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잘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배경은 한양중공업이라는 조선회사이다.
사업이 너무 안 좋아지고, 채권단에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한다.
결국 인력 구조조정에 착수한다.
이후에 스토리는 너무나 뻔하다.
법상 절차에 따른 정리해고까지 가지 않고 채권단 설득을 위한 자구책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한다.
그리고 희망퇴직이 필요한 자, 해야 하는 자, 당해야 하는 자들에 대한 사항들에 대한 심리묘사가 영화의 주된 스토리를 이끌게 된다.
이 주제에 대한 기존 영화들은 '퇴직당하는 자'들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퇴직을 실행해야 하는 자'의 관점에서 영화가 진행된다.
구조조정 장면에서 역시 악역은 인사팀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서도 김 부장을 퇴직시키는 악역으로 인사팀장이 등장한다.
그래서, 인사팀장 역할이 어느 회사나 비슷한지 혹은 이런 선입견이 있는지, 온라인상에서 '인사팀을 너무 잘 묘사했다.'는 댓글들을 많이 본다.
정말로 이런 악역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각자 본인의 직무에서 꼭 해야 하는 일들을 할 뿐이다.
영화의 주된 화자는 인사팀의 강준희 대리이다.
입사 4년 차 대리가 갑자기 안 좋아진 회사에서 희망퇴직 업무를 하면서 발생하는 고뇌들이 묘사된다.
희망퇴직 상황에서 서로 갈등하는 모습도 보게 되고, 본인도 다른 사람을 내보기 위한 퇴직 면담을 하면서, 그리고 존경하는 사람이 퇴직하는 장면을 보면서 너무 힘들어한다.
사실 희망퇴직이라는 업무는 너무 힘든 업무이다.
회사에서의 근로관계는 계약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며, 회사에서 이 계약을 끊어내는 퇴직이라는 장면은 최고로 무거운 장면이다.
이를 개인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사실상 회사가 강제하는 구조로 희망퇴직이 영화에서 진행되게 된다.
회사가 경영이 어려워지자 조선소에 정리해고 바람이 분다.
근로기준법상으로 정리해고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으로 대상자를 선정해야 하고, 해고 회피 노력을 해야 하며, 과반수 노조가 없으면 과반을 대표하는 근로자대표와 50일 전부터 사전 협의를 성실히 진행해야 한다. (근로기준법 24조)
영화에서 이 법을 실행하고자 하는 중요한 장면들이 묘사되고 있다.
(1) 대상자 선정 기준
대상자 선정 기준을 인사팀에서 검토해야 하는데, 강준희 대리가 정한 기준으로 진행된다.
전문대졸 이하, 장기근속연수와 성과 평가 저조자 등 나름의 선정 기준을 정하고 이를 근로자대표들과 협의해서 이를 공고한다.
(2) 해고 회피 노력
정리해고는 해고이다.
그래서, 아무런 위로금이 없다. (법정 퇴직금만 지급)
그러나, 정리해고 전단계로 해고회피노력을 해야 법적인 정리해고 요건이 성립된다.
순환휴직, 급여 삭감 등 고통분담도 고려될 수 있으나, 회사들은 주로 희망퇴직을 진행한다.
희망퇴직은 금전적 위로금을 목적으로 해고당하기 전에 자발적으로 퇴직하는 것을 말한다.
향후 해고로 인한 법적 부담도 덜고 법상 요건 충족에도 적합해서 주로 이 방법을 사용한다.
그래서, 해고 대상 요건에 부합하는 15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면담을 진행한다.
(3) 근로자 대표 선출 및 사전 협의
이 회사에는 과반수 노조는 없지만, 기능직 위주로 구성된 소규모 노동조합이 있다.
이들은 회사에 항의는 해 보지만, 해고 대상자를 대표하는 주된 노동조합은 아니라서 힘은 없다.
노동조합 산하에 사무지회를 만들어서 일종의 비대위를 결성해 보지만 힘은 약하다.
그래서, 회사는 이런 비대위 세력이 근로자 대표로 선출되지 않게 사전 작업을 진행한다.
이 장면이 자세하게 분량을 차지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회사의 비호를 받는 인원들이 근로자대표로 선출되게 된다.
이 근로자대표들과 원만하게 해고 대상자 기준을 협의하게 되고 회의록에 합의서명을 받게 된다.
대상자를 선정하고 해고회피노력을 하고 근로자대표와 성실히 사전협의했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지는 영화에서 자세하게 다루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상 이는 명확하다고 보면, 정리해고를 위한 법적 요건은 모두 완성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퇴직 대상자로 선정된 이들에게 희망퇴직 면담을 실시하여, 해고 대상자 규모의 인원의 사직을 받으면 된다.
희망퇴직 시에만 위로금이 지급됨을 설명하면서 150명 중 117명의 희망퇴직을 받는다.
문제는 나머지 33명은 어떻게 하게 될까?
원칙대로 하면, 정리해고를 단행해야 하므로, 33명은 해고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33명은 정상 근무하는 것으로 된다.
해고로 인한 리스크 및 이 과정에서 극렬 저항하는 노동조합 및 근로자들과의 분쟁이 회사 안정화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판단이었다.
실제로 회사에서는 원칙과 기준에 따라서 제도 및 회사 행정을 진행하지만, 이렇게 스스로 원칙을 위반하면서 현실적 이슈와 타협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회사의 설명을 신뢰하여 퇴직한 117명은 억울하지 않을까?
회사의 원칙을 준수해서 결국 손해 보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저항이 묘사된다.
“이렇게 하시면 앞으로 회사를 누가 신뢰하겠습니까?”
정말 그렇다.
회사와 구성원들은 신뢰가 정말 중요하다.
각 중요 장면마다 회사가 어떻게 처신했는가가 구성원들의 신뢰에 뿌리 깊게 작동하게 된다.
아마도 이 회사는 향후에 더욱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런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인사팀으로서 이에 대해서 판단하고, 원만하게 가자는 경영진을 적극 설득해서 원칙적 행정을 단행할 수 있을까?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인사팀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라는 의사결정 구조에서 부득이하게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이행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인사팀도 '해야만 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33명은 원칙에 위배되게 회사에 남게 되었다.
이 영화의 특징은 강준희 대리의 시선이다.
인사팀 담당자라고 희망퇴직을 하고 싶어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희망퇴직을 진행하면서 인사팀 담당자들도 너무 큰 상처를 받는다.
희망퇴직 면담을 하면서, 상대방의 분노에 찬 눈빛을 맞이하고, 회사에서 해당 업무 담당자로서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해서 면담을 진행했지만, 마치 인사담당자 개인이 퇴직을 결정한 듯이 상대방은 달려든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상처받은 마음으로 집에 왔는데,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는 본인에게 관심을 써 달라며 불만을 보이고 냉각기간을 가진다.
회사에서도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가정에서도 충돌하면서 너무 힘들게 된다.
인사팀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결국 구성원들 입장에서 바라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 같다.
사업도 잘되고 처우와 복지도 잘해주는 상황에서의 인사팀은 영웅 대접을 받지만
사업도 안되고 처우와 복지를 낮추는 것을 뛰어 넘어서 퇴직 면담까지 하는 인사팀은 원수 대접을 받게 된다.
결국, 좋은 장면이든 안 좋은 장면이든 인사팀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의 칭찬이든 비난이든 결국 인사팀 멤버들이 감수해야 하는 구조가 된다.
과연, 이 상처는 누구의 책임이고 누가 어떻게 개선해 줄 수 있을 것인가?
25년 하반기 들어서 희망퇴직을 단행하는 회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업이 안 좋아서 해고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 희망퇴직도 있고, 사업은 잘되지만 향후 무거운 인력 구조를 개선하고자 업계 우위의 위로금을 주면서 단행하는 희망퇴직도 있다.
앞서 다른 글 (퇴직 4_희망퇴직, 명예퇴직)에서도 썼지만, 희망퇴직은 위로금으로 인해 당해연도 영업이익을 낮추게 된다.
그래서, 극단적인 경우에 주로 사용된다.
정리해고 전단계 또는 이런 수준에서 어차피 부진한 사업실적 상태에서 향후 고정비 감축을 위해서 단행한다.
(예를 들면, 어차피 1000억 원 적자인데, 1300억 원 적자인들 감수현서 향후 구조를 개선한다는 결정)
완전 반대로 사업이 호황일 때, 많은 위로금을 감당할 수 있을 때, 향후 인력 구조의 변화 등을 위해서 선제적으로 진행한다.
(예를 들면, 영업이익이 계획은 1000억이었는데, 실제 2000억이 발생하여, 당해연도 영업이익을 투자 관점에서 활용해야 하는 경우)
이러한 대비된 특징으로 각 회사별 희망퇴직의 분위기와 양태는 정말 다르다.
항상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로 묘사되는 인사팀의 고정적 이미지를 탈피해서, 다른 시선에서 바라봐 주었다는 측면에서 아주 새롭게 다가온 영화였다.
누군가는, 해당 직무의 종사자는, 꼭 해야 하는 업무가 있다.
비록 이 업무 수행의 결과로 인해서 특정 개인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 업무를 수행하는 인사팀장이나 인사팀 멤버들을 개인적 원한을 가지고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 사람들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해야 할 일'이 발생하지 않게 경영진이 똑바르게 경영하고, 구성원들도 열심히 맡은 바 업무를 잘 수행하고, 해당 산업의 흐름이 원활하게 흘러가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도 누군가에게는 칭찬을 받고, 누군가에게는 욕을 먹으면서 일하고 있을 인사담당자분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