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와 주변 사람들
지수(가명)가 우리 교회에 오기 전 지수는 지역의 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IL센터) 사람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 IL센터는 우리 교회와 왕래가 있어 교회 행사 때 참여하거나 공연을 하기도 했었는데 그럴 때 지수는 몇번 우리 교회를 방문했었다. 그 센터분들과는 지수는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지수가 임신을 하고 그 센터의 사무국장이었던 분이 우리 교회로 지수를 데려오면서 지수에 대한 우리 교회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커졌달까.
#우리 팀의 대표이신 목사님
임신한 지수가 교회에 왔을 때, 목사님은 "이 아기는 교회가 키우자."고 말씀하셨다. 교회 사람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교회가 키우자는게 무슨 말이냐. 장애 청년이 아기 키우는게 보통 일이냐, 교회가 어떻게 책임질꺼냐."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나는 사실 그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교회가 라니, 교회에서 누가? 도대체 어떻게? 아기를 키운다는건가?'
그런데 그렇게 목사님 말을 귀담아 듣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한 내가 목사님의 지수네 첫 방문부터 동행하게 되었으니 그 이후 목사님과 나는 수시로 연락을 주고 받게 된다.
우리 교회에 처음 왔을 때 지수는 낯을 많이 가리고 사람들과 잘 얘기하지 않았다. 고집이 세고 방어적이란 느낌을 받았다. 일단 우리 교회로 오기 전에도 임신에 대한 여러 걱정과 우려를 들었을꺼라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기를 낳기 위해 미혼모 시설에 입소하는 것, 아기를 입양시키는 것에 대해서 무조건 싫다고 우겼고 그런 말은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런 지수가 희안하게 목사님 말은 잘 들었고 목사님 질문에는 대답했다. 그건 그때부터 시작하여 그 이후로도 계속 유지됐다. 결국 미혼모 시설로 입소를 하도록 설득한 것도, 그 이후 지역사회에서 살다가 다시 시설로 입소할 때도 모두 목사님의 설득이 있었다. 목사님의 존재 자체가 뭔가 지수에게는 권위와 설득력을 가지는 것 같았다. 우리가 도저히 설명하고 설득해도 안될 때는 목사님이 나섰다. 그럼 대나무처럼 절대 하지 않겠다는 완고함을 보이던 지수의 마음이 어느새 말랑말랑해져있곤 했다.
목사님이 아기의 이름도 지어주셨다. 고집이 센 지수도 흔쾌히 그 이름을 받아들였다. 목사님은 수시로 지수네 집을 방문하셨다. 아기를 낳고 지역사회에서 사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주민센터, 시청, 복지관, 아이돌봄, 장애활동보조 등)이 지수네 집을 방문했는데, 처음 방문하는 중요한 시기에 목사님이 동행한 적이 많았다. 나는 이 교회에 온지 15년이 넘었는데 목사님이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시고 바로 반응하시는건 처음 본 것 같다. 교인 집의 심방을 자주 하지 않는 우리 교회에서 나는 15년동안 딱 한번의 목사님 방문을 받아봤는데 지수네 집은 수시로 방문하셨다. 특별 대우였다.
아기가 돌이 되었을 때 목사님은 아기의 할아버지처럼 같이하셨다. 돌기념 예배를 인도해주시고 목사님, 지수, 아기와 함께 셋이 가족 사진을 찍었다. 그 다음주는 지수가 목사님께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그 해에 목사님은 정년퇴직을 하셨다. 정년퇴직하는 목사님에게 "교회는 퇴직하셔도 지수네 가정 돕는거는 계속하셔야 한다. 목사는 끝이라도 우리 팀 대표직은 유지다." 신신당부를 했다. 그 약속을 지키듯 퇴직 이후에도 목사님과 사모님은 지수가 다시 들어간 시설로 한달에 한번 꼬박 꼬박 방문을 하셨다. 지수네가 먹을 맛있는 반찬을 싸들고 지수와 아기와 한나절 놀아주고 가시는 일을 계속하셨다. 그래서 결국 아직도 목사님은 지수를 돕는 우리 팀 대표다. 나 역시 집이 제주로 이사를 하며 더이상 그 교회를 나가지 못하게 되었지만 지수를 돕는 일을 지속하는 것처럼.
#교회 청년들
지수는 애기 엄마지만 20대의 청년이다. 우리 교회 청년부는 10명 내외의 청년들이 모인다. 지수는 그 모임을 참 좋아했다. 또래들이 있어서 그럴 것이고 청년들 중 훈훈한 남자 청년들이 있어 그럴 것이고 무엇보다 지수를 지수 그대로 받아주는 멤버들과 분위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아기와 함께 교회에 오면서는 아기를 데리고 청년부 모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아기가 있어 모임에 방해가 많이 되겠지만 누구도 싫은 내색도 불편한 기색도 없이 지수와 아기를 받아줬다. 남자 청년 중 하나는 거의 전담으로 아기를 돌보고 늘 아기랑 붙어 있어 마치 아빠 같았다. 청년들이 야외로 나들이를 갈 때면 날씨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지수와 아기의 옷을 교회 재활용가게(교회에서 옷 재활용 가게가 있다.)에서 주섬 주섬 챙기고 아기 가방을 서로 들어주며 지수와 아기를 챙겨서 나들이를 갔다. 아기의 돌잔치때 청년부 회장은 사회를 보고 청년들은 축하공연으로 노래를 불러 주었다. 청년부의 선물은 1년동안 아기와 지수의 사진을 모은 사진첩이었다.
지금도 지수는 청년부 엠티를 갈때면 아기를 어딘가에 맡기고 어떡하면 엠티를 따라갈 수 있을지가 큰 관심사다. 애를 키우는 엄마란 원래 그런건 못하는거다. 라고 나는 얘기하는데, 현미는 어떻게든 아기를 돌봐줄 사람을 찾거나 자기가 돌봐주고 지수를 청년부 엠티에 보내준다. 엄마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며...
지수에게 그렇게 좋은 또래 청년들과의 교류가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오픈채팅으로 만나는 그런 만남만이 또래와의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동네언니들
나, 현미, 시원의 세명 우리팀 외에도 지수를 돕는 교회 여자 멤버들이 많다. 10명 정도가 고정 멤버로 있는데, 갑자기 아무나 낯선 사람이 도와준다고 찾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 세명의 멤버가 동행하여 새로운 사람을 데리고 방문한다. 그 이후에 익숙해 지고 나면 따로도 방문하는 식이다. 그 중 한명은 발달장애 아들을 둔 엄마인데, 그 멤버가 제일 열심이다. 지수가 남같지 않아서 일까. 아들 케어로 바쁜 와중에도 아들과 함께 지수를 돕는 일정에 가장 많이 시간을 내준다.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은 지수네 필요 물품이 떨어질 틈이 없이 아기 물품과 노하우가 전달된다. 어떤 때는 지수네 가보면 아기 물품이 너무 많아 처치가 곤란할 정도일 때도 있다. 그런 교인들의 마음을 아는지라 아기 돌잔치를 할 때 지수와 의논하여 교인들에게 미리 공지를 했다. 선물은 받지 않겠다. 대신 지수가 언젠가 다시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집을 구할 때 필요한 보증금에 보탤 수 있게 현금으로 달라고. 그래서 모인 목돈은 지수의 허락 하에 교회의 여자 성도 모임(여전도회)의 총무가 보관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교회 여전도회 회계는 회비 통장과 지수네 후원금 통장 두개를 관리한다. 언젠가 요긴하게 쓰여질 날까지.
#삼촌들
교회 여자 멤버들에 비해 남자들은 지수네와의 접점을 가질 일이 별로 없다. 단지 애기가 유난히 성인 남자를 좋아하면서 교회에 오면 여러 삼촌들이 돌아가며 아기를 보는 정도랄까.
지수와 아기가 살던 집에 에어컨이 없었다. 추위나 더위를 잘 못느끼는 지수는 혼자 살 때는 괜찮았던 모양이다. 아기가 생기고 나니 요즘 같은 혹독한 여름을 도무지 버텨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 다시 시설로 들어가기로 결정하며 입소할 시설을 알아보던 중이라 에어컨을 설치하기도 망설여지는 시점이었다. 고민 끝에 설치가 쉽다는 창문형 에어컨을 구매하기로 했다. 시설로 이사해도 떼어서 가져가거나 보관할 수 있도록 말이다. 비용이 문제였는데 목사님이 교회에서 후원하겠다고 해주셨고, 창문형 에어컨의 설치가 난감했는데 교회 삼촌들이 나서주었다. 지수네 근처에 사는 남자분들이 나서서 자가 설치가 쉽다고 하지만 도무지 하기 어려웠던 창문형 에어컨을 뚝딱 달아준 것. 남자 세명이 방문하여 에어컨을 설치해주고 완료된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그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아, 교회가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그냥 이런걸 말하는 것인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