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이웃

지수와의 시간을 뒤돌아보며

by 유원선

오랫동안 사회복지사로 일해오면서 나는 수많은 사회복지사를 만났다. 업무로 만나는 사람은 사회복지사가 아닌 경우가 드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수(가명)를 개인적으로 도와주게 되면서 만나는 사회복지사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이전에 만났던 사회복지사들은 나도 사회복지사 입장에서 업무 파트너로 만나는 관계였다면, 지수를 도와주면서 만난 사회복지사들은 나를 클라이언트의 보호자(혹은 지인)로 대하니 그 관계 설정이 완전히 달랐다.(내가 사회복지사임을 밝혀도 마찬가지다.)


#사회복지사가 고마운 사회복지사

나는 사회복지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나에게 "너무 고맙다"고 하는 인사가 뻘쭘할 때가 많았다. 왜냐하면 그건 나의 선의나 호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나의 업무"이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연결하거나 지원한 자원들은 나의 개인적인 자원이 아니라 정부 혹은 후원자의 자원을 연결할 뿐이었다. 그런 "나의 업무"가 누군가를 돕는 일이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이 참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내가 인사를 받아야 할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나도 도움을 받는 입장이 되고 보니 정말 사회복지사들이 고마웠다.

사회복지사가 자신의 업무로 하는 일이고 자신의 주머니를 여는 것이 아니지만 동일한 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큰 차이가 났다.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자원을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작은 차이도 큰 진동으로 느껴졌고, 사회복지사의 소소한 태도나 흘리는 말 한마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됐다.

책임지지 않으려고 흘리는 "아, 그건 잘 안 되는 일인데, 그게 쉽지 않은데..." 이런 말들은 예민하게 귀에 와서 꽂혔다.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려고 더 알아보고 한번 더 찾아오는 복지사는 통화할 때 벌써 에너지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렇다. 사회복지사는 그렇게 중요하고 귀한 직책이었던 것이다. 내 호주머니를 여는 것이 아니라도 자원을 찾아서 연결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어렵고 힘들어 절실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체감하게 된 것이다.


#선한 이웃

나는 사회복지 중에서도 "정책"을 전공했는데 개별적인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니라 큰 틀에서의 사회복지 정책을 살피고 공부하는 것이다. 한국의 사회복지 정책은 사실 찾아보면 "다 있다." 웬만한 좋은 정책이라 하는 것은 다 만들어져 있다. 정책이 없어서 문제보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진짜 문제다. 실제 현장에서 적용하려고 보면 까다로운 조건들이 붙어서 해당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무연고자, 장애인에 애기 엄마인 지수는 정책의 0순위 대상자이다. 어떤 정책도 지수의 상황을 비껴갈 수는 없다. 그렇기에 만들어져 있는 모든 정책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경제적 어려움이 없었고, 많은 물품이 집에 늘 쌓여있었으며 부지런히 신청하면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 다양한 서비스들을 연계하면서 아무리 완벽한 정책이라고 해도 정책으로만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다. 지역사회 안에서의 혹은 다양한 관계에서의 돌봄과 연결망이 있어야 지수와 아이는 한걸음 내딛을 수 있었다.

아무리 서비스를 주려고 해도 전화를 받지 않는 지수를 대신해서 전화를 받고 지수와 소통해 주는 역할이 필요했고, 병원의 아무리 좋은 치료를 예약해 놔도 챙겨서 알려주고 병원을 동행해 주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아이가 어디가 불편한지, 발달이 잘 되고 있는지 매의 눈으로 관찰해 주는 어린이집 원장님과 선생님의 수고로 아이는 계속 다양한 치료를 받고 연령에 맞는 발달을 쫓아갈 수 있었다. 수시로 방문하여 집을 치워주고 치우라고 독려하고 냉장고를 정리하고 새로운 음식을 채워주는 손길들로 모자가 쓰레기 집에서 사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긴 명절연휴가 시작되면 서비스의 공백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방문에 안전히 그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지수네 가정을 통해서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조금씩 손길과 마음을 더해주고 자꾸만 "더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들은 어디에 이렇게 따뜻하고도 선한 이웃의 마음을 숨기고 살고 있었던 걸까?


#나는 왜

나 역시 그러한 선한 이웃 중 한 명이 되었다. 얼떨결에 지수를 돕는 일에 가장 앞에 서게 되었다. 흔쾌한 마음으로 시작하지 않았으나 어느 순간 그냥 '이건 내 일이다.' 생각하게 되었다. 대단한 봉사의 마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회복지사로서의 사명감이 발동한 건 더욱이 아니다. 지수가 너무 의지할 곳이 없어서 '나 몰라라 할 수 없다.'는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다. 그리고는 함께 하는 동생들이 있어서 그냥 어느새 돌아보니 여기까지 왔다. 아기를 너무 걱정하는 동생들의 마음이 기특하고 어떤 때는 신기해서 그들의 걱정에 대안을 같이 고민하다 여기까지 왔다.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에 할머니와 어렵게 살고 있는 지안(아이유)이가 이런 말을 한다.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도와준다고 찾아오면 4번을 못 넘긴다고. 나 역시 4번 안에 그만둘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하며 우리 집 애들 키우기도 벅차다고. 지수와 함께 교회 청년부 활동을 하는 우리 아들은 나에게 "엄마, 한두 번 할 거면 안 하는 게 낫지 않아?"라고 조심스레 물었다. "한두 번 하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라고 대답했지만 사실은 그 말에 대한 확신이 나도 없었다. 하지만 한두 번이 열 번을 넘기고,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같이 하는 일이라 가능했다.


#나는 모르겠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평생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왔다. 나름 하나님과 가깝다고 생각하고, 힘들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의지하는 신앙인이다. 그런데 나는 신앙인으로서 지수네 모자를 도우며 새로운 차원의 하나님을 만났다. 사회복지 전문가라고 하는 나의 경력도, 나의 자원과 정보도, 나의 노력도 그런 것들은 큰 의미가 없었다.

진짜 바닥에서 아무런 대안이 없을 때 더 강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아, 지인짜 이건 아니라고 지수가 아이를 키우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수가 아기를 키우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도울 수밖에 없었다.

꼭 입양을 보내려고 했는데 아기가 아파서 입양을 보내지 못했다.

여기에, 아기까지 아프니 어쩔 건가요.

아무런 대안도 해결책도 떠오르지 않았는데

아기는 사람들의 기도와 돌봄으로 잘 성장하고 있다.

지수네 가정을 돕는 일은

매번 '어떻게 해야되겠다'고 하는 계획도 대안도 없는 상태를 맞았다.

그런데 지난 3년의 시간들을 뒤돌아 보니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고

지수의 변화가 있었고

아이의 성장이 있었다.

사람의 생각과 계획과 능력 밖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


앞으로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어떤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런 계획도 대안도 들지 않는다.

내년엔 지수네 모자가 한부모지원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 자리 잡아야 한다.

이 막막함 앞에,

나는 모르겠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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