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섬에서 2-바람과 동행한 길

by 소정




바람이 길을 정해주던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저, 그 바람을 따라 섬과 바다를 건너며 하루를 살아냈다.

그 여정 속에서 나는 ‘공무원’이 아니라

어른으로, 한 사람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섬마을 출장길에서 배운 삶의 바다


70년대 후반의 섬마을은
당시 ‘문명’이라 불리던 것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전기는 저녁 두 시간만 가능했고,
그마저도 큰 마을은 자가발전으로 어둠을 밀어낼 수 있었다.


식수는 급수선이 왔고, 생활용수는 빗물을 받아 이용했다.
태풍이 몰아치면 여객선이 끊기고
섬은 순식간에 고립됐다.


면직원의 하루는 대부분

섬마을 출장으로 시작해 섬에서 끝났다.
출퇴근이라는 개념보다
일정이 끝나야 하루가 끝나는 삶이었다.


무엇보다 날씨와 무전망이

그날의 일정 전체를 좌우했다.


“여기는 00 면사무소, ○○마을 이장님 응답 바람, 오버.”


이 짧은 호출 한마디가
나의 하루의 방향도 결정했다.


여수에서 들어온 배가 면 소재지에 닿으면
나는 무전으로 약속된 마을로 향했다.





관내 29개 마을.
한 달에 한 번씩 주민을 만나려면
거의 매일 섬을 건너야 했지만
교통은 늘 역부족이었다.


출장업무는 늘
주민들이 들판과 바다에서 돌아온 뒤에야 시작되었고,

일이 끝나도 저녁 배가 없으니
부녀회장댁이나 지정된 하숙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마을 청년들이 많은 곳서는
그들의 ‘환대’가 날 기다렸다.


청년들은 작은 통통배에 나를 태워
인근 바다로 나가 투망질을 하고,
여성 회원들은 그 자리에서
해물탕과 즉석 회를 만들어 맛 보여 주었다.


처음엔 날것이 낯설어

몰래 뱉어내기도 했지만
몇 번을 겪다 보니
바다의 깊고 달큼한 맛이
내 입안에 스며들었다.




인구가 적은 마을에서는
일이 일찍 끝나면
이장님이 가까운 마을까지 데려다주기도 했다.


마을 어귀에 나룻배가 닿으면

아이들 예방접종, 투약 확인,
새벽빛이 번지기 전
가가호호 방문해 결핵환자와 가족들의

객담 채취하는 일로 아침을 밝혔다.


출장지에 아침배가 도착하면

첫 배로 보건소에 검사물을 보내는
그 ‘일상의 반복’ 속에서
나는 당시 결핵 발견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실적률이 좋다는 것은 그 마을에

그만큼 은익 환자가 많았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당시 섬의 보건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00도 ‘00 진료선'이 섬을 돌기 시작했다.
X-ray, 치과·내과 진료…
육지에 나가기 어려운 주민들에게
진료선은 떠다니는 병원이었다.


70년대 말, 80년 초.

섬마을의 생활환경은 열악했지만
그 시절 섬마을 사람들의 인정은

바다보다 넓고 물결보다도 더

부드럽고 따뜻했다.


주민들의 순박함과 온정은
내 젊음에 감사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아침 배로 면사무소에 돌아오면
출장보고를 하고,
오후엔 다시 다른 섬으로 향했다.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그 반복 속에서 작은 희망의 불씨가 피어올라
내 마음과 인생의 길을
조금씩 밝히고 있었다.




쪽빛 바다가 품어준 꿈의 씨앗


섬 생활 4년 동안
출장과 숙소를 오가는 짧은 틈에도
나는 책을 놓지 않았다.


돌아보면
그때 이미 ‘섬 너머의 나’를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예비고사를 치르고
00 대학 0000과에 합격했을 때
나는 섬 근무의 마지막 페이지를
조용히 덮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을 간다고 하자
동료들은 말렸다.


“대학을 나와도 다시 공무원 되기는 어려워.”
“다들 공무원 못 돼서 안달인데, 왜 안정된 철밥통을 그만둬?”


그러나 내 마음속에서는
오래전부터 배움을 향한

열정의 바람이 일렁이고 있었다.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라.”

그 목소리가

나를 담금질했다.


가장 큰 걱정은 학비와 생활비였다.
그간 모은 월급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라면 한 봉지로 두 끼를 때우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 작은 라면 냄비에 넘치는 국물은
초라함이 아니라
‘배움을 향한 목숨 같은 의지’였다.


결국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

그리고 각인하듯 다짐했다.


“나는 배부른 돼지로 머물지 않겠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살더라도
배우는 길을 포기하지 않겠다.”


공무원 ‘시보’ 딱지가 막 떨어져
급수도 오르고 급여도 오르던 때였지만
나는 안정 대신
‘젊음에 단 한 번뿐인 나만의 길’을 선택했다.




뒤돌아보면
섬의 바람과 파도는

나를 바위처럼 단단하게 다져주었다.


그 시절 내가 가진 자산은
오직 열정과 도전뿐이었다.


열정 하나로 시작한 배움의 길은

광주에서, 대학에서, 대학원에서, 그리고

대학강단에서 다시 꽃을 피웠다.


엄마가 남기고 간 배움의 씨앗은

그렇게 내 삶 깊은 곳에서 뿌리내리고

나를 다시 세웠다.


이제 나는

그 씨앗이 길러낸 힘을

누군가의 어둠을 밝히는 작은 등불로

되돌려 주고 싶다.


그것이

내가 걸어온 길의 이유이며

앞으로 나아갈 희망의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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