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의 변화

흑백에서 칼라로

by 유원선

임신했던 지수(가명)를 만난 지 3년이 지났다. 배 속의 아기가 올 10월에 3돌이 되었다. 그 사이 지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인간관계의 확장

지수는 무심한듯 하다가 훅 들어오는 애정표현이 있고, 시크한듯 하다가 장난기 있는 해맑음이 있다. 이런가 싶으면 저런 면을 보여주는 반전 매력이 있는데, 무엇보다 내가 느끼는 지수의 가장 큰 장점은 솔직함이다. 지수를 도와주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많이 하게 되는데 본인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 지수는 숨기거나 거짓말로 얼버무리기보다는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는 편이다. 오히려 그런 솔직함이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곤 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아기 목욕 시켰니?"라고 물어보면 이런저런 변명 없이 쿨하게 "아뇨"

안 한 건 안 했다고, 한 건 했다고 확실하게 답하기 때문에 오히려 판단하기 쉬웠고, 돌아가지 않고 바로 갈 수 있는 면이 있었다.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솔직해지는 것이 엄청 어려운 일이기에 지수의 그런 부분은 정말 배우고 싶은 면이기도 했다.

이런 매력 때문인지 지수는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는 편이었다. 어려서 성장한 장애인시설에서도 실무자 선생님이 지수를 예뻐했던 것 같다. 지수가 쓴 시를 본 적이 있는데 시설의 선생님이 엄마처럼 지수를 많이 챙겨주셨던 것 같다.

KakaoTalk_20251118_191209261.jpg 시가 너무 훌륭하고도 슬프다.

그 시설에서 자립할 때 지원해 준 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에서도 사무국장님이 특별히 지수를 챙겼고 센터의 많은 분들이 지수를 예뻐했다. 지수가 교회에 오면서 그 자립센터의 몇몇 분들이 같이 교회를 오게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센터의 장애인이동차량을 운전하는 청년은 일요일 지수가 교회에 올 때 지수를 거의 전담으로 픽업해 주다시피 했다. (쉬는 일요일에 자기 개인차량으로 픽업해 줬으니 업무와 전혀 상관없이 자원한 일)

그럼에도 처음 지수를 만났을 때 지수는 사람에 대한 장벽과 경계가 높아 보였다. 당시 임신한 지수를 도와주는 활동보조 샘을 이유 없이 너무 싫어한다거나, 후견인 샘에게도 (앞에서 쓴 것처럼) 철벽을 쳤으니 말이다. 나와 현미의 도움도 처음에 거절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지수가 잘 따르는 목사님과 동행해서 그런지 우리에게는 처음부터 큰 거부감이 없었다. 그렇게 열린 문은 교회의 청년부는 물론, 다양한 여자 교인들 모두에게 활짝 열렸다. 그렇게 지수의 인간관계는 교회를 중심으로 넓어지고 다양해졌다.


#사회성의 성장

그렇게 넓어진 인간관계 속에서 지수의 사회성도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다.

지수는 처음에 우리 팀 멤버들이 지수네 집을 드나들면서 여러 가지를 도와줄 때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 듯 보였다. 뭔가 제3자가 저 멀리서 바라보듯 반응이 없었다. 그럴 때면 지수를 데려온 자립센터 샘이 "지수야, 고맙다고 인사해야지."라는 말을 여러 번 했고, 그러면 지수가 영혼이 1도 없이 "고맙습니다." 인사를 했다. 지수를 도와주고 집에 오면 뒤늦게 지수에게 누가 시킨듯한 고맙다는 인사가 톡으로 오곤 했다.

나는 사회복지 일을 하면서 도움을 줄 때, 도움 받는 사람이 꼭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들 도움 받는 위치에 있고 싶겠는가? 매번 고맙다고 인사해야 한다면 그 관계는 또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일 때도 있고. 매번 고맙다 인사하는 것이 더 불편하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지수가 고마워하지 않는 것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고, 오히려 자꾸 지수에게 고맙다는 말을 시키는 샘이 더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가끔 어떤 분들은 지수가 도움을 받고도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 거 같다는 말을 하곤 했다. 지수가 어려서부터 복지시설에서 성장하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걸 당연시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냥 사회성이 떨어져 그런 것인지. 그 당시 나에게 그런 것은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다. 지수가 고마워하든, 안 하든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른 큰 문제들이 너무 많았으므로.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지수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고맙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지수와 병원이나 경찰서 등을 동행한 후에 집에 가려고 돌아서면 지수가

"집사님!" 나를 불러 세운다. "응?"하고 돌아서면

"오늘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조심해서 가세요."라고 또박또박 얘기한다. 지수를 돕던 우리 팀에서도 이게 이슈가 되었다. "지수가 오늘 고맙다고 했어요." "지수가 저보고 수고했데요."

지수는 언제부턴가 자기를 도와주는 우리 팀과 교회 멤버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전혀 기대하지 않다가 훅 들어오는 이런 반응은 감동을 주었다.

그런 지수의 반응은 점차 다양한 부분으로 늘어나서 예전엔 저 멀리 제3자처럼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자기 일처럼 반응한달까. 심지어 우리에게 자기도 뭔가 해주고 싶어 한다거나 우리의 개인사에 관심을 가진다거나 궁금해했다. 그렇게 우리와의 관계가 일방이 아닌 쌍방이 되었듯 지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사회성이 훌쩍 좋아졌다. 사람들과 좀 더 소통할 줄 알게 되었다고 할까.


우리 팀의 현미와 지수는 생일이 같다. 그날 둘이 서로 생일을 챙겨주는데, 지수도 현미의 생일을 꼭 챙겨준다. 그것도 아주 스페셜하게. 한 번은 그날 미역국을 끓이고 제육볶음, 잡채를 해서 퀵 서비스로 현미네 집으로 보내줬다고 한다. 카드와 함께. 그걸 받고 현미는 얼마나 놀랐을까. 사진을 본 나도 놀랐으니 말이다. 이런 감동적인 생일 선물을 받아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현미에게 고마워하는 지수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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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교회에서 백일장을 하는 날이었다. 발달장애 아들을 둔 교회 멤버가 지수네를 많이 챙겨주는데 지수가 그 엄마보고 백일장 나가라고 하면서 자기가 직접 등록비를 내고 신청을 해줬단다. 그래서 얼떨결에 백일장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입상을 해서 문화상품권을 받게 된 것. 지수가 자기 일처럼 기뻐했고, 그 엄마가 지수덕에 탄 것이니 문화상품권을 지수에게 줬단다. 지수가 그걸 받고 너무 좋아하더니, 집에 갈 때 보니 문화상품권을 다시 그 엄마 가방에 말없이 넣어놨더란다. 아니, 이런 센스라니!!!


#지수의 표정

아기가 돌이 되었을 즈음, 지수를 만난 지 일 년이 좀 넘어가자 지수는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 표정의 변화가 얼마나 드라마틱한지 마치 흑백 사진이 칼라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핏기 없이 하얗고 무표정하던 지수의 얼굴에는 다양한 표정이 보였고, 가끔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변하기도 했다.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푹 숙여져 있던 얼굴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둘레둘레 주변을 살피곤 했다. 가끔 큰 소리로 껄껄껄 웃어젖혔고 무언가에 큰 목소리로 대답하기도 했다.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지수가 마치 다른 사람 같다고 그 변화를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우리 교회가, 특별히 우리 팀이 지수를 가까이서 도와줘서 이러한 지수의 변화와 성장이 가능했다고 칭찬했다. 내가 보기에도 지수의 변화는 놀라웠다. 물론 우리 팀의 대표님(목사님)을 비롯하여 우리들의 노력과 애정, 교회 청년들, 교회 여러 멤버들의 다방면의 지원과 사랑이 이런 지수의 변화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그런데 나는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지수에게 아기가 생겨서 변한 게 아닐까 한다.

가족이 없었던 지수에게 혈연으로 엮인 아기가, 가족이 생긴 것이다. 자기만 믿고 의지하며 자기만 바라보고 방긋방긋 웃는 존재 말이다. 그런 특별한 애착의 경험이 지수를 변화하게 만든 건 아닐까. 더욱이 아기로 인해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었고 아기를 위해서라도 지수의 생활 전반이 좋아져야 했고, 또 좋아졌으니 말이다. 지수의 삶은 아기가 없었던 이전과 아기가 생긴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은 흑백. 지금은 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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