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서 한장이 인생의 커리어를 바꿀 수 있다.
김정선(서울시 전문서기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2025.1., 북랩)의 저자
공직자의 사명은 공익 실현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정의감과 조직 사이에서, 감정과 절제 사이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이 글은 시내버스 정책을 담당했던 어느 과장이 공공성과 도덕적 기준을 지키고자 했던 일련의 시도 속에서, '문서 한 장'이 어떻게 본인의 커리어를 바꿔놓았는지를 담은 회고입니다.
감정이 앞선 판단은 종종 불이익을 초래합니다. 그러나, 때론 그것이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럼 풀어나가겠습니다.
공익 수호라는 공직자의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과정에 시내버스 운영의 파트너이면서 이해당사자인 관련 조합과의 갈등으로 불명예스럽게 중도하차한 이야기이다.
공무원은 문서로 말한다! 문서가 얼굴인 것이다. 아무리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만 공직 세계에서는 말이 필요없다.
문서가 말을 대신한다. 그래서 공무원은 문서를 중시한다. 그래서 꽤나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들여 이리 꾸미고 저리 꾸미곤 한다.
그로 인해 좋지 않은 행정문화를 초래한다는 비난도 받곤 한다. 한문적 표현으론 번문욕례(繁文縟禮), 영어식으론 레드 테이프(red tape)가 대표적이다.
공문서나 보고서는 최대한 개인의 감정과 정치적 색채가 반영되어서는 안 된다. 최대한 간결하고 임팩트 있게 하고자 하는 말을 글로 대신하여 표현하여야 한다. 꼭 필요한 말만….
버스정책과장은 내가 2007년 서기관 승진 이후 서기관 교육 1년 수료 후 처음으로 받은 과장 보직이어서 매우 의미가 깊다.
나는 교육이 끝나고 첫 보직발령 인사가 가까이 다가오면서 내 딴에는 북경에서의 주재관 경험을 살려 국제교류과장으로 발령받기를 꿈꾸었다. 당시 간절히 바라면 우주의 기운이 그걸 이루게끔 해준다는 내용을 주제로 한 “씨크릿(Secret)”이라는 저서가 유행하던 시기라 나도 간절히 그런 염원을 가졌다.
그런데 발령받기 전날 첫째 아들이 당시 세 살이 되던 때였는데, 버스를 타고 싶다고 옹알이를 하지 뭔가! 그래서 이른 저녁에 첫째를 내 무릎에 앉히고 서울시내버스, 아마 노선번호가 7019번 시내버스로 기억되는데 한 시간 정도 타고 집에 왔었다.
어찌 됐든, 다음 날 발령이 났는데 버스정책과장이 아니던가! 나의 염원이 큰아들 버스 태워주는 바람에 꺾여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주변 분들에게 반농담조로 말하곤 했다. 그래서 첫 보직인 버스정책과장은 나에겐 너무나 의미 있는 자리였다. 버스정책과에서도 앞서 체육진흥과에서처럼 ‘버스토피아(Bus-topia)’라는 모토 겸 캐치프레이즈를 주창하였다.
모피코트를 두른 귀부인이 버스를 우아하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버스 서비스 수준을 끌어올리고 시내버스도 저상버스로 교체하고 그래서 장애인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게끔 하는 등등 버스토피아를 구상하고 이런 비전을 이해당사자인 버스회사, 버스조합, 운전자 모두가 함께 공유하기를 희망했었다.
그러나 버스회사가 준공영제가 도입되어 매년 2천여억 원의 서울시 재정이 시내버스 운영에 지원되고 있었다. 시내버스 총운송수입금이 총운송비용을 충당하지 못하게 되어 발생하는 운송적자분을 서울시 재정으로 보전해 주는 것이 준공영제의 핵심이다.
그래서 매년 약 2천억 원이 시 재정이 투입되고 있어 버스업계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매우 높아야 하나 현실은 그러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시내버스업계의 대표적인 도덕적해이 현상의 하나는, 버스회사 내부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금수입금을 탈루하는 행위였다. 당시만 해도 현금을 사용하는 승객들이 많아서 버스운송수입의 약 10% 정도가 현금이었다.
버스종사자들이 작정하고 현금을 빼돌리면 그 탈루되는 만큼 시 재정이 추가로 버스업계에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버스정책과에서는 아주 질 나쁜 범죄행위로 간주하여 엄중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시내버스 광고수입금의 부적절한 사용, 준공영제에 어울리지 않는 다양한 불건전한 버스회사 운영 체계 등 다양한 모럴 해저드가 존재하였다.
그래서 나는 버스업계의 공공성을 제고하는 데 나의 생각과 행정력을 집중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 과정에 부서장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을 벌이기도 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s Man)’라는 영화 「킹스 맨」의 명대사가 말해주듯이 공직자는 말과 언행에 품격을 구비해야 하는데….
치기어린 미성숙한 공직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던 것이다. 그렇게 하였던 연유는 이러했다.
서울시내버스 68개 회사들이 참여하는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에게 무례한 공문을 발송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 공문 발송 건이 결정적인 작용을 하여 버스정책과에서 1년도 못 채우고 8개월 만에 다른 부서로 떠나게 되었다.
공문 작성 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사실과 요구사항을 간략하게 작성하여야 하는데.... 담당 주무관이 기안한 전자문서에 서명하면서, 그날따라 저녁 식사 겸 곁들인 반주로 인해 얼콰해진 상태로 본의 아니게 감정을 섞어 문서를 수정하여 결재한 것이 사달이 나고만 것이다.
내용인즉,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의 고문변호사인 이 모 변호사를 보다 능력 있는 변호사로 교체하라는 ‘지시’를 담은 것이다.
버스회사 내부자들이 공모를 통해 조직적으로 현금을 빼돌려 시민혈세를 탈취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버스회사에 대해 서울시내버스조합이 법적쟁송을 제기 한 건에 대해, 패소하고 있어 조합측 소송대리인을 보다 능력있는 변호사로 교체하라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마치 이사장을 어린아이 혼내듯이 다그치는 글을 휘갈겨 댄 것 같다. 당시 이사장은 근 70세에 가까운 고령이셨는데, 나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이번 사건 외에도 ‘버스토피아’ 비전 체계를 아크릴 현판으로 제작하여 버스조합 이사장을 찾아 뵙고, 시와 함께 공유하고 함께하자는 취지로 전달해 드린 적도 있었다.
버스나 택시는 노선면허와 택시면허를 부여받은 사람만이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서 특혜를 주고 있다.
즉 법령으로 경쟁자들이 시장에 진입할 수 없도록 진입장벽을 쳐주고 있고, 국가나 지자체로부터 각종 보조금(지원금)을 지원받고 있는 상황에서, 운수사업자들은 권리 향유뿐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의무 이행도 함께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금수입금 탈루, 유가보조금 횡령 등 도덕적 해이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 버스준공영제하에서 버스회사 대표는 투자비의 7.8%를 법정이윤으로 보장받게 되어 있었던 때라, 버스운송사업의 공익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공공을 대표하여 버스정책과장이 버스회사들의 방만한 경영을 지도·감독할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68개의 시내버스회사를 자율적 구조조정을 통해 대형화하여 전체 회사 수를 줄여나가는 것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구조조정 등을 통해 20∼30개 정도로 통폐합하여 운영하면, 규모의 경제 실현과 선진경영체계 도입 등이 가능하여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경상비용 등이 절감되고, 그리되면 당연히 시가 버스업계에 지원해야 할 운송적자 보전금 규모도 대폭 감소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서였다.
물론, 승객 서비스 수준뿐만 아니라 운전자나 정비직 등 운수종사자 근로환경도 획기적으로 향상기킬 수 있을 테고^^. 그러나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어떤 시내버스회사 대표는 5개 시내버스회사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1개 회사로 통폐합하게 되면 서울시가 얻는 이익은 대단히 큰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쩌면 실현 불가능할 수도 있는 어려운 일이다. 역지사지해서 내가 다수의 버스회사를 보유한 대표라고 해도 나도 구조조정을 반대할 것이다. 버스회사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버스조합장 선거 등에서 보유한 회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그 영향력을 스스로 축소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조조정을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은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를 나 혼자만 느끼고 있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런 안타까움을 가지고 그런 감정 섞인 공문서를 버스조합 이사장에게 굳이 발송했으니 결과는 불문가지였다.
버스운행체계를 현재의 준공영제에서 완전공영제로 바꾸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구조조정을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을 검토하다가 다른 부서로 발령을 받아 그만두게 되었다.
자기합리화를 하고자 한다. 공익의 수호자로서 버스정책과장이 한정된 재원인 시의 재정지원금이 허투루 버스업계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바람을 안고 다소 품격이 떨어지는 행동을 한 것이라고….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s Man)’
P.S. 지하철 어느 역사에서 마주친“성패의 갈림길”(by 풍경소리)에서 나는 진리를 깨달았다. 만시지탄!
여러분들은 할 수 없는 일은 깊게 생각하지 마시길.... 풍경소리. 전화(02)736-5583
“ 사람들은 제각기 열심히 사는데 성공과 실패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온 힘을 바친다.”
글 . 중일아함경 중에서
그림. 정고암(새김아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