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양재활병원에서의 시간은 오랫동안 상처로 비어 있던 내 마음에
사람과 신앙의 온기를 피워 올린 첫 불씨였다.
소록도 실습을 마치고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받았을 때,
그 종이 한 장은 나에게 첫 번째 ‘목표 도달’을 알려주는
가장 단단한 증표였다.
하지만 여수 시내 개인 산부인과에 취업한 뒤,
나는 곧 현실의 벽 앞에 깊은 회의를 느꼈다.
밤낮도, 주말도, 내 시간도 없는 일상 속에서
이런 환경에서 내가 배움을 이어갈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같은 방을 쓰던 선배가 조용히 말했다.
“공부하고 싶다면 이곳은 네게 맞지 않아.
마침 애양재활병원에서 채용 공고 떴는데, 너 한번 도전해 봐.”
그 말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애양재활병원은 세례 받은 기독교인만 채용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나는 그 문을 두드려 보고 싶었다.
“떨어져도 괜찮아. 한 번 도전은 해보자.”
그렇게 용감하게 이력서를 냈고,
며칠 뒤 면접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오히려 당황했다.
“지원 자격부터 미달인 내가 합격을?”
면접장에는 목사님·장로님 가정에서 자란
조건을 모두 갖춘 지원자들이었다.
돌이켜 보면 합격의 단서 하나가 떠오른다.
“소록도에서 실습했다고요?”
면접관들의 반응이 유난히 반짝였다.
그 실습 경험이 나에게 열린 문을 만들어준
합격의 열쇠였는지도 모른다.
애양병원의 근무환경은 개인 의원과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기숙사 제공, 3교대 8시간 근무, 주 1회 off-day.
게다가 또래 기숙사 친구들은
각자 공부하고 취미를 즐기며 자기 길을 열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내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꺼져 있던 희망의 불꽃이
슬며시 솟아올랐다.
입사 후 6개월 안에 세례를 받아야 했기에
나는 성경 공부와 예배 참석에 매진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목사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평안했고,
직원 성가대에서 막내 자라에 앉아 찬송가를 부를 때면
어깨가 의젓하게 펴지기도 했다.
그리고 세례를 받던 날—
내 안에 꿈을 향한 열정이 활화산처럼 솟구쳤다.
기숙사엔 늘 웃음이 가득했다.
취침 시간을 넘기고 친구들과의 수다 떨다 언니들한테 들키면
사감 언니는 잔소리를 하지만,
우리는 그 소리에도 고개 숙여 킥킥거렸다.
쉬는 날이 같은 친구들과 자전거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거나
여름에는 바닷가에서 얼굴이 까맣게 타도록
물에 풍덩 거리던 순간들.
그러나 공동체의 따스함 속에서도
세상은 여전히 그들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직원분 댁에 생일 식사 초대를 받았다.
하지만 집안 분위기는 축하가 아닌 ‘초상집’ 같았다.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 학부모들이 몰려와
“나환자 자녀와 같은 교실에서 공부시킬 수 없다”며
시위를 벌였다는 것이다.
정작 뒷말로 들려온 이유는
직원 자녀분들의 성적이 더 우수한 것을 ‘시샘’ 한 때문이었다.
밥상 앞에서 울고 있는 그 가족 곁에 앉아
나도 함께 부끄러움과 슬픔에 숨죽여 울었다.
소록도에서 실습할 때도 느꼈지만,
애양원에서도 그분들은
말로 다 표현 못 할 상처를 안고 살면서도
세상 누구보다 다정하고 부지런한 인정 많은 분들이었다.
엄마가 없는 나를 ‘딸처럼’ 챙겨주던 직원 가족들.
그분들은 지금까지도 40년 넘게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
새벽마다 기도를 올려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나의 빈자리를 채워준 은혜가 분명함을 느꼈다.
병원 식당에서 하루 세끼 차려주는 따뜻한 밥상,
바닷바람, 노을, 새벽의 기도소리,
아침마다 진료 전에 울려 퍼지는 직원들의 활기찬 찬송가.
그 모든 것이
어린 시절 엄마를 잃은 상실감,
학업을 이어가지 못한 허탈감으로 공허한
나의 마음 깊은 곳의 상처를 천천히,
조용히 말끔히 치유해 주었다.
외래 진료일마다 상처 소독을 받으러 오던
정착촌 환자분의 눈빛을 볼 때면
소록도에서 느꼈던 그 절망이 겹쳐 보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깨달았다.
나는 아픈 상처 속에 갇힌 미숙한 소녀가 아니라
나보다 더 아픈 상처를 간직한 사람들을 감싸줄
배려하고 베프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애양재활병원은 현실의 고립감에 잡혀있던 나를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준
인생의 쉼표이자 시작점이었다.
그곳은
신앙과 공동체의 씨앗이 심어진 자리였고,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한
엄마의 자궁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받은 위로와 사랑은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고 마음껏 공부하지 못한
나의 마음에 각인된 과거의 절망을 떨치고
미래로 통하는 길을 밝혀준 등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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