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일 >>>
오랜만에 친구들이 만나면 “젊어졌다, 예뻐졌다, 얼굴 좋다” 하며 인사들을 나눈다. 남의 집 애들을 보면 “인형처럼 귀엽다, 똑똑하게 생겼다, 많이 컸다” 하며 머리도 쓰다듬어 준다. 인사라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 첫 글자만 들어도 그 뒤는 99% 짐작 가능하다. 그런데 한 2주 전, 태어나고 66년 만에 “완전 최신” 인사말을 하나 들었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였는데, 맨 나중 온 친구가 쭉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던 중 내게 하는 말,
“지민아, 니 ......#$^!@ㅆ다.”
맨 앞의 내 이름까진 확실히 들렸는데, 그 뒤는 뭔가 귀에 낯설고 해석이 불가했다. 몹시 분주하고 시끄러웠던 그 자리 탓이었을 것이다.
그저 흔히 하는 수인사려니 하고 대충 얼버무릴 수도 있었지만, 너무 궁금하여 내가 물었다.
“규민아, 뭐라고? 방금 내가 잘 못 알아들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 천천히 또박또박 다시 하는 말,
“지미~ 니(지민이 너) 손이 되게 두꺼워졌다고!”
그러자 먼저 와서 앉아 있던 친구 하나가 가세했다.
“안 그래도 나도 그 말 할라(하려고) 했다. 지미~ 니 손이 진짜 억~수로 커졌다.”
그러자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고, 친구들이 저마다
“진짜가? 어디 함 보자. 나도 악수 한 번 더 해 보자.”
하는 바람에...... 하하, 나는 난생 처음, 열댓 명 친구를 만나 삼십 번 악수를 했다.
영어에 이런 말이 있다.
“Once is chance. Twice is coincidence. Three times is a pattern.”
한 번은 그냥 우연이겠지 한다. 두 번까지도 공교롭게 어쩌다 그리 됐겠지 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세 번은 완전히 다른 얘기. 그것은 일종의 “패턴 형성”을 뜻하므로, 원인 내지 인과관계를 의심/조사해 봐야 된다는 것이다. 바로 어제, “내 손이 진짜 비정상적으로 큰가?” 의심을 자아내는 그 “세 번째” 언급이 있었다. 친구 부부와 점심 약속으로 찾은 어느 “묵은 지 삼겹살” 집. 아내 소개로 간 맛집이라 내가 일어서서 불판에 고기를 얹고 묵은 김치를 자르고 하는데, 보고만 있던 친구 왈,
“야, 지민아! 너 손이 왜 그렇게 커졌니?”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 와이프가 거들었다.
“어머, 저도 속으로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짧은 기간에 셋도 아닌 네 명이나 그런 말을 했으니, 분명 무슨 일이 있긴 있는 것이다. 어떤 사안에 서로 아무 의견교환 없이 동시에 여럿이 고개를 갸우뚱한다면, 하하, 뭔가 “비정상”임이 틀림없다. 괴기스러운 내 손, 과연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일까? 혹 늘그막에 호르몬 분비가 원활치 못해 찾아온 말단비대증? 함께 그 진실을 찾아가 보자.
아내가 어제 그 부부에게도 설명했듯이, 우선 나는 “원래” 손발이 약간 큰 편이다. 키 170cm에 신은 265mm를 신는데, 발의 볼이 넓어 경우에 따라선 그보다 한 치수 더 크게도 신는다. 손도 덩치에 비해선 제법 크고 두터워, 국민학교 시절 “짤짤이”를 귀신 같이 잘 했다. 내가 구슬을 몇 개 쥐었는지 상대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처럼 자주 내 손의 크기가 문제된 적은 없었다. 따라서 선천적인 것을 이번 이 “패턴 형성”의 직접적인 요인으로 보기엔 좀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정말 내가 병에 걸렸을까? 잠시 찾아본즉슨, 그 병을 의심하기엔 증거가 미약하다. 내게 해당되는 부분은 손이 --- 특히 오른손이 --- “많이 커 보인다”는 것뿐. 합병증으로 오는 관절통, 손발 저림, 당뇨병, 고혈압 등이 나는 전무하니, 병은 아님이 거의 확실하다. 아직은 나는 일년 내내 거의 약 한 알 안 먹는다.
그렇다면 평소 내가 “손”에 크게 힘을 가하는 일이 뭐 있나? 있다. 매일 하는 푸쉬업(push-up)이다. 그냥 양손바닥을 짚고서 하던 푸쉬업을, 재작년부턴 손잡이 달린 기구를 사용해서 한다. 그 손잡이를 꼭 잡으니 손에 힘이 간다. 옛날처럼 손바닥을 짚으면 손목 관절에 무리가 와서 어쩔 수 없다. 푸쉬업을 한번에 100개 하는 것이 평생 목표. 작년엔 83개까지 해 봤다. 올해는 현재 74개가 최고다. 오늘 같은 경우는 두 번에 나누어 61+50, 총 111개 했다. 땅에서 30cm 정도 올라와 있는, 어느 공원의 비교적 높은 손잡이에선, 한번에 116개까지도 했었다. 아무튼 푸쉬업은, 손잡이를 느슨하게 쥐면 이런 개수가 안 나온다. 기본적으로 그립(grip)이 견실해야만 최대한 많이 오르내릴 수 있다. 이를 악물고 꽉 쥐는 이 손잡이 때문에 내 손이 좀 더 단단해졌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20여 가구 우리 전원주택 단지에, 아내는 “지붕 위의 여자”로 통한다. 어느 연세 높으신 분께서 지나가시다
“아니, 그 집은 남자는 어디 가고 맨날 여자가 그렇게 지붕에 올라가 있어요?”
하신 데서 유래됐다. 지붕 위 세척, 균열 메우기, 방수작업, 페인트 칠 및 높은 유리창 닦기 등, 높은 데 일은 아내가 절대 나를 안 시킨다. 부산말로 내가 “털파리”라 불안해서 못 맡긴다고 한다. 그래서 난 그런 일엔 “보조”로만 쓰이고, 단순반복작업이나 “힘”을 요하는 일에 주로 동원된다. 삽, 괭이, 갈고리, 호미, 망치, 펜치, 니퍼, 드라이버, 송곳, 태커(tacker), 톱, 대패, 예초기, 제초기, 송풍기, 손삽, 전지 가위, 사다리, 손수레...... 이 중 최소 두세 개는 만져야 하루 해가 저문다. 특히 지난 달엔 길고 높은 화단의 흙을 수십 수레 분 삽으로 파냈다. 덕분에 마당이 엄청 넓어졌다. 물론 그 와중에 나무도 수십 그루 옮겨 심었다. 8시간 낑낑거려 창고도 하나 조립했다. 하루에 내의를 서너 번 갈아입은 것이 여러 날. 그놈의 일은 매번 끝난 듯하다간 종일토록 또 더 있었다. 이런 가혹한 강제노역 또한 내 “큰 손”에 한몫했음이 틀림없다.
“기형적”으로까진 안 보일지 몰라도, “놀랄” 정도는 충분히 되는 내 손. 결정적으로 심증이 가는 원인이 하나 있으니, 바로 “3톤” 분량의 돌. 실제로 사 와서 깐 것은 2톤 조금 못 된다. 하지만 잘못 깔아서 들어내고, 옮기고, 다른 종류로 사오고, 다시 깔고 한 것 등을 다 감안하면, 내 손이 3톤의 수고는 족히 했다. 3톤이면 20kg짜리 포대로 150개. 한 포대씩 차에서 내리고, 들어 옮기고, 풀어서 붓고, 흩고, 고르고...... 몇 번만 해도 힘든 이 작업을 150번 했다고 상상해 보라. 인테리어(interior design) 전공인 아내가 이젠 익스테리어(exterior)도 서슴없이 하는데, 유일하게 아직 섭렵 안 된 부분이 이 “돌 깔기”. 꼭 두세 번 시행착오를 거쳐야 “딱 마음에 들게” 된다. 돈 주고 산 돌들을 버릴 수도 없는 일. 아까워서 곳곳에 계속 뿌리다 보니, 집 주변이 어느 한 구석 빠끔한 데가 없다. 자세히 보면 각종 크기/연마도(硏磨度)/색상/모양의 자갈, 마사토, 화산석...... 없는 돌이 없다. 거의 돌 백화점이다.
엄처시하(嚴妻侍下)에 손 정도는 얼마든지 커져도 된다. 눈이 토끼처럼 커졌다든가, 코가 피노키오처럼 길어졌다든가, 하는 희귀병이 아니니 얼마나 감사한가? 그런데 생각해 보니,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 또 하나 있다. 유난히 9월엔 “아내랑 같이” 서울 갈 일도 많았는데, 눈 나빠진다고 원래 시외버스/전철에선 랩탑(laptop) 컴퓨터를 못 보게 한다. 그래서 나는 랩탑 대신 악력기(握力器)를 들고 다니며 쥐었다 폈다를 계속했다. 하하, 이보다 더 “직접적인” 원인이 또 있을까? 지금도 이 악력기는 책상 위, 내 코 앞에 있다. 심심하면 쥐락펴락한다. 궁금해서 방금 재 보니 내 손 두께가 5.5cm. 내 덩치에 비해 확실히 크긴 크다. 그래도 “손 큰 것”이 정말 감사하다. 부족한 능력에 혹 "간 큰" 남자, "통 큰" 남자이기라도 했으면 내 인생이 얼마나 크게 곤두박질쳤을까? 지붕 위의 여자, 간 큰 아내를 위해 간간이 병도 따 줘야 하니, 내 주제엔 “손 큰” 남자가 딱 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