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3주 차 공군 보급병의 일기
내가 정말 어렸을 때, 하늘이 그려진 천장을 본 적이 있다. 보통의 평평한 천장이 아닌 둥그런 돔 형태의 천장. 한눈에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넓은 그 천장에는 하늘이 그려져 있었다. 하얀 구름, 옅은 파랑의 하늘 그리고 적절한 명암까지.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은 촌스러웠던 그 하늘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하늘과 베이지색 기둥이 나를 감쌈으로써 어느 동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곳은 백화점 가장 높은 층의 천장이었을 것이다. 그날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영화를 보러 갔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등 친척들과 함께 갔었다. 분명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함박스테이크 따위의 맛있는 음식도 먹었던 것 같은데 그 꿈만 같던 하늘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실 나를 동화 속으로 초대했던 그 하늘도 어제까지는 내 기억 속 한 켠에 숨겨져 있었다.
그런데 오늘의 하늘이, 그날의 하늘을 갑자기 떠오르게 했다.
지금 나는 군대에서 병역의 의무를 이행 중이다. 대한민국 공군의 한 명으로서 비행단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하루도 빠짐없이 대한민국의 하늘을 누비는 민항기, 전투기들을 마주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게 되었다. 사회에 있을 때에도 예쁜 하늘을 찍고 친구들과 공유하는 등의 활동을 즐겨했지만 이곳에 오고 나니 반강제적으로 하늘을 보는 일이 더 많아졌다.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을 내지르며 자신을 봐달라고 소리치는 전투기들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무거운 발을 이끌고 출근할 때, 창고에서 나와 시원한 바람을 맞을 때, 저물어가는 해와 함께 오늘 하루도 수고한 나를 다독일 때 나는 이 비행단의 다양한 하늘을 봐왔다. 그런데 오늘처럼 순간 나를 바보로 만들어 버린 하늘은 처음이었다. 그 하늘은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해가 지기 전의 아련한 주황빛 하늘도 여러 대의 전투기가 가로지르는 웅장한 하늘도 아니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듯했지만 갑작스레 내 발길을 멈추게 했던 그 넓고 황홀했던 풍경을, 그 순간을 한 번 서술해보려고 한다.
여름이 찾아왔다고 소리라도 치듯이 지독하게 거센 소나기가 내린 뒤의 하늘이었다. 아직 바닥에는 물이 고여 있어 딱딱한 군화와 맞닿은 풀숲이 첨벙거리고 잔풀들이 군화 뒷굽에 달라붙을 정도로 거센 소나기였다. 그만큼 하늘은 하얀 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빽빽한 하늘에 누가 구멍이라도 뚫어놓은 듯이 한 군데에서만 파아란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구멍 사이로는 맑은 하늘을 가져다준 해님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햇빛은 그렇게 작은 구멍을 통해 퍼져 나와 구름에 명암을 수놓았다. 구름의 두께가 느껴지도록 선명하고 아름다운 명암이었다. 오후 5시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쨍한 하양으로 가득 찬 여름날의 하늘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내 안에서 묘한 감정이 솟구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이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록 어렸던 그날의 아이처럼 동화 속에 빨려 들어온 듯한 기분을 느꼈다.
도대체 왜 그런 감정이 순간 나를 감싼 걸까?
나는 그 이유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환경, 군대에서 찾아보려 한다. 사회에서의 나는 자기 주관이 강했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곧바로 시도했다. 나의 좌우명이 “법의 범위를 넘어가지 않는 모든 경험은 나에게 가르침을 준다.”일 정도이니... 그러나 이곳에서의 나는 간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나의 주관은 한 풀 꺾어두는 경우가 많다. 마치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연기하는 어떤 이야기 속의 배역이 된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나는 군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런 순간들을 아직까지 완벽하게 믿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군대에서의 나를 이전의 나와 완전히 독립적인 다른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에서의 나날들이 흐려짐과 동시에 이곳에서의 삶도 제대로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그런 애매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하늘이 그려진 천장과 마주했던 어린 시절의 나도 그러했던 것 같다. 낯선 곳에서 엄마 손을 꼭 붙잡아야 했을 만큼 여렸고 무슨 영화를 봤는지 몰랐던 만큼 의존적이었다. 초등학교에도 가기 전인만큼 나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엄마의 손을 떠나 온전한 나라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그 중간에 서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무언가 새로운 상황에 던져지고 힘겹게 적응해나갈 때 그 하늘과 마주했던 것 같다. 내가 작게만 느껴지고 세상이 나를 위협하는 것 같을 때. 누군가 나의 손을 잡고 끌어당겨 주기만을 바랄 때. 너무 혼란스러워서 도망가고만 싶을 때. 하얀 뭉게구름으로 가득한 동화 속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가 흘러가다가 해피 엔딩을 맞이할 그 순간만을 기다리고 싶을 때. 그리고 그 엔딩을 맞이하고 나면 더 이상 그 하늘이 보이지 않았던 듯하다.
이런 여러 맥락들이 겹쳐지면서 내 머릿속 구석에 있던 기억이 튀어나온 것은 아닐까. 그것이 맞다면 사람의 뇌는 참 신기한 것 같다.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잊혀 있던 그날의 하늘을 갑자기 나의 눈앞에 꺼내 주다니 말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가며 혼란스러워하는 나는 아주 먼 옛날의 나처럼 하늘 앞에 얼어붙었다. 또다시 이 하늘이 나를 찾아온다면 그때는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도 이겨낼 것이라고. 항상 해피엔딩을 만들어내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커버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