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 아홉 살
나는 정말 순수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산타 할아버지가 영생을 누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친구들이 말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이야기는 덤이었다.
나의 순수함은 가끔씩 엉뚱한 곳에서 발현되고는 했는데, 그 선례가 바로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만난 이름 모를 사내의 실속 없는 헛소리 같은 것이었다.
어린이집을 졸업하고도 어린이집 놀이터는 그 시절 내 최애 장소였는데, 특히나 미끄럼틀 간에 사이를 잇는 흔들 다리 아래에 자리 잡은 주방은, 정말이지 자주 애용할 정도였다.
그 시절 대한민국의 놀이터는 우레탄 재질이 아닌 모랫바닥이 국룰이었으며, 모래로부터 파생되는 놀이는 오감놀이가 따로 필요 없을 만큼 가지각색으로써 지금 생각해도 매력적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당일에도 나는 놀이터 수돗가에서 물을 길어와 모래와 물을 1:1 비율로 섞어, 흙탕물을 커피라 칭하고 혼자서 소꿉놀이를 즐기던 차였다.
그 누구도 시음할 수 없는 커피를 두고 맛이 연하다고 판단한 나는 맛의 농도를 조절하기 위해 또 열심히 모래를 일구는데, 그때 삽질에 걸리는 흰 물체가 눈에 띄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개뼈다귀 같은 재질이었는데, 미끄럼틀이 주력이었던 사내아이가 그것을 발견하고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야, 그거 사람 뼈잖아"
순간, 내 귀를 의심했지만 좋게 에둘러 말해서 참 순수했다고 자만하는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 사람 뼈 만지면, 1주일 뒤에 죽어"
그 말도 믿었다.
등골이 서늘한 나는 곧장 놀이터를 뛰쳐나왔고, 저녁시간 밥상머리 앞에서 부모님께 조심스럽게 여쭈었으나, 누가 들어도 어리석은 질문에 '뼈를 만져도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부모님의 응답은 꽤나 가볍게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의 말씀보다는 이름 모를 사내아이의 말을 신뢰하였으며, 1주일간을 악몽에 시달렸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게 만들었던 친구의 말은 희망적이기나 했지, 사람 뼈를 만지면 곧 죽는다는 사내아이의 말은 가히 절망적이었다.
그로부터 1주일 뒤, 공포에 떨었던 시간이 무색하리 만치 난 너무나도 멀쩡하게 생존하였고, 그 놀이터에서 사내아이를 만날 일도 없었다.
사회생활의 첫 시발점은 유치원 선생님이었는데 혼합반을 운영하는 정담임이었다. 유아기에 속하는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의 존재는 자연의 순리와도 같은 것이기에, 그 와중에서도 형님이라고 자부하는 7살 난 아이들에게 종종 말했다. 착한 아이에게는 산타할아버지가 응당 선물을 부여하노라고.
"에이 선생님, 요즘 누가 산타할아버지를 믿어요"
아홉 살, 사람 뼈를 만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사의 공포심을 느꼈던 나는 순수했던 건지 무지했던 건지 이따금씩 반추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