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5주 차 공군 보급병의 일기
비가 세차게 오던 날 진주 공군훈련소에 발을 들였던 것이 엊그제 같은 데 어느덧 군인의 신분으로 살아간 지 100일이 다 되어 간다. 군대라는 집단에 들어와 살아가며 느낀 것들이 참 많다.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성격의 집단이고 새로운 사람들, 상황들에 둘러싸인 곳인 만큼 그런 것이 당연하다. 그렇게 살아가며 깨달은 것 중 하나는 ‘하늘은 생각보다 내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7월 중순이라는 시기에 걸맞게 숨만 쉬어도 피곤했고 그 숨조차 내쉬기 힘들었던 너무나도 무더운 하루였다. 다행히도 소반의 업무가 많지 않았기에 적당히 사무실에 앉아서 시간을 녹일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시간뿐만 아니라 내 몸도 녹여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이 비극은 ‘코로나 지원반(코지반)’이라는 근무에서 비롯되었다. 이제는 우리 삶에서 빼고 싶어도 뺄 수 없는 하나의 단어, ‘코로나’. 그 바이러스가 대한민국 군대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대부분이 알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활동들이 제한적으로 변해가고 있고 그 변화의 바람은 군대도 피해 갈 수 없었다. 두꺼운 마스크를 쓰고 훈련의 강도를 낮추고 야외활동은 최소화되었다. 이런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지만 가장 큰 변화는 군인들의 유일한 빛인 ‘휴가’에서 나타났다. 한때는 전 장병의 휴가가 제한되기도 했었고 요즈음에는 소수만이 휴가를 나가고 있다. 그리고 휴가 후 복귀자들은 PCR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2주 간의 격리기간을 거친다. 이 격리자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코지반이다. 이들의 원활한 식사를 위해 병사식당에서 도시락을 싸고 격리 생활관에 이를 배달해주는 것이 이들이 할 일이다.
코지반 근무를 하게 되는 날이면 동기들보다 일찍 일어나 6시까지 병사식당으로 향하게 된다. 그곳에서 격리자들을 위한 아침 도시락을 싸고 배달한다. 똑같은 업무를 점심, 저녁에도 하게 된다. 별 것 아닌 근무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애로사항이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해당 근무를 위해서는 하루 3번 병사식당으로 향해야 한다. 내가 근무하는 곳과 병사식당은 걸어서 12분 정도 거리인데 이 날 최고 기온은 무려 35도였다. 이곳이 한국이 맞는지 의심하게 만드는 기온과 빠르게 끝나버린 장마에 아스팔트 바닥은 식을 줄 모르고 달아올랐다. 너무 더워서 야외훈련도 제한할 정도인 날에 길바닥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나의 눈앞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져 갔다. (심지어 이 근무는 가점도 0.5점밖에 안 준다.)
그냥 단순히 덥고 피곤하기만 했던 날이라면 이 글을 쓰기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근데 이 사람들이! 6시, 10시, 4시에 병사식당으로 오게 해 놓고서 2시 반에도 격리 생활관을 청소하러 오라는 것이다! 이 날 우리 소반에 출근한 병사는 3명으로 병사 1명이 감당해야 할 업무가 굉장히 많았다. 본래 업무만 하기에도 바쁜데 속 편하게 누워 있을 격리자들 때문에 업무가 가중된다고 생각하니 장이 꼬이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약간은 불만 가득한 마음을 안고 소반 업무를 열심히 해나가다 보니 어느덧 2시 반이 지나 있었다. 업무가 끝남과 동시에 집결장소로 달려갔으나 약속된 시간은 이미 지나갔고 격리 생활관으로 향하는 차는 나를 두고 이미 떠나버렸다. 허탈한 마음을 안고 다시 사무실로 걸어 돌아왔다. 복잡한 생각은 비는 시간에 나를 찾아온다. 왜 하필 사람도 없는 날에 코지반 근무까지 있는 건지. 안 그래도 팍팍한 일정에 왜 청소까지 더해지는 건지. 하늘은 정말 이렇게까지 내 편이 아니어야 하는지... 쓸데없는 생각들로 나를 깎아내릴 때쯤 며칠 전 책에서 읽은 문구가 떠올랐다.
“바늘에 찔린 만큼만 아파하자.”
- 기록의 쓸모 중
이미 벌어진 일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지 말자. 다시 되돌릴 수 없고 그 순간의 나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니까. 이렇게 나 자신을 다독일 때쯤 두 번째 바늘에 찔리게 되었다. 운영과에서 나를 찾는 전화가 온 것이다.
“xx대대 xxx 일병 맞나요?”
“네. 맞습니다.”
“오늘 2시 반에 코로나 지원반 근무 안 나오셨죠?”
“예.. 소반 업무가 끝내고 바로 달려갔는데 10분 정도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소반의 일원으로서의 내 역할이 중요한 만큼 코로나 지원반으로서의 내 역할도 중요했다. 애석하게도 내 몸은 한 개뿐이라 두 개의 역할을 완수해내지 못했지만 내 몸을 두 군데에서 원했던 순간을 피할 수 없었다. 수행하지 못한 한 개의 역할은 감점을 받는 것으로 대신하게 되었다. 대신한다는 표현을 나의 잘못을 없는 일로 만들어준다는 뜻으로 쓴 것은 아니다. 내가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벌이 그것일 뿐이었다.
주사 두 방을 맞고 아린 팔을 문지르며 마지막 저녁 코지반 근무를 수행하러 갔다. 주사는 맞는 순간만큼은 아프지만 결국 나의 건강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가. 다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웃으며 격리자들을 위한 도시락을 싸나갔다. 그렇게 코지반으로서의 역할을 마무리하고 소반의 일원으로서의 역할까지 마무리하러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퇴근 중이던 선임 분과 만났다.
“너 지금 (코지반 근무) 끝난 거야?”
“옙.. 오늘 좀 오래 걸렸습니다.”
“사무실 안 들리고 바로 퇴근해도 돼. 들어가서 쉬어.”
“아.. 그런데 제가 가방을 두고 와서.. 그냥 들렀다 오겠습니다.”
그렇게 퇴근시간이 지난 후에 사무실로 향해 걸어갔다. 사무실에서는 반장님과 간부님이 고생했다고 격려해주셨지만 몸 구석구석에 쌓일 대로 쌓인 피로는 씻을 수 없었다. 매운 것으로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씻어 내리기 위해 소반 창고에 있는 사천 짜파게티 컵라면도 들고 생활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아까 전 자전거 타고 퇴근하신 그 선임 분을 다시 만났다. 분명 이미 퇴근하신 선임 분인데 왜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났던 것일까.
“가방 이리 줘.”
“잘 못 들었습니다..?”
“아까 퇴근할 때 너 가방도 들고 갈 걸 그랬다. 내가 너 방에 갖다 줄게.”
분명 하늘은 생각보다 내 편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고난을 주기도 혼자서는 헤쳐나가기 힘든 구렁텅이에 빠트리기도 한다. 그런데 또 마냥 나를 외면하기만 하지도 않는다. 너무 힘들고 피곤하고 혼자만 있는 것 같던 순간의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그 선임 분처럼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내 가방을 앞으로 메고 자전거를 타며 퇴근했던 선임 분의 뒷모습이 잊히지가 않는다. 가방을 앞뒤로 메고 계셔서 살짝 비틀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주저앉고 싶은 순간만 가득했던 하루에 내게 내밀어진 손 그리고 그런 나의 감성을 자극한 아련한 주황빛 하늘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또 다음 날의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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