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러 번 문 앞에 서 있었다.
노력으로도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내 삶을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문은
두드리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서 있는 사람에게
다시 열린다는 것을
그때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문이 닫혔다고 해서
길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섬에서 보낸 치열한 시간을 뒤로하고,
나는 만학도로 대학에 입학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인생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늦은 나이에
현역 학생들과 함께하는 공부는 쉽지 않았다.
그들이 한 시간 책상에 앉아 있을 때
나는 열 시간 이상을 버티며
나와의 싸움을 이어가야 했다.
그렇게 버틴 끝에
학기 내내 가슴을 옥죄던 국가고시에
단번에 합격했을 때,
그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순진하게도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취업의 문 앞에
다다랐을 때,
그 믿음은 처참히 깨졌다.
만학이라는 나이와
여자라는 성별이
내 이력의 가장 큰 결격 사유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간호조무사와 보건직 공무원으로
이론과 현장 실무를 겸비하고,
물리치료사 면허까지 취득했으니
나는 누구보다 단단히
준비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자신감으로
한 대학부속 의료기관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장에 당당히 들어섰다.
하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내가… 떨어졌다고?”
이유는 단순했다.
“여자라서, 그리고 나이가 많아서.”
그날 이후
나는 암흑 같은 어둠 속을 걷는 기분으로
나 자신과 마주했다.
‘직장을 버리고 대학에 진학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꿈을 좇는 일은
무모한 선택이었을까?’
공무원 생활을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선택한 나 자신을
잠시 원망해 보았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이루지 못했던 대학 진학의 꿈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냈는데,
취업의 문 앞에서
나이와 성별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그 모든 노력은
꺼져버린 불씨처럼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차갑게 식은 현실은
얼음처럼 내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돌아갈 수도 없었다.
생활비와 월세라는 현실 앞에서
모집 공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이력서를 들고 찾아갔다.
부산까지 면접을 보러 갔지만
그곳에서도
지역, 성별, 나이라는
또 다른 장벽이 나를 가로막았다.
부산에 살던 오빠는
성별과 나이에 비교적 자유로운
교직이 안전하다며
차라리 교육대학 진학을 권했다.
하지만
가정이 있는 오빠에게
의존하는 것이 더 부담스러워
그 제안도 조용히 사양했다.
나는 다시 광주로 돌아와
스스로를 점검했다.
“이 길밖에 없는 걸까?”
“아니면,
다시 방향을 바꾸어야 하는 걸까?”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바로 그 대학부속 의료기관이었다.
“담당자께서
다시 한번 만나보자고 하십니다.”
닫혔다고 포기했던 문이
아주 조심스럽게
다시 열리고 있었다.
다시 면접장에 들어선 자리에서
나는 또다시
마음이 상하는 질문을 받았다.
“남자친구는 있나요?”
“결혼은 언제쯤 할 계획인가요?”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 질문이
이 자리에 꼭 필요한 물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이 자리에 다시 온 것은
제게 맡겨진 일을
어떻게 해낼 수 있는지를
보여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그 대답은
내 삶의 방향이 되었고,
내 직무의 틀을
다시 곧추세우는 기준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월요일부터 출근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가장 어려운 환자들을 맡게 되었고
차츰 신뢰가 쌓이자
VIP 환자를 전담하게 되었다.
업무 과다로 몸살이 나
링거를 맞고 침상에 누워 있다가도
환자가 나를 찾으면
커튼을 걷고
다시 치료를 이어갔다.
그 책임감은
나를 ‘꼭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서라기보다,
나를 믿어준 이들에게
실망을 안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는 면접장에서
왜 그런 질문을 하게 되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선임 치료사들 대부분이 취업 후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이유로
후임도 구하지 못한 채
사직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여성 직장인들은
결혼과 동시에
퇴사가 당연시되던 시대였다.
나 역시
몇 년 뒤 결혼을 하며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결혼 후에도,
출산 후에도
그곳은 다시 나를 불렀다.
그곳에서 쌓인 신뢰는
나를 또 다른 길로 이끌었다.
특수학교 치료교육 교사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닫혔다고 포기했던
배움의 문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늦었지만
나는 끝내 물러서지 않았고,
그 문은 결국 다시 열렸다.
한때 교문 앞에서
교실로 들어가지 못하던
오래된 악몽은
대학원에 진학한 뒤
조용히 사라졌다.
멈추지 않는 나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어린 시절,
엄마가 내 가슴에 심어준
파란 꿈의 연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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