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 아홉 살
친구들과 종종 첫사랑 관련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백분토론은 기본이지. 박사학위 논문 제출이 가능케 할 정도이다.
첫사랑에 대한 정의는 사람의 성향만큼이나 달랐으며 개인차가 발생했다. 나는 상대방으로부터 첫 설렘을 느끼는 순간이, 첫사랑이라고 정의했다.
나의 기준점에 따라 첫사랑은 아홉 살 때 이루어졌는데, 그 대상은 같은 반 친구였다. 간략하게나마 첫사랑을 브리핑해 보자면 이름은 김정수, 개구진 성격으로 또래에 비해 키가 컸고 호리호리한 체형을 갖고 있었다.
반추해 보면 아홉 살, 세상 물정 모를 것 같은 나이임에도 예쁜 여자가 인기가 많았고, 잘생긴 남자가 또 인기가 많았다. 내가 좋아했던 김정수는 인기가 많은 축이었다.
2학기가 되어서는 조모임 활동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곤 했는데, 당시 그 아이와 같은 조가 되었고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 물어오는 질문에 대답하나 변변치 못했는데 내가 답답했던 건지 친해지고 싶었던 건지 나에게도 종종 장난을 걸곤 했다.
라떼가 살아온 시절은, 남자아이들이 여자 치마를 들쳐도 어느 정도 장난으로 치부되거나 통용되던 시절이었기에, 일명 '아이스께끼'를 당한 여자아이들도 크게 분노치 않았으며 그중에서도 힘 좀 쓰는 여자 친구들은 주먹을 쥐고 일격을 가하기도 했다.
그 아이로부터 '아이스께끼'는 나도 한두 차례 당했는데, 그 반항마저도 부끄러움이 내재된 소심함이었다. 참고로 나는 반에서도 유독 내성적이었고 소심한 아이였다.
한 날은 친구 집으로 향하는 길 기차가 지나다니는 철둑길 밑에서 우연히 그 아이와 조우했는데, 평소에도 인적이 드문 곳이라 현장에는 단둘뿐이었고, 알은체하지 않고 지나가기에는 너무나 아쉬웠기에 용기를 가장한 마음을 내세워 먼저 '안녕'이라고 수줍게 인사했다.
'안녕'이라니, 던져놓고도 뒤따라오는 쑥스러움으로 나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풋 웃음을 내비쳤는데, 그 아이도 막상 인사를 나누고 민망했는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이었고, 심지어 웃었다.
별거 아닌 그 장면이, 무심코 넘길 수 있는 페이지 같은 그 순간이 정말 설레었다. 아주 많이
설렘의 시발점이 무엇이었는지, 개구진 성격이 맘에 들었는지, 인기가 많아서였는지, 내 마음을 헤아릴 길 없었지만 그 이후 나의 상사병은 더욱 깊어졌고 무려 반년이란 시간 동안 혼자서 그 아이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2학년을 끝으로 그 아이는 시골마을을 떠나 수도권으로 전학을 갔고, 좋아했던 기간이 무색하리 만치내 첫사랑은 별일 없이 자연스레 끝맺었다.
결말은 조금 아니 많이 허무했지만, 이따금씩 친구들과 첫사랑을 주제로 밤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무의식 속 그 아이가 떠오르고는 하는데, 아마도 가장 순수했던 시절에 설렘을 느껴 보았던 것이 인생에서 큰 자극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