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4주 차 공군 보급병의 일기
근무 4주 차에 돌입한 만큼 슬슬 내가 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1년 6개월 동안 하게 될...) ‘일’이 꽤나 익숙해졌다. 이 정도면 이 비행단의 창고는 내 손안에 있다고 해도 될 정도이다(?). 그런데 아무리 편안한 사람들, 안정적인 환경들로 가득한 곳일지라도 살다 보면 나의 마음을 쿡쿡 찌르는 것이 하나쯤은 생기지 않는가. 익숙해지려 해도 익숙해지지 않고 꾸준하게 나의 짜증을 돋우는 것. 그럼에도 내 생활 반경 내에서 멀어지지 않는 것.
바로 오늘 소개할 주인공. ‘거미줄’이다.
조금 거창한 서문으로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별 것 아닌 주제가 나와서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이 글을 쓰기 전에 거미줄에 꽂혀버려서 어쩔 수 없다. 거미줄은 항상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나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정확하게 말하면 예상하고 싶지 않은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사무실이나 창고의 구석진 곳, 관리가 오랫동안 되지 않은 풀숲 더미. 이 정도는 애교에 불과하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내 얼굴에서 느껴지는 묘한 점성을 가진 얇은 실의 촉감. 진짜로 그렇게 급격하게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것이 없다. 앞서 말했던 묘한 점성 때문에 뜯어내려 해도 잘 뜯어지지도 않는다. 손을 가져다 대어 얼굴에서 벗겨내더라도 다시 손에 엉킬 뿐. 이렇게 거미줄은 안 그래도 더운 날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피곤한 나에게 서프라이즈 스트레스를 전달해주는 존재이다.
이런 거미줄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을 한 책에서 읽었다. <테드, 미래를 보는 눈>에서는 49개의 테드 강연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 ‘셰릴 하야시(Cheryl Hayashi)’의 강연에서 상상치도 못한 거미줄의 활용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우리 생활 속 많은 물건들의 기원을 자연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루 이틀에 한 번씩은 꼭 찾게 되는(다들 그러길 바란다) 대변기의 외형은 파리지옥에서 유래되었고 ‘찍찍이’라고 흔히 불리는 벨크로는 도꼬마리라는 열매에서 유래되었다. 사람들은 거미줄 또한 이렇게 활용하고자 하였다. 거미줄은 아주 가느다란 데에 비해 뛰어난 유연성과 내구성을 자랑한다. 그 정도는 돼야 잘 걸어 다니는 사람 얼굴에 착 달라붙어서 화를 돋울 수 있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거미줄의 이런 특성을 이용하여 방탄복과 같은 탄력성이 중요한 제품들을 만들기를 시도했었다. 안타깝게도 거미들은 공장의 기계가 아니라서 거미줄의 생산속도가 몹시 느렸고 효율적인 거미 양식 또한 환경적인 이유에서 불가능했다. 현재는 이를 대체하여 유전자 변형 누에를 사용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거미줄을 생산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누에를 이용하여 인공 거미줄을 생산하려고 시도할 정도라니 거미줄의 능력은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이다.
이 글을 접하고 거미줄에 대해 찾아보며 새삼 거미줄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굉장히 쓸모없고 골칫거리로만 느껴졌던 거미줄이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물적 자원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 세상에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지만 강철보다 강도가 높고 나일론보다 신축성이 뛰어나다고 평가받을 정도의 소재라니.
군대에 와서 느끼는 좋은 점 중 하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 말이다. 학교를 다닐 때는 동아리, 교외활동 등을 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주로 나와 같은 목적을 가졌거나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있어서 호의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다르다. 많이들 ‘끌려왔다’라고 표현할 만큼 그저 시간이 빨리 흐르길 바랄 뿐이지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은 없는 사람들도 많다. 자신의 이득을 조금이라도 더 얻고자 아무렇지 않게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도 있고, 더 낮은 계급에 속한 사람을 자신의 장난감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지금 나의 시각에서는 정말 쓸모없어 보이는 저 사람도 어딘가에서는 누군가에게는 정말 소중하고 필요한 사람일 수 있겠지. 나에게는 거미줄이 그저 장애물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올 한 올 소중히 다루는 보석 같은 존재인 것처럼.
그렇다면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이 또한 거미줄을 대하는 방식과 같다. 치워야 한다. 군대에서든 사회에서든 상대의 입장에 공감하고 배려해줄 줄 아는 태도는 필수적이지만 상대에 과몰입해서는 안 된다. 나를 힘들게 하고 성가시게 하는 것들은 무시하거나 치워버리자. 누구나 본인에게 적합한 자리가 있겠지만 그곳이 내 옆이 아니라면 필요 이상의 힘을 쏟지는 말자.
* 커버 이미지 출처 : Pixabay
* 파리지옥 이미지 출처 : 페이스북 다큐프라임
* 도꼬마리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도꼬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