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법률가들]을 읽고
12.3. 계엄은 실패했다. 그런데 만약 계엄이 바로 해제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국회를 무력화하는 데 성공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대통령의 권력에 순종하지 않던 인사를 체포했다면? 아침에 출근하는 선관위 직원들을 체포했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그 이후에 무엇을 더 했을까?
선관위를 털어 없는 부정선거 증거를 만들어내고, 이를 근거로 국회를 해산하려 했을까? 비상입법기구를 만들어 입법권을 대체하려 했을까? 자신의 권력에 반기를 드는 모든 사람을 체포하려 했을까? 그리고 그가 말하는 반국가세력이 없는 국가를 만드려고 했을까?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다가 "나치가 어떻게 권력을 잡는 과정은 어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히틀러의 법률가들'은 이를 설명해 주는 책이었다. '히틀러의 법률가들'은 히틀러가 절대권력을 갖는 과정에서 헌법과 형법, 경찰법 등을 어떻게 바꿨는지, 이때 나치 체제에 순응했던 법관과 관료들이 이를 어떤 논리로 옹호했는지 설명한다. 히틀러도 시작부터 절대권력을 갖지는 않았다. 헌법에 보장된 총통의 권한을 이용해서 법 체계를 하나씩 바꾸고, 반대의 목소리를 탄압했다. 그리고 입법, 사법, 행정권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마치 윤석열이 시도했던 것처럼 말이다.
흔히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굉장히 비이성적이었다고 여겨지기 쉽다. 민족주의와 군국주의를 맹신한 나치당과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고, 법과 시스템을 무시한 채 사람들을 학살하며 전쟁을 일으켰다고 말이다. 그러나 나치 독일은 법을 체계적으로 개정하며 국가 권력을 강화한 뒤, 이를 총통 히틀러에게 집중시켰다. 이들은 이를 독재로도, 자유 박탈로도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혼란을 보완하고, 강한 리더십과 충성스러운 국민이 이끄는 위대한 현대국가를 만든다고 믿었다.
독재를 탄생시킨 「바이마르헌법」의 한계
나치 독일 이전 바이마르공화국의 「바이마르헌법은」 민주주의의 토대를 굉장히 잘 설계한 헌법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바이마르헌법」에도 약점이 있었다. 「바이마르헌법」 제48조는 제국 대통령이 긴급명령을 통해 정치적 과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구체적으로 공공질서와 안전이 훼손될 위험에 처한 경우 제국 대통령이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조항들을 폐지할 수 있도록 했다. 「바이마르헌법」 설계 당시에는 강한 의회 권력을 정부가 견제해야 한다고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총통이 된 히틀러는 이 독재조항을 근거로 국민의 기본권을 자유롭게 제한하게 된다.
법이나 제도를 설계할 때는 극단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를 악용하기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한국에서 계엄령의 발동은 대통령의 권한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을 정적 제거와 선관위 수색에 활용하려 했다. 그래도 우리 헌법과 계엄법은 계엄 발동의 요건과 절차를 엄격히 규정하고, 국회가 부당한 계엄을 즉시 견제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참으로 다행이다.
입법권의 대체가 얼마나 위험한지
1933년 히틀러는 총리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나치 친위대와 나치 돌격대는 사민주의자와 공산주의자를 길거리에서 폭행하여 의도적으로 사회 혼란을 야기하였다. 이후 히틀러는 의회 방화 사건을 구실 삼아 「바이마르헌법」이 보장하던 시민의 기본적 자유를 정지했다. 그리고 수권법으로 알려진 「민족과 제국의 비상사태 해결을 위한 법」을 제정해 정부가 의회의 감시 없이 법을 제정하고 헌법을 수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신규정당 설립금지법」, 「당과 국가의 통합을 보장하기 위한 법」, 「제국의 재건을 위한 법」 등을 제정해 나치 일당 체재를 만들었다.
계엄 전 회의 당시 최상목 권한대행이 받았다는 쪽지에는 '비상입법기구' 설립을 위한 지시사항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의 입법권을 대체하는 기구까지 고려했다는 의미다. 비상입법기구를 어떻게 구성할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만약 공권력을 가진 정부가 직접 입법을 할 경우 정부 스스로 권력을 강화하는 법률 제·개정이 가능해진다. 이 경우 국가권력이 얼마나 비대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독일에 있다. 국회의 해산, 입법권의 대체는 민주주의에서 삼권분립이라는 주춧돌을 빼버리는 것과 같다. 비상입법기구 검토는 결코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다.
국가권력은 늘 엄격히 통제되어야 한다.
독재의 틀이 갖춰지자 독일은 국가 권력을 무한히 강화했다. 먼저 형법의 기본 철학을 바꿨다. 자유주의 형법의 원칙인 "법 없으면 범죄도, 처벌도 없다"를 "처벌 없는 범죄는 없다"로 대체했다. 즉, 법에 없어도 범죄로 판단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위해 형법을 적극적으로 유추 적용하고, 범죄의 '결과'보다 '의도'를 기준으로 처벌하도록 했다.
현대 법이론에서 보면 황당한 형법 적용이지만, 당시 독일 법률가와 국민 다수는 범죄 억제와 국가 재건을 이유로 이를 지지했다. 자신은 범죄와 무관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국가가 반대 세력을 무분별하게 체포·처벌하는 근거가 됐다. 우리는 직접 피의자가 되지 않더라도, 국가가 형사절차를 준수하도록 감시해야 한다. 국가 권력은 언제든 남용될 수 있다.
나치 독일과 겹쳐 보이는 21세기의 대한민국
법실증주의는 실정법에 규정된 것만 법으로 인정하는 법 철학이다. 그러나 나치 독일은 이를 부정하고, 위대한 국가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도덕까지 법으로 통제하려 했다. 국민은 올바른 국가관을 가지고 바르게 행동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처벌받았다. '올바른 국가관'과 '바른 행동'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이를 객관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 결국 국가가 자의적으로 기준을 정하고, 따르지 않는 자를 처벌할 뿐이다. 이렇게 개인의 사상 자유가 제거된 나라가 바로 전체주의 국가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 유튜브, 뉴스 댓글에서 비슷한 생각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정쟁만 일삼는 국회를 해산해야 한다는 주장,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이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믿음, 강한 리더십만이 중국이라는 위기로부터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 국가관을 학교에서 교육해 모두가 올바른 국가관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 이에 반하는 사람들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요구. 모두 나치가 가졌던 생각과 다르지 않다. 이것이 이 책이 주는 교훈이다.