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을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세상이 넓어졌다. 할 것은 많아졌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졌다. 가장 큰 건 '해야만 하는 것'이 많아졌다는 점이겠다.
고3 때 담임 선생님께 입시상담을 받다 울다 나오는 애들 중 한 명이 된 기분. 적어도 그땐 울지 않았는데. 지금은 대학교 4년의 내 열정과 열의가 모두 부정당하는 경험만 하고 있으니 눈물이 나왔다. 수필, 에세이 류의 글만 써대고 읽었던 내가 '자기소개서'를 쓰려니 막막했다.
두괄식. 결론부터. 이해하기 쉽게. 담당자들이 궁금하게.
적는다고 적는데도 제3자가 보면 이해하지 못할 글 뿐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나를 담당해 주던 취업 상담사가 이직했다. 내 취업보다 본인의 이직이... 중요하지. 중요하다. 그래도 하루 전에 말씀해 주시는 건 너무하지 않았나요.
대개는 졸업을 하기도 전에 해냈다. 그와 달리 나는 해낸 게 없었다. 인맥을 잘 관리하던 것도 아니었고, 멋스러운 차별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알차고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던 나의 4년은, 사회로 나오니 그저 그런 4년제 졸업생 정도의 스펙이었다.
내가 다니는 학과는 다양한 분야로 나갈 수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A'라는 분야를 고집하고 있었고, 진심으로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다. 'A' 분야에 자리가 나면 알려달라고. 그리고 돌아온 답은 대체로 'A 분야는 요즘 자리가 없어.' 란 말 뿐이었다. 오히려 'A-1' 분야가 너무 힘들어서 자리가 많다는 답변. 'A-1' 분야의 실습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내 길이 아니란 거였다. 이제는 그곳도 좋으니 제발 사회에 내 자리 하나가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모든 과거의 힘듦과 고통이 미화되었다. 사회에 내 자리가 없을까, 사회적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걸까 하는 두려움에 모든 힘듦을 미화시킨다.
주변의 선례가 너무 우수한 탓이었을까. 어렵지 않을 것 같은, 길지 않을 것 같은 취준 생활이 늘어지고 있다. 서류를 넣은 뒤 연락은 없었고, 때로는 메일이 읽히지도 않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번 신뢰를 잃은 학교 취업 센터에 상담 신청을 했다. 떨어진 서류라도 첨삭을 받고 싶어서였다. 그러다 내 불퉁한 태도가 보였는지 선생님께선 불편감을 표하셨다.
'이게 아닌데.' 분명 선생님의 잘못이 아니고, 나의 잘못도 아니고, 그저 상황이 그랬던 것뿐인데. 애초에 튼튼하지도 않았던 멘탈이 너덜거려 눈물이 툭 튀어나왔다. 조용히 눈물을 흘리던 성격인데도 숨을 헐떡거리며 죄송하다고 했다. 화내서 죄송하다고 우스꽝스럽게 헉헉 거리며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험한 세상 이걸로 울면 어떡하냐며 걱정하지 말고 도와줄 테니 다시 멘탈 잡고 가자고 하셨다. 지금도 눈물이 나려는 걸 보면 태권도 학원이라도 가서 담력을 키워야 하나 보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때가 나의 청춘이자 젊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어리숙한 모습까지도 다 내가 커갈 길이 많이 남았다는 반증. 그리고 즐기고 감내해야 할 나의 의무. 이 모든 게 다 내가 젊다는 증거인 것만 같이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고 있다.
눈물이 나면 두면 되고,
흐르면 닦으면 되고,
마르면 다시 웃으면 된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부디 취준 생활을 앞으로도 더 잘 헤쳐나가길 바랄 뿐이다. 어딘가에 있을 취준생에게도, 꼭 힘이 되길 바란다. 우리 같이 힘을 낼 수 있길. 잘하고 있을 테지만 스스로를 너무 보채지 않길. 달래는 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