 지금은 좀 괜찮아졌는데, 처음에는 집이 진짜 무슨 모델하우스 같이 과하게 깔끔하고 비어있었어요.
인성 저는 물건을 많이 두는 걸 안 좋아해요. 안 쓰는 건 무조건 바로 버려야 해요.
무소유와 풀소유의 만남이네요.
인성 (웃음) 무소유까진 아닌데, 필요한 것만 있고 그 외엔 다 버리는 게… 낫지 않나?
인성은 동의를 구하는 듯, 혼잣말을 하듯 약간 자신 없게 속삭였습니다. 그에 지선이 체념한 듯 대답했습니다.
지선 그래, 버려 다.
인성 지금이 딱 좋아.
지선 그래? 좀 허전하지 않아? 뭔가 없어.
인성 뭐가 더 있었으면 좋겠어?
지선 그건 명확히 모르겠지만 너무 휑해.
인성 뭐가 더 있어야 되는데 그럼?
지선 딱히 필요한 건 없는데….
인성 너 그거 소유욕 아니니?
이 귀여운 두 사람이 장난스럽게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며, 이 두 사람이 주름이 자글자글해져서도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을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너무 귀여워 마음이 따뜻해져 버렸지요. 부부 일은 모른다고, 언제 갑자기 이혼을 하다고 해도 그러려니 하는 세상에서도 이들만은 서로의 옆을 지키고 있을 것 같다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다 하는 게 있어요?
지선 어떤 기준에 맞추기보다는 그냥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면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고 싶어요.
인성 그냥 지금처럼만 살면 좋겠어요. 지금도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아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상태를 잘 유지하면서 계속 열심히 살면 되지 않을까요? 너무 과한 욕심부리지 않고. 지금도 과하니까. 제가 이루고 싶은 건 이미 거진 이뤘다고 생각해요. 가정도 꾸렸고, 집과 작업실이 있고. 작업실에 만들고 싶은 게 더 있긴 하지만. (웃음) 작업하면서 조금씩 돈 벌고 자식 키우고. 이제 그런 부분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거니까 그냥 나만 열심히 살면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큰 욕심은 없어요.
지선 (입술을 씰룩씰룩)
아니 무슨 말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입술을 씰룩씰룩….
인성 어이가 없니?
지선 아니, 멋있어. 잘했어. 근데 제가 예전에 오빠한테 “나중에 나 치매 오면 어떻게 할 거야?”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럼 나는 너를 요양원에 보내고 외제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재밌게 놀면서 살 거야"라는 거예요. (웃음)
인성 저는 나는 솔로 나갈 거예요.
하하하하하. 유부남 유부녀 특집에 나가야겠네요. 불륜 특집인 건가. 그럼 지선 씨도 나가야겠네요.
인성 그것도 둘이 항상 하는 얘기예요. “가서 만나면 아는 척할 거니?” 그럼 안 한다고.
맙소사. 너무 웃기다.
인성 보면 재밌더라고요. 갑자기 막 사랑에 빠지고.
솔로였다면 나갈 수 있어요?
인성 못 나가요, 절대. 하하하하. 상상만 할 뿐이지.
지선 씨는 인성 씨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어요?
지선 오빠… 나 스스로 보다는 오빠를 더 잘 아는 것 같아요.
하하하. 서로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인성 그런 것 같아요. (웃음)
이 공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 한 곡 선곡해 주세요.
지선 이하이 이수현의 달리기요. 비긴어게인에서 부른 노래인데 위로와 동시에 힘이 나게 해주는 점이 집이 갖는 의미와 닮아 있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집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지선 소중하게 아끼고 잘 다뤄줄게 아픈 곳이 있으면 곪기 전에 티 내줘. 오빠가 고쳐줄 거야. 오래오래 함께 좋은 추억 만들자!
인성 고쳐줄게. 대신 아프지 마라. (웃음) 집이라는 것도 큰 범위에서 소모품이니까 이것도 세월이 지나면 날 거고 고장이 날 텐데 그때는 어떻게 해야 될까를 생각을 해봤어요. 그때도 우리가 여기 계속 있을까? 아니면 이 공간을 다른 용도로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전시관이나….
박지선 나인성 전시관 어때요?
지선 하하하하. 20년 후에?!
기대하겠습니다!
2023년 9월의 지선과 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