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고 싶다
임신을 했으니 당연히 사람들은 "아빠가 누구냐"고 물었다. 나도 처음에 그걸 물었고, "모르지."란 대답을 들었고 나도 사람들에게 그렇게 답했다. 아무도 몰랐다. 지수는 입을 꾹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수가 시설에서 나와 주거를 독립하면서 야행 생활을 했고, PC방에서 밤을 새우는 일이 종종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지수는 혼자 살았으니 밤에 언제 어디를 얼마나 자주 나가는지 아무도 몰랐다. 단지, 독립 초기부터 지수를 도와주는 자립센터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오픈채팅방에서 남자를 만나 온 것 같다. 는 얘기를 했다. 후견인 샘의 말과 연결해 보면 야간생활, PC방, 남자 만나기 등의 생활을 해 온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불특정 다수의 남자와의 원나잇 중 누군가의 아기를 임신한 건가? 짐작만 했다.
그 당시 중요한 건 당장 아기를 낳아 키워야 하는 문제였기에 나타나지 않는 아기의 아빠는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궁금해도 소용이 없었다. 지수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으므로.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는 개인적 호기심은 꾹 눌러놓고 있던 참에, 지수에게 빚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빚은 여러 개의 핸드폰 소액결제로 인한 거로 모든 통신사의 핸드폰이 막혀있었다. 빚이 얼마인지 정확히 몰랐으나 500만원? 2,000만원? 지수도 잘 모르는 듯했다.
알고 보니 그 빚은 지수가 쓴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자기 이름으로 핸드폰을 개통해 주고 그놈(들)이 소액결제로 인해 생긴 빚이었다. 임신하기 전에 그 일로 소송도 걸리고 여러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일을 같이 도와주던 자립센터 선생님은 그놈이 아기 아빠가 아닐까 짐작만 했다.
더욱이 그게 다수와의 얕은 관계가 아니라 한 명과의 깊은 관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수네 집 바로 옆에는 편의점이 하나 있다. 편의점 음식으로 식사를 때우기 일쑤인 지수는 시도 때도 없이 그 편의점을 드나들었을 거고, 그 편의점은 수많은 알바가 일하는 곳이 아니라 주인이 상당시간을 일하는 곳이었다. 오전시간대 지수네 집을 방문하던 활동지원샘이 지수와 여러 번 그 편의점을 드나들다가 한번 혼자 갔더니 그 편의점 주인이 아는 척을 하더란다.
"임신한 거 같더니 아기를 낳았나 보네요. 애기 아빠가 그 놈이죠? 그 키 크고 멀쩡한 놈."
편의점 주인의 증언은 이러했는데, 지수는 낮에도 오지만 주로 밤에서 새벽시간대 편의점을 자주 왔다. 혼자 올 때도 있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남자와 함께 왔고 항상 지수가 돈을 냈다. 남자는 키 크고 허우대 좋은 사람으로 장애는 없어 보였다. 편의점을 들렸다가 같이 집으로 가는 것 같았고 꽤 오래 그 남자가 오갔는데, 어느 날 보니 임신을 한 거 같더라. 근데 요즘에는 그 남자를 본 적이 없다.
너무 부글부글 화가 났다. 정보를 엮어보자면 이렇다. 오픈 채팅방으로 지수를 만났다. 성관계도 가지고 집도 드나들며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수 이름으로 핸드폰을 개통하여 돈을 뜯어갔다. 임신한 것을 알고 발을 끊었다.
이 놈을 잡아서 돈도 갚게 하고 양육비도 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라면 최소한 이런 일을 더 하지 못하게 처벌이라도 해야겠다! 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우리 팀은 이 놈을 잡자는 마음으로 한동안 주변에 아는 경찰, 변호사가 총동원되었다. 어떻게 잡아서 어떻게 처벌할까가 우리의 핫이슈였는데, 경찰, 변호사들의 상담은 이러했다. 이게 본인 의사로 인한 핸드폰 개설이고 성관계이기 때문에 장애로 인해 의사결정이 어렵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가해자 처벌에 대한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본인의 협조없이 제3자가 나서서 하는데는 어려움이 많다는 얘기였다.
지수에게 "너에게 돈을 뜯어가서 신용불량으로 만든 그놈을 잡아서 혼내주자." 얘기를 했는데 지수는 뭔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왜 그를 처벌해야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걸까? 지수의 마음이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지수는 동의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말에는 일체 반응을 하지 않았다. 지수는 뭔가 아직 만남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일까?
남의 개인적 연애관계까지 관여할 일은 아니지만, 뭔가 그놈은 꼭 잡아 처벌하고 싶었다. 아는 경찰과 변호사가 아니라 아는 주먹 혹은 어깨를 동원할 일인가. (아는 주먹이 없다는 게 문제) 이렇게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고 다른 곳에서 또 비슷한 일을 벌이고 있는 건 아닌가 천불이 났다.
그즈음 지수의 야행 생활이 다시 시작되며 시설행이 결정되었는데, 아기의 안전도 문제였지만, 우리는 그때 혹시 지수가 다시 임신을 하게 될까 조바심이 났다. 피임을 시켜야 한다는 게 중대한 미션이었는데, 지수는 하기 싫을 때 그러하듯 피임에 대해 반응이 없었다.
"지수야, 혹시 너 둘째를 가질 거니?"라는 질문에 "가져야죠!"라고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진짜 의외의 대답이었다.ㅠ)
피임을 위한 우리 팀의 섬세한 작업이 시작됐다. 피임은 보통 엄마들이 아기 낳고 나면 많이들 하는 거다. 둘째를 가질 때 다시 피임을 풀면(빼면) 된다. 나도 했다. 누구도 했다. 지수네를 도와주기 위해 드나들던 교회 모임의 젊은 엄마들을 모두 섭외하여 당연하다는 듯이 "지수야, 피임했어? 피임해야지~"를 툭툭 던지듯 얘기했다.
1차, 2차, 3차의 밑밥 작업 끝에 지수가 제일 좋아하는 현미가 병원을 예약하고 지수를 꼬셨다. 마치 예방주사 맞듯 당연히 가야 하는 곳처럼. "지수야, 우리 언제 피임하러 가자. 내가 예약했어." 우리의 작업이 제대로 먹혔는지 지수는 순순히 현미를 따라 산부인과를 따라갔다! (진짜 의외의 순간이었다.) 산부인과 의사샘은 지수를 보자마자 상황을 파악하시고 확실하고 부작용 없으며 피임 효과가 긴 루프를 끼워주셨다.
우리 팀은 이때 지수 피임을 기념으로 거나한 회식을 했다. 마음을 졸였던 만큼 안도가 됐고, 걱정했던 만큼 기뻤다. 행여나 그놈이 다시 나타나더라도 임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잡기만 하면 됐다. 나타나기만 해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