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돌잔치 그리고 다시 시설로

by 유원선

그러는 사이 아기는 돌이 되었다.

태어나자마자 미혼모 시설에서 5개월, 지역사회에서 7개월.

더 이상은 지수(가명)와 아기가 지역사회에서 사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다시 입소할 시설을 수소문하는 그 기간에 아기는 돌을 맞았다.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인큐베이터와 신생아 중환자실 신세를 2주나 지면서 정상적인 발달을 할지 여부가 모두의 우려였다. 종합병원에서 소아신경외과, 재활의학과, 소아과 등의 협진으로 지속적인 검사를 진행했고, 그 사이 뇌에 물이 차는 문제로 수술을 한번 받았고, 생식기의 문제로 작은 수술이 또 한 번 있었다.

하지만 우려보다 아기는 사람들과의 눈 맞춤도 잘하고 반응도 잘했다. 얼마나 방긋방긋 웃고 사랑스러운지 누구든 한번 보면 아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아기의 눈을 맞추고 지긋이 바라보면 아기는 내 얼굴을 자기의 양손으로 잡고 자기 이마와 내 이마를 마주대게 하는 '이마 뽀뽀' 같은 것을 잘했는데 뭔가 성직자에게 축복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럴 때면 주책없이 이 아이는 현현(顯現)한 예수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예수님도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으니, 지수네 집은 현대의 마구간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하여튼 아기는 약간씩 늦었으나 뒤집을 때가 되었는데? 생각하면 몸을 뒤집었고, 길 때가 되었는데 왜 안기지? 하면 기었다. 돌을 전후하여 아기들은 보통 걷기 마련인데 걷는 것은 좀 더 늦었다. 돌이 되었을 때 아기는 잡아주면 잠깐 버티고 서는 정도였다. 아기의 상태에 대해 들었던 신경외과 의사인 형부는 "걷는 게 중요하다"라고 했다. 아기가 걷는 발달이 가능한지 안 한 지가 이후 아이의 성장과 장애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칠 거라고 했다. 우리 팀의 대표님이신 목사님은 아기가 너무 똑똑하고 반응도 잘한다고 장애는 없을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뭔가 팔이 안으로 굽듯 손주를 이뻐하는 할아버지 마인드라 딱히 걱정이 내려놔지진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돌잔치를 준비했다.

장소는 교회 앞마당. 젊은 엄마 지수는 하고 싶은 리스트가 있었다. 소소한 사진엽서, 풍선 등이었는데 그건 지수가 주문했다. 큰 틀의 준비해야 할 것들은 우리 팀의 두 과장, 현미와 시원이 맡았다. 이 과장들은 미술을 전공한 금손들이었다. 현미가 돌상의 꽃꽂이부터 음식세팅, 그릇 등의 일체를 담당했다. 돌떡은 지수가 꼭 유기농쌀을 맡겨서 방앗간에서 해야 한다고 하여, 우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떡을 굳이 유기농 비싼 쌀로 만들다니...) 유기농 쌀로 만든 백설기로 준비되었다.

현수막은 우리 교회의 또 다른 미술 전공자인 우리씨가 특별 제작하여 손수 그려주었다. 교회 집사님이 사진을 찍어주었고 청년부 회장이 사회를 보았다. 나는 지수가 화장은커녕 로션을 바른 것도 본 적이 없는데 그날은 우리의 권유로 미용실에 들러서 머리를 하고 전문가의 손길로 화장을 했다. 지수와 아기는 세트로 빌린 예쁜 한복을 입었다. 교회 예배 마치고 교회 마당에서 전교인이 참여한 돌잔치가 진행되었다. 돌잡이에 이모, 삼촌들이 다 한 마디씩. 말도 많고 왁자한, 어느 대가족 잔치 못지않은 돌잔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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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는 끝났고 시설 입소가 남았다.

다시 시설 입소를 알아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는 이전에 입소했던 애란원과 주변에 문의를 했다. 시청의 무한돌봄 담당자도 지역의 시설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몇 군데 문의를 하고 답변을 기다렸지만 자리 있는 곳도 없었고 장애 엄마와 아기는 손이 많이 가기에 섣불리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그러던 중 시청에서 알아본 곳 중 타 지역이지만 한 군데에서 엄마와 아기를 만나보고 결정하겠다고 하시는 원장님이 계셨다. (시청 무한돌봄 담당자도 본인 관할 지역에는 받아주는 시설이 없는데 타 지역까지 알아봐 주었으니 처음의 발을 빼려고만 하던 태도에서 많이 변했다.)

그 원장님이 지수와 아기를 만나러 3번 집에 오셨다. 내가 면접을 보는 것처럼 두근거렸다. 첫 번째를 제외하고는 원장님은 지수와 따로 약속을 하고 둘만 만났다. 어떤 것을 보시는지 알 수 없었는데 면접을 보내는 부모의 마음처럼 지수에게 몇 가지의 정답을 숙지시켰다.

나는 세 번째 원장님이 오신다고 했을 때 지수의 입소를 확신했다. 받아주시려는 마음으로 오시지 않고서야 세 번이나 방문하실 리가 없지 않은가. 내 예상대로 지수는 입소를 하게 되었다. 아기의 돌이 지난 10월 중순으로 이사 날짜가 잡혔다.

이사를 하면서 이번에는 원래 살던 집을 완전히 처분했다. 지역의 장애인자립센터에서 보증금을 지원했다고 하여 보증금도 반납하고 집도 다 정리했다. 짐을 얼마나 가지고 들어가야 하는지 몰라 물었더니 원장님이 '뭐든 다 가지고 와도 되고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아도 된다'라고 하셨는데 시설에 가보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시설은 빌라 한 채를 통으로 쓰고 있었는데 1층 입구에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이 있고 빌라의 각 집집마다 한 가정씩 살고 있는 완전한 독립주거 형태였다. 집은 모든 가구와 가전이 다 있었고 방 2개, 거실, 화장실, 주방 등 기존에 살던 원룸 집의 2-3배는 되어 보였다. 아기 옷과 물건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 수납은 거뜬히 가능한 공간이었다. 식사를 각자 자기 집에서 해 먹는 구조였고 각자의 독립된 집에서 살되 다른 입주 가정들과 함께 하는 활동도 있는 시스템이었다. 전에 아기를 낳자마자 입소했던 시설보다 보호의 강도는 낮고 좀 더 독립적인 구조였다. 방문한 우리도 지수도 시설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집에 온 것 같아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수도 아주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그렇게 지수와 아기의 새로운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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