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장애의 유동성
지수(가명)는 중증 지적장애로 (이전 급수가 있었을 때) 2급이라고 했다. 걷는 것이 조금 불안정하고 발음이 다소 부정확하여 만나는 사람들은 조금만 얘기해 보면 지수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지수를 알아 갈수록 '얘가 혹시 장애가 아닌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도 종종 나에게 "지수가 혹시 장애인 척하는 건 아니겠지?"라고 묻곤 했다.
#지수의 능력치
처음에 놀란 것은 지수가 행정 서류를 너무 잘 떼서다. 각종 지원에 필요한 복잡한 서류들을 지수는 하루면 뚝딱 떼어가지고 왔다. 주민센터를 가든 인터넷으로 하든 다양하고 용어도 어려운 각종 서류들을 잘 준비해 왔다. 지원을 여러 번 받아서 그런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군. 생각했다. 한편 씁쓸하기도 했지만 지수의 그런 능력치는 아주 유용했다.
우린 아이가 태어난 이후 출산한 병원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종합병원이 그렇듯 키오스크로 해야 할 일, 각각 별도의 층에서 해야 할 일이 복잡한데 지수는 한번 해보고 나면 그걸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병원에 동행해 준 내가 어리버리하는 사이, 지수가 이건 여기서 이렇게 하면 되고요. 이건 저기 가서 하면 돼요. 다 알려주고 척척 해낸다.
지수는 기억력이 무척 좋다. 한 번은 지수를 함께 도와주는 후배네 집으로 초대를 했는데 지수가 집에서 출발한 이후 핸드폰 전원이 꺼졌다. 아이를 안고 지하철 역에서부터 집까지 찾아오지 못할 거 같아서(지하철-마을버스-대단지 아파트 동호수 찾기) 지하철역에서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수가 아기를 안고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핸드폰은 꺼졌지만 우리가 보낸 카톡을 기억해서 마을버스 타고 동호수까지 찾아서 혼자 온 것이다! 이 정도면.. 웬만한 사람(나) 보다 기억이 좋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대중교통도 잘 이용한다. 지수가 살았던 동네는 지하철은 닿지만 어디를 가든 여러 번 갈아타야 하고 특히 그 동네에서 우리 교회는 교통이 아주 불편했다. 근데 임신했을 때나 아기를 낳고도 지수는 대중교통을 타고 그 거리를 잘 다녔다. 어디를 가든 별로 겁내지 않고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곤 했다.
요즘 젊은이답게(지수가 아이를 낳았을 때가 27살) 핸드폰이나 인터넷을 잘했는데 인터넷 쇼핑은 기본이고 인터넷으로 하는 웬만한 거는 혼자 할 줄 알았다. 카톡으로 대화를 할 때면 지수의 장애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말도 잘 알아듣고 (하기 싫을 때가 아니면) 대답도 잘했다.
요리도 잘했다. 처음엔 (전혀 밥을 해 먹지 않아서) 요리를 전혀 못하는 줄 알았는데 물김치도 담그고 교회 모임을 할 때면 특별한 요리를 하나 직접 장 봐서 대량을 만들어서 가져오곤 했다. 마음만 먹으면 요리쯤은 뚝딱이었다.
#지수의 한계치
이런 지수의 능력치는 나를 가끔(자주) 빡치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요리를 할 줄 아는데 전혀 밥을 해먹지 않는다든지, 밥을 해 먹기는커녕, 데워먹으라고 가스레인지 올려놓은 것도 썩을 때까지 먹지 않았다. 빨래가 쌓여도 하지 않고 빨래를 돌려놔주면 널지 않고 널어놓으면 개지 않았다. 밥은 주로 편의점에서 생라면, 인스턴트, 과자 등으로 해결하거나 돈이 있을 때는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활동보조샘이 오셔서 밥을 차려줘도 먹지 않았다. 이 정도면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선호의 문제구나 생각하니 열받았다. "너는 지금 홀몸이 아니라구! 임신했잖아! 밥을 먹어야 한다구!" "너는 그렇다 치고 아기는 어떻게 먹일 건데!"
한 번은 핸드폰 명의를 도용 당했는데, 여러 정황상 이건 도용이라기보다 누군가의 꼬심에 넘어가 지수가 승인을 해준 상황 같았다.(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다고 했다) 그 사람의 이름을 아냐고 경찰이 묻는데 이름은 생각이 안 난다고 하면서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데,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잠깐 본 동호수까지 기억하면서 자기가 핸드폰까지 개통해 준 사람의 이름은 왜 기억이 안나냐고!
우리의 마음이 흔히 자식에게도 기대치를 낮추면 화가 안 나는데 기대가 있기 때문에 화가 나듯, 지수도 마찬가지였다. 아예 안된다고 생각하면 화가 안 나는데 된다고 생각하니 못하는 일들에 화가 났다.
그동안 지켜본 결과, 지수 장애의 가장 큰 특징은 "둔한 감각" 같다. 일단 통증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추운 것도 더운 것도 아픈 것도 잘 모르는 곳 같다. 그러니 한겨울에도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 나타난다. 계절이 맞지 않는 옷으로 주변을 놀라게 하기가 일쑤. 만삭 때도 계속 서있거나 걷는 것을 너무 잘하길래 젊어서 그런가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도 통증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지수는 더러운 걸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잘 씻지 않는다. 머리도 안감도 양치도 안 하고 샤워도 자주 안 한다. 보다 못해 샤워하라고 샤워실에 들여보내면 물 틀어놓고 핸드폰 보다가 머리가 하나도 안 젖은 채로 다시 나온다.
지수는 대소변 실수를 할 때가 종종 있는데 특히 밤에 심하다. 밖에서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종종 그런 거 같은데, 그래서 바지에 실수를 하거나 이불에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걸 잘 처리하지 않아 방에서 냄새가 진동을 하고 그 근원을 찾아 헤매곤 했다.
어떤 때는 한번 잠들면 20시간도 자는 것 같았고, 흔들어 깨워도 모를 지경으로 골아떨어졌다. 잠귀라는 건 거의 없다고 봐야 할 지경.
지수의 이런 씻지 않는 습관, 야뇨, 부적절한 복장 등으로 나는 여러 번 화가 났었는데 어느 날 문득! 아, 이런 생활상의 문제들이 "둔한 감각"으로 특징 지워지고 이건 단순히 선호,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어느 부분의 고치기 어려운 문제, 즉 장애로 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내 친구가 엄마가 치매인 것 같다면서 증상을 말하는데 아니, 지수랑 똑같은 것이 아닌가! 어느 날인가부터 씻기를 싫어하고 씻으러 들어갔다가 그냥 나온다고. 가끔 대소변 조절이 잘 안 되어 실수를 하신다고. 아, 이건 화낼 일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였나 하는 생각.
그리하여 지수의 야뇨를 고쳐보고자 건강검진을 하고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가게 되었다. 지수의 야뇨는 밤에 나와야 하는 어떤 호르몬이 나오지 않아 소변을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매일 하루 한번 호르몬제를 먹으면 된다고 하셨다. 고칠 수는 없지만 해결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수의 또 다른 특징이 있었는데 그건 "일상적으로 꾸준하고 규칙적인 행동"이 어렵다는 것이다. 시설에서의 규율생활이 답답했어서 자립한 이후의 자유를 누려보고자 하는 것인지, 어떤 장애의 특성 중 하나인지 모르겠지만 지수는 삼시 세끼 제시간에 밥을 먹는다든지, 꾸준히 일정한 시간에 약을 복용한다든지,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난다든지 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한번 마음먹으면 엄청나게 많은 분량을 잔뜩 장을 보고 몇 시간 동안 요리를 해서 냉장고를 가득 채워놓기도 하지만 일상적으로 간단히 냉장고의 반찬을 꺼내서 햇반을 돌려 먹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매주 와야 하는 교회도 어떤 날은 1시간 먼저 와서 기다리는가 하면 어떤 때는 몇 주를 아무런 연락 없이 오지 않는다. (그래도 교회는 정말 잘 챙겨 나오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매일 하루 한번 약 먹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이런 특성을 지닌 지수가 아기를 키운다니. 그것도 혼자서!
나는 초반에 지수가 할 수 있는데 "안"하는 것인지_그렇다면 우리가 도와줘서 오히려 더 안 하게 만드나?
정말 지수 혼자서는 하기 힘들어 "못"하는 것인지_그렇다면 더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하지 않나?_구분이 안 갈 때가 많았다. 그런 대혼란 속에서 아기가 태어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무호흡으로 장애가 우려가 되는 여건 속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