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면데면한 사이
장애를 가진 20대의 지수(가명)가 어느 정도 본인의 결정에 책임을 질 수 있고, 지어야 하는 건지 헤깔릴 때가 많았다. 나이 50이 넘어선 나도 아직도 뭔가 새로운 일을 할때는 주변의 도움을 받을 때가 많고, 꽤 많은 집안 일은 남편이 알아서 해주고 아직도 어떤 것은 엄마 아빠의 의견을 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모도, 형제도, 가족도 없는 지수가 혼자 독립 가구를 꾸리고 산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전에는 아마 시설에서 자립할때 도움을 준 자립지원센터에서 지수를 많이 도와준 것 같다. 거기 사무국장을 했었다는 선생님이 지수 가까이 살면서 특히 지수를 많이 도와줬다고 한다. 교회에 지수를 데리고 온 것도 그 사무국장님이었다. 하지만 지수가 혼자 살 때와 아이를 키우는 것은 또 다른 국면이었다. 아이의 안전과 양육을 지수가 책임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였고, 뭔가 망망대해에 두 모자가 둥둥 떠있는 것을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일상은 그렇다치고 주거 계약을 하거나 법적인 보호자가 필요할 때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하는 생각에 이르니 "아, 지수에게도 공공후견인이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후견인 제도"란, 나이, 장애, 질병 등으로 스스로 중요한 결정을 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을 대신해 "법적·경제적·생활상의 결정을 도와주는 사람(후견인)"을 법원이 정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치매에 걸려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운 어르신의 후견인을 가족이 맡는다든지, 장애가 있는 경우 가족이나 제3자가 후견인이 되어 각종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등이다.
지수는 장애인이고 가족이 없으므로 지자체나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지수의 공공후견을 요청했을거고 일정 교육을 받고 자격을 갖춘 "공공후견인"이 법원을 통해 연결되어 있을터였다.
하지만 지수를 만나면서 한번도 후견인을 만나본적이 없고 연락 하는 것을 본적도 없었다. 지수도 후견인 얘기를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고만 할 뿐 잘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공공후견인 샘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지수네 집에 있을 때 후견인샘이 집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지수는 후견인 샘을 무척 싫어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후견인 샘은 본인도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였다. 우리나라 발달장애인 공공후견제도는 "한국장애인부모회"에서 공공후견법인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지수와 연결된 분도 장애인을 키우는 부모님이었다.
처음 법원을 통해 지수와 연결된 이후 거의 1년 동안을 지수는 전화도 안받고 문자, 카톡에도 일체 대답을 하지 않고 방문해도 한마디도 안했다고 한다. 그런 지수의 태도에 본인이 도움이 안되는 것 같아 그만두려고 했는데 법인에서도 주변에서도 그냥 해달라고 부탁하여 지금까지 왔다고 한다. 1년이 지나고 나서야 꼭 필요한 말만 조금 하는 정도라고 했다. 어떤 계기가 있어 싫은게 아니라 처음부터 아예 싫어하기로 마음먹은 거랄까? 우리와 만날 때를 생각해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옆에 같이 앉아 지수가 후견인 샘을 대하는 걸 보니 정말 다른 지수를 보는듯 했다.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도 안하고 후견인 샘의 말을 아예 듣지도 않는것 같았다.
특별한 일이 없을 때 한달에 한번씩 방문한다는 후견인 샘은 지금 아이가 태어난 "초특급 특별한 시기"에도 그냥 한달에 한번 방문하고 계셨다. 처음에 나는 "아니 도대체 후견인이란 사람은 뭘하고 있는거지?"란 생각을 혼자 종종 했는데 막상 후견인샘과 지수의 관계를 옆에서 지켜보니 도와줄래도 도와줄수가 없는 관계였다.
그날 후견인 샘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들었는데, 그렇게 지수가 어떤 연락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후견인 샘은 법정 대리인이기 때문에 주거계약을 하거나 경찰서에서 보호자가 와야 할때면 본인에게 연락이 온다고 했다. 그래서 몇번 경찰서 연락을 받으신 적이 있다고. (금전적인 관리는 지수가 직접 한다고 하셨다.)
경찰서 불려간 사건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대부분 남자와의 잠자리 중 생긴 분란, 숙박업소에서 배상해달라고 하는 경우 등으로 주로 야간시간이나 새벽시간대에 연락이 왔고, 지수가 남자를 자주 만나는거 같다는 게 후견인 샘 얘기였다.
정부와 법원에서 시스템이 연결해 준 후견인이 어떻게 가족을 대신할 수 있으랴.
공공후견인 제도는 너무나 필요하고 더욱 활성화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적 시스템만으로는 사적인 삶과 사랑의 영역을 매울 수 없음을 드러내 주는 것 같다. 지수가 도대체 왜, 어떤 이유에서 후견인 샘을 거부하고 밀어내는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좀 더 나았을까.
그나저나 후견인 샘의 얘기를 듣고 나니, 아기를 낳기전의 지수의 야행성 생활이 도대체 어떠했는지 궁금했다. 무엇보다 그렇게 밤에 지수를 불러내고 무책임하게 경찰서까지 들락거리게 한 아기의 아빠는 도대체 누구인지가 더욱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