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킹과 맘, 그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
마냥 젊을 것 같았던 20대가 지나고, 30대에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정말 예쁘고, 나의 분신 같고, 사랑스럽고,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존재였다. 아이는 나에게 정말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러나 그 세계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 같았다. 기쁨과 행복만 가득할 거라 생각했던 그 안에는 책임감과 피로감도 함께 숨어 있었다.
육아란 그렇게 언제나 두 얼굴을 가진 세계였다.
아이를 낳은 것은 어느 법무법인의 소속 변호사로 근무할 시절이었다. 법을 지키고 수호한다는 변호사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변호사법에 의해 "공공성을 지닌 법률 전문직"이라는 명목 하에 출산휴가조차 겨우 허락되던 시절이었다(물론 회사 소속 변호사들은 예외-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판례가 나온 것은 불과 20년도 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아무도 강제로 시킨 것은 아니지만, 나는 당연하게도 3개월의 출산휴가 중에도 일을 했고, 출산휴가가 끝남과 동시에 복직했다. 그렇게 지쳐가던 중, 일과 생활의 밸런스를 조금이라도 맞춰야겠다는 생각에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나는 참 운이 좋게도, 좋은 양가의 부모님으로부터 육아 품앗이를 받을 수 있었고, 좋은 조부모님의 보살핌 아래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었다.
밤늦게까지 서면을 쓰다 집에 오면, 잠을 자고 있는 꼬물이의 냄새를 맡으며 심리적 안정을 느낄 수 있었고, 아이는 고맙게도 건강상, 정서상 안정되게 커 나가 주었다.
워킹과 맘, 그 힘든 줄타기 속에서 주말에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선물이었다.
그 소중한 일상을 지키고 싶어서, 나는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 이직을 결심했다. 다행히 금융 회사에서 사내변호사 자리를 제안받았고, 법무법인보다는 조금 더 여유로운 환경에서 일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인생은 참 묘하다. 우연한 계기로 금융 컴플라이언스 업무를 맡게 되었고 큰 뜻이 있었던것은 아니었던 분야가 점차 흥미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변호사로서 다져온 법률적 감각이 이 새로운 분야에서 생각보다 잘 통했다. 금융규제를 검토하고, 회사의 리스크를 점검하는 일이 내게는 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공부는 이골이 날 정도로 많이 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변호사란 직업은 끊임없이 공부하는 직업이 맞다. 국내 자본시장과 관련된 법령, 규정, 가이드라인은 물론이고, 해외의 금융규제 동향도 함께 공부하며, 변화하는 규제 환경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래도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코로나 이전의 활발했던 금융시장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금융상품이 쏟아지는 현장에서 법률 외의 많은 실무를 익힐 수 있었다. 바쁘고 치열한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값진 배움의 시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점은, 이 일이 나와 정말 잘 맞는다는 점이었다. 꼼꼼히 살펴보고, 미리 위험을 예상하고 대비하는 컴플라이언스의 본질이,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성향과 딱 들어맞았다.
깊게 고민하지 않고 자리를 옮긴 것이 이렇게 나와 딱 맞아떨어질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참 운이 좋은 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이 일을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아이는 많이 자랐고, 나 역시 이 분야에서 조금씩 나만의 자리를 만들어갔다.
그런데 요즘 문득, 또 다른 무언가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잡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