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부수는 사람들, 토스팀 이야기
p23
언제부턴가 이태양은 이승건을 '대장'이라 불렀다. 처음 약속했던 아르바이트 기간 두 달이 끝나갈 무렵, 이태양은 ㄴ네이버 입사 포기를 선언했다.
"내 길을 찾은 것 같아, 대장. 나는 대장이랑 창업의 길을 갈래."
이름처럼 무한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이태양을 이승건은 와락 껴안았다.
> 두 사람 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이고, 이태양도 네이버 입사가 확정된 앞날이 창창한 개발자였다. 쥐뿔도 없는 상태에서 그런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승건의 매력, 카리스마는 무엇이었을까? 똑똑한 사람이 더 잘 알아볼 수 있는 그의 똑똑함 같은 것이 있었겠지 싶다. 쥐뿔도 없던 제갈량과 쥐뿔도 없던 유비가 서로를 알아봤듯 말이다. 사실 쥐뿔도 없을 때 가능성을 보여주고, 그것을 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p34
그럼에도 간편 송금 서비스의 프로토타입조차 만들어보지 못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해결책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우리가 감히 어떻게?'라는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할 정도면, 은행도 알고 있겠지.'
> 그런 말이 있다. 내가 방에서 혼자 "이 아이디어 좋은데?"라고 생각이 되는 사업 아이템이 있다면, 그 아이템은 이미 세상 어디에선가 생각되어 본 적 있는 아이템이고, 누군가는 하고 있거나, 해봤다가 모종의 이유로 실패했을 만큼 안 되는 이유가 있다는 말. 어설픈 아이디어 만으로 사업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라는 교훈이 있는 말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행동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도 많다. 누군가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만뒀지만, 누군가는 행동한다. 그 행동하는 사람이 나라면 어떤 눈부신 성취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또는 이번에 실패로 돌아가도, 행동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언젠가는 기회를 잡는다. 아직 세상이 못 했다고 해서 내가 못 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송금이 불편하다고 생각했지만, 행동하지 않았다. 토스의 이승건도 처음에는 "안 되는 이유가 있겠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행하는 팀은 토스뿐이었다.
p43
정부기관이 서비스를 막을 가능성은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금융 분야는 규제가 촘촘하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경험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전혀 실체를 몰랐다. 은행이 아니면 송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법 규정은 없었다. CMS망을 자동이체가 아닌 송금에 사용하면 안 된다는 조항도 없었다. 하지만 '해도 된다'는 법도 없었다.
> 내가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작은 시장참여자일 때와 내 행동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시장이 반응할 때는 완전히 다르다. 규제 영역을 아이템으로 하는 스타트업은 당연히 이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이용자가 입소문을 타고 아이템을 이용할 때와, 업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때 정부의 반응이 달라진다. 특히 우리나라 정부는 법규와 상관없는 다양한 행정지도 수단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안다. 진짜로 세상을 바꿀 만큼 영향력을 키우고 싶으면, 영향력이 커진 후의 세상의 반응까지 미리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p68
일면식도 없는 한 은행 임원은 이승건에게 대뜸 "당신이 얼마나 무모하고 말도 안 되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지 아느냐. 시장을 교란시키기 전에 빨리 포기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고, 또 다른 은행의 디지털 담당 부장은 선심 쓰듯 택시를 잡아주며 "금융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라이선스 없이 성공하지 못했다.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모든 혁신은 저항에 부딪힌다. 그러기에 혁신은 의미 있다. 내가 혁신의 주체는 되지 못할지라도, 도전하는 다른 사람을 보며 기득권의 논리에 빠져 "안 될 거야"라고 단언하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나도 나름 도전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안 될 거야"라는 반응이 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반응을 마주할 때면 오히려 오기가 생기고, 결과로 내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상상을 하며 신이 나기까지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도 성과가 쌓이고 기득권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요새는 "너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말도 꽤 듣는다. 나의 목표가 너무 작은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겠다. 늘 도전하는 마음을 가지고 싶다.
p73
인수한 마케팅 회사의 구성원은 모두 8명이었는데, 그중 5명은 토스팀 합류를 거절했다. 금융이나 핀테크라는 분야는 생소하다며 더 잘 나가는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기도 했다. CMO를 맡은 피인수 회사 대표는 좁은 사무실을 쪼개어 개인 집무실로 썼다. 토스팀에서 자기 방을 요구한 사람은 그전에도 그 후로도 없었다. 그러더니 '토스는 송금박에 안 되고 돈도 못 버는 XX앱'이라는 말을 내뱉어 토스팀원의 마음을 할퀴어놓고, 석 달 만에 회사를 떠났다.
> 인생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늘 좋은 선택만 할 수는 없고, 때로는 인생의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로켓에 탈 기회를 놓친 이들을 바보라고 욕할 수 만은 없다. 기회의 순간에는 그것이 로켓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늘 기회를 보는 안목을 기르며 경건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찰나의 순간에 다가오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로켓을 탈 기회가 있을 때는 망설이지 말고 타야 한다.
p83
한동안 송호진은 인터파크, 지그재그, 티몬 등 온라인 쇼핑몰 위주로 결제 가맹점을 유치할 전략을 찾느라 분주했다. 그러다 석 달쯤 되었을 무렵 그는 이승건에게 뜻밖의 요청을 했다. 회사 전체의 재무추정을 자신이 해봐도 되겠냐는 것이었다. 그러고 3주 만에 송호진은 그간 토스팀이 품어온 꿈을 부숴버렸다. 그는 당장의 결제 확대가 토스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송호진은 이승건에게 엑셀 파일을 하나 건넸다.
> 토스의 매력을 발견하고 자발적으로 찾아온 서른 살 청년 송호진은, 토스가 생각하고 있던 결제 시장 진출을 통한 수익확보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언제, 어떻게, 어떤 역할로 합류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전체를 보고 현상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 내가 늘 목표하는 모습이다. 나는 이렇게 해낼 수 있었을까?
p110
그 투자는 결국 어그러졌다. 햇빛 쨍한 샌프란시스코의 노천카페에 앉아 이승건은 눈물은 줄줄 흘렸다. 창업할 때만 해도 영어가 걸림돌이 될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 세계공용어인 영어를 익힌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기회를 잡을 준비'다. 늘 준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p133
배너 광고로는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줄 수 없으리라는 팀원들의 예측은 섣불렀다. 대출받을 수 있는 금융사의 목록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대출맞춤추천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 돈이 필요하지만 어디서 대출을 받아야 할지,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 조차 몰랐던 사용자들이 있었고, 그들이 토스를 찾았다.
> 배너 광고는 쿨 하지 못하다. 단순히 돈을 버는 앱을 만드는 것보다 고객만족을 통해 혁신을 이루겠다는 토스팀 입장에서 처음에 대출 배너광고를 반대하는 것은 오히려 합당하게까지 보인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광고는 돈을 벌기 위해 고객만족을 포기하는 행위만은 아니다. 광고가 소비자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결과를 쉽게 예단하지 말고 유연하게 사고해야 한다.
p146
다른 초기 팀원들에게 주어졌던 도전은 이승건에게도 매 순간 찾아왔다. 비바리퍼블리카의 창업자로 그동안 팀을 잘 이끌어왔다고 해서 100명, 300명, 1000명이 넘어가는 어엿한 기업이 되었을 때에도 좋은 리더이자 경영자로 발맞춰 성장할 수 있을까? 만약 그의 역량이 조직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이승건이 리더를 유지하는 것이 토스가 더 큰 성공을 이뤄내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 책에서 등장한 이승건은 신격화된 존재가 아니었다.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하고, 부족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승건은 성장하는 토스팀에 맞춰서 본인도 계속 성장해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토스가 얼마나 더 성장할지, 이승건이 성장하는 토스의 리더로 부족하지 않도록 얼마나 더 성장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이미 그는 대단한 성장을 해냈다. 나는 과연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 겪어보지 않으면 가늠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만, 지금은 성장의 노력을 잃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 정도만 할 뿐이다.
p149
"무슨 이야기든 중간에 다른 사람을 거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이야기라도 제게 직접 해주세요. 서운한 부분이나 오해가 있다면 말해주세요. DM을 보내셔도 되고 그냥 지나가다 '밥 한번 먹자'라고 하셔도 됩니다. 제가 언제든지 설명하고 잘못된 게 있으면 바로잡겠습니다. 한 번 더 저를 믿어주세요."
> 누구나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야기는 듣기 싫어한다. 인간의 본성이 그러하다. 그리고 본인의 성과가 쌓이고 권력이 생길수록, 나에게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이는 줄어든다. 이는 이내 엄청난 편안함을 준다. 그리고 이내 익숙해진다. 또한 권력의 주변에서 권력의 귀를 독점하고 그것들을 나눠먹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늘 발생하는 권력의 자연스러운 속성이다. 이런 권력의 함정의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최선의 노력을 늘 다해야 한다. 반대의 목소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인지하고,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의 본성을 거스르면서 말이다. 역사적으로도 이렇게 해낸 위인들은 드물다. 이승건은 적어도 저 순간까지는 계속 해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p171
그 해 여름 토스팀은 데이터센터를 서초와 평촌으로 이중화했다. 많은 기업들이 데이터센터를 이중화하지만, 보통 주 데이터센터 한 곳을 '액티브(활성화)'로 하고 다른 한 곳을 '스탠바이(대기)' 상태로 뒀다. 주 센터에서 장애가 났을 때 다른 한 곳을 재해복구 목적으로 일시 운영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토스팀은 평소에도 두 곳의 데이터센터 모두 액티브 상태로 운영했다.
> 예방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아주 낮은 확률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실제 확률보다 더 낮게 추정하는 착각을 저지르곤 한다. 이러한 착각 하에서 사고에 대한 기대손실(사고가 발생할 확률 X 손실액)은 과소평가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투자는 과소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에서 사고의 기대손실을 측정하고, 적절한 수준의 예방책을 마련해놔야 한다. 데이터 이중화, 나도 곧 해야 하는 숙제인데 적절한 비용과 시점을 잘 판단해야겠다.
p205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처음 우리를 만났을 땐 투자를 거절해요. '만나서 재밌었다. 그런데 진짜라기엔 너무 좋아서(too good to be true), 좀 더 보겠다'고 하죠. 그러고는 그다음 혹은 다다음 투자라운드가 열렸을 때 들어와요. 애초 저희가 원했던 것보다 훨씬 큰 규모로요. 계속 지켜봤는데 '진짜'가 맞더라고 하면서요.
>too good to be true, 잘 모르는 사람이 얼핏 봤을 때 진짜라고 생각되기 어려울 만큼 좋은 모델. 시스템 트레이딩의 수익률도 일견 그런 부분이 있다. 연 100%가 넘는 수익이 가능하고, 실제로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잘 믿지 않는다. 상식 선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런데,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누군가는 어느 틈새를 비집고 too good to be true를 이루어내고 있다.
p255
엄청난 아이디어를 접한 스크래핑팀은 "같이하고 싶은 팀원 모이라"며 길드원을 모집했다. 아이디어를 실행한 공을 독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리지도, 시간 여유가 없다며 못 들은 척 뭉개버리지도 않았다. 다른 사일로의 팀원들도 고민 없이 길드에 합류했다. 각자 사일로에서 맡은 업무와 미션이 있지만, 그 시간에 더 큰 임팩트를 낼 수 있는 일을 발견했으니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팀 리더인 이승건에게 보고하고 허락을 구하는 사람도 없었다. 누군가의 지시가 아니라, 잘 만들면 그야말로 '대박'이 될 것 같다는 흥분감이 그들을 움직이게 했다.
> 조직 구성원에게 적절한 동기를 부여하고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조직 문화, 말은 좋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안다. 아마 이미 수 천 명의 조직이 된 토스도, 책에서 포장된 것만큼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움직인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토스는 이만하면 잘 해내 왔다고 평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히 금전적인 또는 승진의 인센티브를 넘어서 조직의 성과를 위해 개인이 최선을 다해 몰입하게 하는 것. 이런 이상적인 조직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 토스의 성장기를 보면, 경외심이 들 만큼 대단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저렇게 많은 유저를 확보하고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기업도 계속 위기를 직면해 왔고, 지금도 직면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인 점은 대표 이승건은 쉽게 안주하고 정착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끊임없이 위기를 인지하고 불안해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계속 스스로를 갈아 넣어 위기를 극복하며 성장해 온 것 같다. 토스가 생겨났을 시점에, 나를 포함한 다른 누군가에게 "간편 송금을 이용해 창업을 하면 대박 날 수 있다"라는 정보가 있었더라도, 지금의 토스처럼 잘 해낼 수 있었을까? 자신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토스와는 방향은 다르지만, 나에게도 해 나가야 할 도전들이 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취하고 성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