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파도가 나를 키운 섬

by 소정



섬에 발을 디딘 순간, 알았다.

바람과 파도가 이미 나를 키울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는 것을.

옛 인연의 기도가 나를 걷게 했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힘이 되었다.




바람의 방향이 나를 이끌었다


여수에서 백야도로 향한 날.
여객선은 선착장에 바로 접안하지 못했다.

작은 배가 와서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르는 풍경부터가 낯설었다.


희고 거친 바람도, 잠들지 않은 파도도 나를 반겼다.
용케도 멀미 한 번 하지 않고 임지에 도착했다.

종선에서 내려 트렁크를 끌고
가파른 길을 올라 면사무소로 향했다.


그곳에는 남자 직원들만 가득했고, 여직원은 타이피스트 단 한 명뿐이었다.
병원에서의 생활과는 모든 것이 달랐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이미 군에서 통보를 받은 듯

총무계장님은 나를 알아보고 곧장 면장님께 안내했다.


면장님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그분은 애양원에서 화상 치료를 받은 분의 남편이었다.
내 손길로 흉터 없이 회복했던 환자.
그 인연이 낯선 섬에서 나를 반겨주었다.


“우리 관내에 보건직이 들어오다니 든든합니다.”

그 말이 가슴 한가득 힘이 되었다.


여천군 보건소에서 섬 근무를 지망했을 때

“육지 사람은 못 버틴다.”

며 나를 설득했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직 보건직 공무원이 한 번도 발붙이지 않았다.”
그 말은 오히려 내 걸음을 재촉했다.


그곳엔 29개의 섬마을, 1만 5천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치는, 그 시절 결핵으로 해마다 사망하던 인구수와 같았다.
나는 그 숫자 앞에서 깊이 숨을 들이켰다.




기도로 나를 지켜준 인연을 뒤로하고


애양원에서 보낸 네 해는 모태의 자궁처럼 따뜻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날 때의 통증은

태아가 세상으로 나올 때의 필연처럼 아렸다.


그럼에도 나는 그곳에서 만난 세 사람의 기도와

은혜에 지금도 두 손 모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편지 한 통의 눈물

그분은 우편물을 원내에 전달하던 집사님.
양손이 없고, 다리가 불편하고,

입술마저 늘어진 한센병 음성환자였다.


그분은 상처치료를 위해 자주 외래 치료실에 방문하셨고,

만날 때마다 흐뭇한 인사로

만나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그리고, 내가

섬으로 발령받았다는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면사무소에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손도 아닌,

잇몸으로 연필을 물고,

한 자 한 자 눌러쓴 삐뚤한 글씨.


‘당신의 나날에 행복이 함께하길...’

온몸으로 쓴 기도를 읽는 순간,

도저히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용 때문이 아니라,

연필을 입에 물고 한 글자씩 써 내려간 정성이 눈앞에 선했다.


지금까지도 그 편지를 간직하지 못한 마음의 빚이 내 안에 남아 있다.


새벽의 기도

노 집사님 부부.
애양원에 근무할 때도, 섬에 발령받을 때도,

그리고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도


집사님 부부는 날마다 자전거로 새벽 교회당에 나가서

차갑고 단단한 교회 마룻바닥에 무릎 끓고

그들의 전부인 주님께 올려진 기도는,

그 은혜를 평생 갚아도 모자랄 것이다.


대부가 된 계장님

애양원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40년 넘게 이어지는 인연.
그때 서무과 계장님이셨던 집사님은,


사표를 내고 섬으로 떠나는 나의 ‘보호자’로 자청해
휴가까지 내서 임지로 따라오셨다.

그 후로도 진학과 이직, 그리고 삶의 고비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지금껏 조언과 격려를 보내주신다.


혈연도, 학연도 아닌
오직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진 가족이었다.

그들의 기도와 따뜻한 마음은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걸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내 삶의 나침반이다.





애양원의 잿빛 통증


그런 따뜻한 인연을 두고
내가 그곳을 떠나야 했던 이유는 분명했다.


입원실 근무 중 책임간호사가 적은 오더 실수.

‘아이스 팩’을 ‘핫팩’으로 적은 기록 오류가 원인이었다.

나이트 교대자 인계를 받고 나는 기록대로

실행했지만 그 책임은 나에게 돌아왔다.


참으려 했지만, 그것은 비굴함이라 느꼈다. 나는

“책임은 정확히 물어야 한다”

고 말했고, 그 말 한마디가 간호과장의 심기를 건드렸다.

‘감히, 간호조무사가 간호사의 실수를?’


시말서를 제출하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것이
분명 ‘괘씸죄’인걸 알았다. 그때 모두가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모두가 말렸지만,

나는 하급자가 상급자의 잘못을

떠안아야 하는 현실을 그대로 볼 수 없었다.


그게 학력 콤플렉스인가?

내 안의 오래된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 평안했던 나의 일상이 요동쳤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

나는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 무렵, 여천군 보건소의

‘보건직 특별모집’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모든 조건이 나에게 꼭 맞았다.
마치 “이 길로 와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상처 위에도 새순은 돋는다.
떠나는 길이었지만, 분명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또 한 번, 내 삶의 다음 장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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