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년지기

2000. 열 살

by 글멍

남들보다 유난히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던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뚜렷한 친구 한 명조차 없었다.


자연스럽게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되어 집 앞마당에서 조약돌로 풀을 찧어 소꿉놀이를 즐기거나 학교 놀이터를 배회하면서 얼떨결에 다른 아이들의 놀이에 참여하는 것으로 외로움에 익숙해질 때쯤, 현재는 20년이 지난 세월을 함께한 절친한 친구를 만났다.


평소 시골마을에 자리 잡은 학교에서 가장 큰 이슈는 무엇보다 '전학생'이었고, 심지어 예쁘거나 잘생기면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누구나 친해지고 싶은 유명인사가 되어 자리매김했다.


나의 이십년지기는 2학년 졸업과 동시에 3학년이 되자마자 전학을 왔는데, 첫사랑이 수도권으로 떠나고 바톤을 이어받은 듯 당시 처음 들어 보았던 '수원'이라는 도시에서 첩첩산중 시골마을까지 전학을 온 아주 예쁜 전학생이었다. 전학생은 외모가 소위 초딩들이 보기에도 출중했으며 아니나 다를까 너도나도 전학생을 보겠다고 교실 앞 문정성시를 이루었다.


내가 본 이십년지기의 첫인상 또한 매우 인상 깊었는데, 외모가 각지지 못한 매끄러운 계란형 얼굴에 너른 이마가 동그랬으며 쌍꺼풀진 큰 눈과 오뚝한 콧날이 마치 부모님이 보던 드라마에서나 볼 법 듯한 부잣집 딸내미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이십년지기의 이름은 '하유리'. 엄마는 종종 우스갯소리로 꼭 얼굴 이쁜 애들이 이름도 예쁘다고 했는데, 내 친구가 그러했다. 이름도 예뻤다.


반부터 다르고 나와는 다른 생김새에 우리는 전혀 접점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굣길에 우연하게도 집으로 향하는 길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두 차례 말을 섞는 것이 계기가 되어 함께 하교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가장 예쁘다고 소문난 아이와 같이 집으로 향하는 길은 내 마음을 알게 모르게 몽글몽글하게 만들었고, 나는 이십년지기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지어내어 매 순간 흥미를 끌어내기 위해 투철한 노력을 하던 시기였다.


어쩌다 수업을 마치는 시간이 엇갈릴 때는 스스로 을이 되기를 자초하여 '얼마 안 기다렸어.' 라던지 핑곗거리를 찾으며 그 아이의 반 앞에서 가방을 메고 한참을 서성이거나 쭈그려 앉은 모습으로 기다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에서 가장 찐따스러웠던 모습이었지만, 번듯한 친구 한 명 없었기에 친구를 만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자 노력이었다고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이십년지기와 친구가 되기 위해 처음으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였으며, 점차 혼자가 아닌 둘, 어색했던 친구라는 개념을 얼핏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노력으로 만든 인생 첫 친구였으며, 매 순간 추억을 함께 그려나가고 공유할 수 있는 인생의 또 다른 동반자였다.


후에 알게 된 사실로 이십년지기는 내가 시답잖은 이야기를 어거지로 지어내는 동안 그저 자신의 집까지 동행하는 것이 좋아서 영혼 없는 리액션을 취하였으며,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는지 계기 또한 전혀 생각지 못하는 나는 한동안 놀리기 좋은 유형의 친구였던 단순한 것이었다.


내 친구는 갑이자 계략가였고 나는 그냥 숙맥이었다.




그렇게 자그마치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는 싸우고 화해하고 어울리기를 반복하였고 이제는 피가 섞이지 못한 가족으로 자리 잡아 팍팍한 세상살이 속 서로 진실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2년 전 이십년지기는 기혼자가 되었고, 며칠 전 축복스러운 임신소식을 전하며 기쁨을 공유했다. 그리고 우리는 서른 하고도 둘이 되었지만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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