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지수(가명)네 가정을 위한 지역사회의 모든 자원이 세팅되고 나니 장애를 가진 지수가 과연 장기적으로 엄마의 역할을 할 수 있느냐가 도마에 올랐다.
#엄마로서의 가능성
규칙적이고 일상적인 반복이 잘 되지 않는 지수가 과연 시간에 맞춰 아기 분유를 주고 약을 먹일 수 있을지가 가장 큰 의문이었는데 지수는 예상을 깨고 이걸 아주 잘했다. 아기 개월수에 맞춰 분유를 주문하고 분량과 시간에 맞춰 분유를 먹였다. 가끔 분유병의 청결과 분량을 확인하고 수정해주면 그것에 맞춰 곧잘 했다. 아기가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아이의 상처부위 치료와 약 먹이는 것도 혼자 잘 해냈다. 본인의 밥과 약을 챙겨 먹지 않는 것에 비교하면 반전에 가까웠다.
그런데 지수는 잘 씻지 않는데 그건 아기에게도 적용되었다. 미혼모 시설에서 나와서 지역사회에 처음 왔을때, 5일 정도 후에 우리가 처음 방문했는데 그 5일 동안 지수는 아기를 한번도 씻기지 않았다고 했다! 아침 저녁으로 아기를 목욕시키는 것이 당연한 상식으로 되어 있는 우리들에게 5일동안 아기를 안씻겼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지수야, 아기는 매일 씻겨야 해. 씻기고 나면 로션 발라주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알았지?"
그때 나의 마음은 '아, 하루 빨리 목욕을 시켜줄 아이돌봄 샘을 연결해야 한다.'는 절박함이었고 지수의 행동변화에는 솔직히 기대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 팀 다른 멤버인 시원이는 근엄하고 심각한 어투로 지수에게 아기를 목욕시킬 것을 계속 당부했다. 또 다른 멤버인 현미는 매일 카톡으로 목욕을 시켰는지 사진찍어 보내라며 인증샷을 독려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정말 지수가 아기는 매일 목욕 시켜야 하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빠지는 날이 있었지만 그래도 매일 아기를 씻기려고 노력했고, 이후 아이돌봄 샘이 연결된 이후 아이돌봄 샘과 아기 목욕을 같이 시키면서 더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본인은 씻지 않아도 아기는 씻겼다. 놀라운 변화였고 가능성이었다.
무엇보다 아기란 존재가 엄청나게 손이 많이 가고 돌보기 힘들다는 것을 체감하면 육아를 금방 포기할거라는 주변의 예측과는 달리, 지수는 아기를 너무 이뻐했다.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으며, 너무 너무 이쁘단다. 아기도 엄마를 알아보고는 엄마를 보며 방긋 방긋 웃어주는 예쁜 아기였다. 부족하지만 아기를 돌보기 위해, 엄마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 느껴져 기특했고 안타까웠다.
#엄마로서의 자격미달
일요일에 지수가 아기와 함께 교회에 오면 우리는 늘 아기의 엉덩이 상태를 확인했다. 엉덩이가 짓물러 있을 때가 많았다. 활동 보조 샘을 통해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아기는 보통 이른 아침에 대변을 보는 것 같았다. 몇시 일지 모르겠지만 7시 경인 것 같다고 한다. 그때 지수는 잠에 취해 일어나지 못하니 9시에 활동보조샘이 오시면 그때까지 아기는 울고 있고 기저귀를 확인해보면 한참 전에 싼듯한 대변을 뭉개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일어난 날은 아기가 열이 나서 아픈 날이었다. 아픈 아기가 약을 먹고도 밤새 보챘고, 아기를 돌보고 달래며 지수는 밤을 새웠다. 그리고는 아기의 상태가 좋아지고 지수는 잠든 것이다. 마침 그날은 토요일이라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이었다. 한번 잠들면 20시간도 자는 지수는 그 전날 밤샘의 여파로 토요일 내내 잤다고 한다. 지수가 완전 골아 떨어진 동안 아기는 깨어 울었을거고 대변을 보고 얼마간을 그대로 있었는지 알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가 안 것은 일요일에 아기 엉덩이 전체가 화상 수준으로 벗겨져 있었던 것이다. 아기는 이제 엉덩이가 아퍼서 울었다. 땅에 닿으면 울었다. 그 상처는 정말 오래갔다.
지수는 그 일로 많은 사람에게 정말 많이 혼났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혼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 당시 내 핸폰에는 아기의 엉덩이 사진으로 도배가 되었다. 지수도 아기에게 미안해했고 자기도 나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나 이런 일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참담했다.
지수는 아기를 낳기 전에는 밤에 PC방에 가서 밤새고 들어오는 일이 잦았고 집에 남자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임신하여 우리와 연결된 이후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는 한번도 남자와 연락하거나 만나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아기 수술 상처가 회복되고 지역사회에서의 생활이 자리잡을 무렵, 눈이 예리한 몇몇 교인들에게서 집에 혹시 다시 남자가 드나는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화장실에 남자가 사용한 흔적이 있다든지, 뭔가 남자가 왔다 간 것 같은 냄새?가 난다든지 하는 심증이었다. 지수가 다시 임신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아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다. 아니라는 지수에게 더이상 캐물을 수 없는 상태였을 때, 놀라운 얘기를 듣게된다.
어느 날 활동보조 샘이 보통 때처럼 아침 9시에 집에 와보니 아기만 있고 지수가 집에 없더란다. 30분쯤 지나 지수가 왔고 잠시 밖에 나갔다 온 차림이 아닌 것 같다는 얘기였다. 지수의 야행생활이 다시 시작되었구나.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동일한 일이 또 일어났다. 이건 아동 학대로 신고할 일이었다. 지수네와 연결된 드림스타트 팀은 이런 걸 감시하는 역할을 했고, 우리에게도 신고할 의무가 있었다. 신고하는 순간 지수와 아기는 분리되고 아기는 아마도 시설로 보내지겠지.
우리 팀은 비상 회의를 열었다. 아동 학대로 신고해서 분리하든지, 둘이 시설로 들어가든지 둘 중 하나밖에 없다. 더이상 지역사회에서 둘이서 살아가긴 어렵겠다는 판단이었다. 중대 사건이니 대표님(목사님)이 나섰다. 지수에게 "너 밤에 아기 두고 혼자 밖에 나간 적이 있냐"고 물으니 시인하더란다. 그럼 너는 아기를 돌볼 수 없다. 아기와 헤어지든지, 같이 살려면 시설에 들어가야 한다고 설명하니 시설로 들어가겠다고 하더란다.
지수 스스로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 걸까? 집에서는 자기 스스로를 자제할 수 없으니 그 싫어하는 시설을 들어가겠다는 것이고, 그건 한편 엄마로서의 역할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했다.
나는 이때 사실, 지수에게 어떤 선택권을 주는게 과연 맞는가란 생각도 들었다.
부족하지만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지수에게 엄마의 자격을 빼앗을 권한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과
나중에 아기가 성장하여 "나를 왜 그런 환경에서 그냥 살게 두었냐"는 원망을 듣지는 않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엇갈렸다.
어디에서도 답을 찾지 못한 채 지수와 아기의 약7개월 간의 지역사회 생활은 종지부를 찍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