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장애청년과의 만남

장애청년의 임신과 출산

by 유원선

지수(가명)가 교회에 왔을 때 이미 배는 상당히 불러 7-8개월쯤 되어 보였다. 지수는 교회가 있는 지역의 장애인자립센터의 지원으로 장애인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고 있는 청년이었다. 주변에서 뒤늦게 지수의 임신을 발견했고 도움을 요청하고자 교회에 데리고 온 것이다. 교회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어떻게 부모도, 남편도, 친인척도 없는 장애 청년이 지역사회에서 애를 낳냐, 미혼모 시설에 들어가야 한다. 입양을 보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낳아야 한다. 아무도 책임질 수도, 결정할 권한도 없는 의견들이 공허하게 맴돌았다.


지수는 부모와 친인척, 연고자가 아무도 없었다. 갓난아기 때 장애인 시설에 버려졌다고 한다. 그 이후 지수는 장애인시설에서 자랐다. 성인이 되어 시설에서 자립하고 싶은 장애인들을 돕는 자립센터의 도움으로 자립홈을 거쳐 독립주거에 살고 있었다.

지수는 지적장애인이었다. 지수의 부족한 지적 능력은 생활능력의 부족으로도 나타났는데, 잘 씻지 않는다거나 집을 치우지 않는다거나 밤에 대소변 실수를 자주 하는 등이었다.

지수는 늘 사랑이 부족했다. 어린 시절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주변의 살가운 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지수는 사람의 관심을 갈구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 중 사기꾼을 구분할 수 없었으니 자기 명의로 여기저기 개통해 준 핸드폰은 빚이 되어 있었고, 배속에는 생명이 들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와 중 지수에게 강한 의지가 있었는데, 그건 아기를 입양 보내지 않고 직접 키우겠다는 것이었다. “내 아기”를 왜 남에게 보내냐고 물었다. 어떻게 아기를 키울 거냐고 물으니 “유튜브 보면 다 나와요. 그거 보고 하면 돼요.”라고 말했다.


나는 사회복지사고 복지현장에서 20년 넘게 일해왔다. 교회 친한 언니들이 자꾸 나에게 지수 얘기를 했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나는 외면하고 싶었다. 간단히 답이 나올 일이 아님을 알기에 더욱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았다.

그때쯤 우연히 '청소년시기에 부모가 된 이들'을 지원하는 단체 대표님을 만나는 일이 있었다. 그 대표님이 최근 장애를 가진 청소년들이 임신이 되는 일이 잦고 그들은 입양시키기를 원하지 않아 키우다가 아이가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고. 장애 엄마가, 그것도 주변에 돕는 가족 없이 아이를 키우는 건 어렵다는 얘기를 하신다. 더 이상 모른 척할 수가 없다. 무거워진 마음으로 목사님께 전화를 했다. 목사님은 마치 내 전화를 기다리셨다는 듯이, 지수네 집을 방문하려고 하는데 무조건 내 시간에 맞출 테니 같이 가자고 하셨다. 아, 괜히 오지랖 넓게 전화를 해서는! 그렇게 처음으로 지수의 집을 방문한 날. 나는 뭔가 이제 지수도, 배 속의 아이도 외면할 수 없게 되었음을 느꼈다.


지수를 지원하기로 마음먹으면서(이건 나의 자발적 결심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등 떠 밀림에 가까웠다.) 나는 2가지 목표를 세웠다. 하나는, 아이를 건강하게 낳을 수 있도록 돕고 아이를 낳으면 잘 설득하여 한 달 안에 입양을 보낸다. 둘, 지수가 피임하도록 돕고 피임하고 나면 우리의 역할은 끝! 이렇게 끝나는 기한을 정했다. 임신과 출산만 무사히 잘 지원하자는 마음이었다.


대망의 출산 일이 다가왔다. 지수의 집 가까이에 마침 종합병원이 있어 지수는 그 병원에서 아기를 낳게 되었다. 아기가 나올 시간이 지났는데 소식이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했는데 밤 12시가 넘어 병원에 동행해 준 분에게 연락이 왔다. 출산하러 가서 진료를 해보니 아기가 태동이 없어 급하게 수술을 했고, 아기가 언제부터 숨을 쉬지 않았는지 알 수 없으나 아기는 태변을 먹은 상태였고 응급처치를 하고 중환자실에 들어갔다고 한다. 중환자실에서 의사샘이 밤새 아기의 위를 세척하고 상태를 체크한 결과 아기는 죽지는 않았고 살아있다! 고 했다.


지수는 본인이 언제 임신을 했는지 몰랐다. 임신을 알았을 때 그때가 몇 개월인지 아무도 몰랐다. 병원에서 대략 추측으로 개월수를 따졌고 그에 따라 출산일이 잡혔는데 아기가 배속에서 너무 오래 있었던 것 같다는 얘기. 즉, 더 빨리 낳았어야 한다는 것과 나올 때가 됐는데도 진통이 없었다는 건 아이가 원래 건강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추측이었다.


그렇게 건강하게 임신과 출산을 도와 입양을 시키겠다는 야심 찬 목표는 처음부터 예상을 한참 빗나갔다.

그 이후 아무것도 나의 예상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