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잃은 그날,
나는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다.
철없이 어리광 부리던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엄마의 몫을 양 어깨에 걸머진 또 다른 나로 태어났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던 순간,
내 꿈은 깨진 유리조각처럼 산산이 흩어졌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따뜻하게 맞아주던 미소,
잠자리에 들기 전 등을 토닥여주던 잔잔한 일상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세상은 변함없이 흘러갔고,
내 일상은 여전히 그날의 충격 속에 갇혀 있었다.
엄마와 함께 걷던 동네 마실 길,
엄마 손에 매달려 깡충 뛰고 까르르 웃던 날들,
한여름 저녁 평상에 누워,
밤하늘 별들만큼이나 많던 엄마의 소녀적 이야기들...
사소하지만 소중했던 일상은 한순간 동화 속 이야기로 박제되어 버렸다.
나는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다.
울면 약해질까 두려웠다.
약한 모습은 어린 동생들을 더 불안하게 할 뿐이었다.
나와 가족을 살리는 일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무심히 살아내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웃지 않는 어른아이가 되어 있었다.
수업시간, 갑자기 교실 문이 덜컹 열렸다.
급사 언니가 헐떡이며 들어와 선생님 귀에 대고 무언가 속삭였다.
잠시 후,
어리둥절한 선생님은 더듬거리며 내 이름을 불렀다.
'교장실로 가라'는 말에 나와 친구들은 의아했다. 나는 말썽을 피운 적도, 납부금을 미룬 적도 없었으니까.
친구들과 시선을 주고받던 그 순간,
2층 창문 밖으로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속삭이는 듯했다.
“소정아, 네 엄마 돌아가셨어.”
환청이었을까, 바람 소리였을까.
순간, 내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팔딱거렸고, 나는 화살 맞은 짐승처럼 휘청거리며 교실을 뛰쳐나갔다.
2층 복도를 내달렸다.
조용하던 복도 유리창이 찌그덕 열리고, 친구들이 우르르 얼굴을 내밀었다.
“쟤 왜 저래?”
“너 친구 아니야?”
친구들의 수군거림이 화살처럼 귓가를 스쳐갔다.
순식간에 1층 교장실 앞에 다다랐을 때,
건너편 수위실 앞에 서 있던 하얀 소복 차림의 동네 아주머니가 손짓했다.
“아가, 이 일을 어쩐다냐… 아이고 불쌍한 것…”
아주머니는 나를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아니야, 아니라고... 내 엄마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의 온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문을 들어서자 마을 어른들이 눈물을 훔치며 나를 맞았다.
마루 쪽으로 다가서자, 안방에는 덩그러니 나무 관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는 주저 없이 달려가 엄마를 불렀다.
“엄마! 왜 여기에 있어? 엄마, 나오라고!”
그러나 다정하던 엄마는 더 이상 눈을 뜨지도, 미소를 짓지도 않았다.
차갑고 냉정한, 무감정한 얼굴이었다.
분명, 내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 이건 아니지!
엄마라면 나도 같이 가야지!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
나는 관 속 엄마 품속으로 쓰러졌다.
어른들이 달려와 간신히 나를 떼어내고 내 방에 눕혔다.
그날 이후
나는 엄마와 나,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을 상실한 우두커니가 되어 버렸다.
밤마다 엄마와 함께 올려다보던 수많은 별들은, 그리움만 더 짙게 만들었다.
별빛은 추억을 선명히 비추었지만, 내 앞날은 캄캄한 동굴 같았다. 예측도 희망도 없는 그 속을 헤집으며 나는 허우적거렸다.
사슬에 묶인 죄인처럼, 그러나 한 걸음씩이라도 나아가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죽은 셈 치고 살아보자. 엄마 대신 내가, 나의 엄마가 되자.”
엄마 없는 허망한 일상은, 돌멩이가 낙하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고 가볍게 흘러갔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서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엄마의 자리를 이제 내가 견뎌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집안 곳곳에 별빛 같은 작은 불빛을 밝혔다.
그것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다짐이자, 엄마 대신 엄마로 살아야 한다는 결심의 등불이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던 날, 나는 엄마뿐 아니라 내 안의 ‘나’까지도 떠나보냈다.
그날 이후 나는 엄마로 살아내기 위한 결심을 굳혔다.
열여섯 살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나’가 아닌 ‘엄마’로 살아내기 위한 길을 찾아야 했다.
이제 나는, 차돌처럼 단단한 부싯돌이 되어 내 안의 엄마와 나의 세계를 밝히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